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임에도 학교는 꽤나 소란스러웠다. 등교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책 읽는 소리가 사방에서 낭랑하게 울려 퍼지고 학교 옆쪽의 텃밭에는 주렁주렁 열린 방울토마토와 고추를 살피는 아이들의 눈빛은 작렬하는 태양보다 초롱하게 빛난다.
이곳 공근초등학교가 처음 문을 연 것은 1925년. 몇 번의 새해를 더 맞으면 개교 100주년이 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이다.
“공근초등학교와 바로 옆의 공근중학교는 우리 지역의 대표성을 띠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역주민들의 대부분이 이곳을 모교로 두고 있고 아들과 손주까지 대를 이어 이 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많아요. 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곳이었죠.”
빈 교실에 마주 앉은 서동범 교사가 공근초등학교의 위상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이렇듯 사랑 받았던 학교가 점차 주민들의 관심에서 밀려가기 시작한 것은 7~8년 전부터다. 이 지역 역시 도시 분위기에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가 지역사회와 교류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교장 이하 교사들이 마을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대략 3~4년 전부터였다고 한다.
“노인정을 찾아가고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보여드리고 마을축제에 아이들과 함께 구경을 다녔습니다. 우리 학교가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작년부터였는데 사실 그 이전에 이런 밑거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가랑비에 옷 젖듯 교류를 하다가 작년부터 지역과 함께해야겠다는 생각들이 모여서 보다 활발하게 활동을 하기 시작한 거죠.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시작한 게 아니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은 결코 쉽지 않은 법, ‘우분투(마을교육공동체)와 함께하는 마을결합형 교육과정 운영을 통한 학교의 마을살이’라는 주제를 갖고 시작한 활동은 교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마을의 인적·물적 자원과 함께 ‘학교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것이 어렵고 난해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교사들이 마을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주제들을 다 뽑아서 재구성해 학년별로 교육과정을 따로 만들었는데 이는 기존의 이벤트, 행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죠. 교육과정이라는 건 수업과 연계가 되는 거니까요.”
힘든 일은 내부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마을탐방 같은 경우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이 필수인 상황이었는데 어르신들의 반응이 마냥 호의적인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화로 독려 해봐도 ‘관심 없으니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는 얘기’가 돌아오기 일쑤. 그러나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다행히 도와주겠다는 어르신들이 더 많이 있었기 때문에 교사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에서 벗어나 마을로 나가 마을의 역사, 지리, 유래에 대해 공부하고 마을 생활과 키우는 작물에 대해 배워나갔다.
올 여름, 공근초등학교의 ‘우리마을 옥수수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마을어르신들에게 옥수수를 심는 방법, 잘 재배하는 방법을 배우고 학교 한편에 아이들이 직접 옥수수밭을 만든 것. 아이들은 마을어르신들에게 받은 옥수수 씨앗을 직접 심고 비료를 주고 잡초를 뽑으면서 그야말로 정성스럽게 옥수수를 키웠다. 그렇게 몇 달을 고생한 끝에 수확한 옥수수는 양이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환호성을 지르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심고 가꾸어 거둔 농작물이 아니던가!
“옥수수 자체로는 양이 적어 수익이 얼마 안 되니까 옥수수버터구이를 만들어서 판매를 했습니다. 거기서 나온 수익금이 16만 7천원이었어요. 그 돈은 2학기 때 마을어르신께 드릴 선물 구입비로 쓰려고 학교 어린이회에 전달했어요.”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농산물 재배, 기부활동, 사회적기업, 나눔 등 각 과목 교과별 교육 과정에 나와 있는 많은 것들을 마을어르신들과 함께 직접 실행하고 체험한 것이었다.
‘우리마을 옥수수 프로젝트’는 5학년만이 참여했지만 작년에 시행했던 ‘우리마을 행복 복숭아 프로젝트’는 전 학년이 함께한 경우였다. 공근의 복숭아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에서 홍보하는 의미로 마을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서 복숭아를 구입하고 동시에 그걸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이었다.
“1, 2학년이 마을선생님을 찾아가 복숭아꽃 피는 과정과 가지치기를 배웠어요. 복숭아를 수확하고 나면 3, 4학년은 가공활동을 통해 복숭아 에이드를 만들었고 5, 6학년은 횡성평생학습체험축제에 나가서 판매를 했죠. 총 4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고 올해는 아이들이 복숭아통조림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서동범 교사는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공동작업해서 얻은 가치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이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은 마을과 학교 모두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아이들이었다.
“농촌지역의 특성상 조손가정, 도시에서 전학 온 이혼가정의 아이들이 많습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 역시 전교생의 1/4 이상이지요. 그러다보니 자신감이 부족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이 많이 있어요. 그러는 와중에 이렇게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땀 흘려서 신체활동을 하고 마을선생님이 되어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고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 톤이 하나 더 올라간 게 느껴져요(웃음). 사실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했는데 ‘우리 마을에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다’며 ‘마을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마을과 어르신들, 교사들의 변화 역시 컸다. 처음에는 함께하는 교육활동을 귀찮아했던 어르신들은 당신이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라도 소개시켜주마 나서고, 온 동네에 왁자지껄 쫑알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간이 늘어나자 아이들 손에 음료수를 쥐어주며 “사람 사는 곳 같다”며 기뻐하기도 했다.
“이제 학교와 마을의 밀접한 관계는 매우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도시와 비슷한 양상을 띠어가던 너 따로, 나 따로였던 분위기가 확 달라진 거죠. 학기 초나 말이 되면 우분투 협의체를 통해서 평가회, 다음에 아이들과 함께 할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더 잘 키우고 가르칠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서동범 교사는 교사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생기는 것들, 기대하지 않았는데 만들어진 것, 부정적인 것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긍정적으로 실현되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교사로서의 보람과 충만감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예산을 쓰기 위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여러 업무 중 하나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을과 함께 하기 위해 발로 뛰고 구슬땀을 흘리면서 진정성 있게 마을교육 공동체를 하다보면 그 결과는 정말 다릅니다. 그러니 마을로 직접 나가서 몸으로 부딪쳐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면 분명히 달라진다고요.”
낯선 이들과 선생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내 호기심에 주변을 기웃거리던 아이들에게 슬쩍 물었다.
“옥수수 프로젝트는 어땠어요?”
“재밌었어요!” “다 같이 하니까 좋았어요!” “마을선생님들이 진짜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뜨거운 여름 볕에 토실토실 살이 오른 공근면의 농작물들 그리고 공근초등학교 아이들. 활짝 웃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세상 그 어떤 결실보다 아름다운 긍정이 한가득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