전북 익산 이일여고에서 35년간 근무하고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김승 회원은 자신을 두고 꽤 무서운 선생님이었다고 회고하며 웃었다. 지금의 온화한 느낌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고 고개를 갸웃했더니 학생부장으로 꽤 오랜 시간 학생들에게 촉을 세우고 지켜봤음을 고백하며 또 웃는다.
지난 2007년 3월 2일 정년퇴직을 한 김승 회원은 ‘여행’과 ‘쉼’을 이야기하는 퇴직자들과 조금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가 가는 곳에는 늘 카메라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아주 우연한 일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친구가 저한테 안부 메일을 하나 보냈는데 사진이 첨부된 것이었습니다. 함께 온 그 사진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언젠가는 나도 이런 사진을 한번 찍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구해 그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소풍이나 체육대회, 특별한 날이면 꼬박꼬박 카메라를 가져가서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함께 찍히는 즐거움을 누렸다.
김승 회원은 정년퇴임을 앞두고 미래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에게는 그동안 찍은 사진이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고, 마침내 그는 그간 찍었던 기록의 사진, 추억의 사진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2007년에 연 전시회는 소위 말해서 대박이 났습니다. 모두의 추억이자 기록이었으니까요. 수많은 제자가 찾아와서 옛 정을 나누었고, 선후배 교사들이 방문해주었습니다.”
모두를 지나온 시간 속으로 소환한 사진은 그렇게 힘이 셌다.
퇴임을 한 뒤 본격적인 사진공부가 시작됐다. 전북대학교에서 하는 사진 강좌와 개인 강좌를 들었는데 배움은 즐겁기만 했다. “관심이 있어서 시작했더니 선생님이 던져주는 작은 한마디도 바로 입력이 됐어요. 그런 것이 쏙쏙 들어오니까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고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사진가로 수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그의 활동은 사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고3 담임 시절 한 반에서 무려 4명을 명문대에 보내고, 동료 교사와 무궁화 야학교를 열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며, 아침이면 학생들을 만날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교사 생활을 했던 그는 퇴임 후에도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결코 잊지 않았다.
“퇴직하고 나서 사진공부와 동시에 했던 게 익산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하는 거였어요. 일주일에 사흘씩 어르신들께 타자 연습, 인터넷 검색하는 법, 자료를 다운받아 메일에 첨부해 보내는 방법 등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쳤습니다. 학교에서 쓰지 않는 컴퓨터를 얻어다가 직접 준비했지요.”
그 세월이 무려 8년이었고, 그다음에 시작한 것이 스마트폰 사진 강좌였다. 누구나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강의를 시작한 것이다. 2018년에 처음 개설된 이 반은 사진의 구도, 화각, 소재 등 기본적인 이해를 도와주고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를 알려주는 강좌로, 수강 신청을 열면 아주 빠르게 마감되는 인기강좌로써 자리를 잡았다. 벌써 10년째 배움의 기회를 놓친 장애인들과 어르신들에게 검정고시 대비 과학 강의를 하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듯 사진과 교육이라는 두 가지 길의 균형을 맞추며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던 그가 ‘사진작가’라는 타이틀을 단 건 2015년이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익산지부에 회원으로 등록되면서 정식 사진작가가 된 것이다. 오래도록 사진을 찍었던 세월에 비하면 꽤 늦은 시간이었다.
“사진을 오래 찍었지만 사진작가로 불리고 싶단 생각은 안 했어요. 나 좋으면 됐지, 누군가한테 인정받는 게 뭐가 중요한가 싶었죠. 그런데 아내가 저한테 무면허 운전자라고 하더라고요. 운전면허도 없으면서 운전을 잘하면 뭐 하냐고요. 결국 아내 말대로 면허는 따자고 결심했습니다. 하하.”
사진작가로서 그의 사진은 온전히 생생한 삶, 그 자체와 잇닿아 있다. 선교사인 친구를 만나러 케냐나 캄보디아를 갔을 때도 그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이나 그림 같은 유적보다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했다.
오랜 가뭄의 흙먼지 속에서 가축들을 몰고 우물에 물을 먹이러 가는 마사이족 소녀의 고단한 삶, 복잡한 시장통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쪼그려 앉아 책을 읽는 소녀의 초롱한 눈빛은 그렇게 탄생했다. 김승 회원이 찍은 ‘케냐 마사이족 여인들의 삶’과 ‘캄보디아 교육이 미래를 밝힌다’라는 주제의 사진들은 전시회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타인의 삶과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저는 사진을 통해 제 삶의 어떤 다른 흔적을 나타낼 수 있다고 봅니다. 소재 자체는 다양하고 나타나는 모습 또한 여러 가지겠지만, 그것들이 주는 그 하나의 흐름 자체는 제 삶과 같은 평행선으로 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찍은 사진을 먼 훗날 다시 보면 ‘내가 이런 모습으로 살았구나’ 하는 기록이 되겠지요.”
퇴직한 지 1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그의 일주일은 여전히 바쁘다.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서 많이 찾던 ‘교장 선생님’으로 불린 시절을 훌훌 털어 보내고, 이제는 불러주지 않아도 먼저 찾아가는 열정과 성의로 치열하게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사는 덕분이다. 얼마 전에는 익산 소라산 공원의 자연과 보존을 주제로 영상까지 찍었다니 김승 회원의 영역이 더 확장되리라는 것은 넉넉히 짐작이 가능하다.
“저는 제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열정이 넘치고, 아직 충만한 에너지를 받고 있으니까요. 특히 감사는 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나누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김승 회원의 어깨에는 늘 묵직한 카메라가 매달려 있다.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저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 사랑하는 이들의 미소까지 그의 카메라 안에는 이 모든 것들이 보물처럼 가득 들어있다. 김승 회원의 흘러가는 삶이 매순간 풍요로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