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학교라면 충분히 납득이 갈만하다. 교육공간에 대한 혁신이 주요 화두가 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건물을 새 학교에 짓는 것은 꽤나 타당한 일이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전통의 동화고등학교에 삼각형 건물이 들어서 있다는 소식은 놀라움을 넘어서 파격에 가까운 것이었다.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다른 오래된 건물 사이에서 심하게 튀거나 불쑥 솟은 못처럼 느껴질 삼각형 건물을 상상했지만 운동장에 들어서서 바라본 여러 동의 건물은 나름의 역사와 보수를 거쳐 제법 가지런히 어울린 채 사이좋게 서 있었다.
오늘 취재진을 맞아준 조종원 교감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건물 앞에 서자 비로소 새 건물의 느낌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일자면이 운동장 쪽으로 향해 있는 바람에 삼각형이라는 형태가 잘 안보였던 탓이다.
“동화고등학교는 비평준화 고교로 전교생 숫자가 1450명, 학급이 학년당 15개반, 총 45학급으로 경기도 내에서도 규모가 큰 학교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역사가 오래되다보니 그만큼 오래된 건물도 많은데 고3이 쓰던 1950년대 건물 한 채가 안전진단에서 B등급을 받으면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고 신축을 해야만 했어요.”
조종원 교감이 삼각형 건물이 들어서게 된 배경을 차분히 설명했다. 입찰을 통해서 건축설계사가 선정이 됐다. 동화고에서는 새 건물이 지어질 바로 뒤에 위치한 중학교 공간을 확보해줄 것, 고3이 쓰기 적합할 것, 운동장을 침범하지 않을 것 등등의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얼마 뒤 설계사무소에서는 건물의 도면을 그려서 가져왔다. 무려 삼.각.형이었다. 관리자는 물론 학교재단 관계자, 교사들까지 모두 놀랐다. 학교표준건축은 직사각형이라는 고정관념. 반듯한 교실과 통행 가능한 복도, 채광과 환기만 잘되면 충분한 학교건물에 삼각형이 웬말이냐, 하는 게 모두의 반응이었다. 운동장이 다 보이는 한쪽 벽면의 통창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3 교실인데 아이들이 밖을 쳐다보느라 집중력이 떨어지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지극히 당연한 설왕설래도 있었다.
모두가 반신반의했지만 건축설계사는 입지를 생각하면 이게 최선이라고 단언했다. 사실 새 건물은 교사, 관리자, 학생들에게 많은 숙제와 부담을 지우는 공간이다. 공간에 적응을 해야 하고 세팅부터 건물관리, 청소, 학생지도, 정리정돈까지 모든 걸 다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교사들은 가장 먼저 건축가의 의도를 살폈다. 이 공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침내 송학관에 입주하던 날, 그 시도는 하나씩 답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이쯤 이야기가 진행되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조종원 교감을 따라 아직 뽀송한 느낌이 남아있는 송학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바로 밝음이다. 취재 당일 날씨가 흐렸음에도 벽면의 유리창과 중앙정원을 통해 들어오는 엷은 여름빛은 건물 전체를 환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통상 복도라고 부르는 일정한 넓이의 긴 통로 역시 고정관념을 부쉈다. 외삼각형과 내부삼각형을 비틀어놓은 구조 덕분에 그 폭과 길이가 넓어지다가 좁아지는 등 자유분방하게 사방으로 뻗어 있었던 것.
건물 한가운데 자리한 중앙정원은 이 건물의 핵심이다. 자연 채광이 그대로 들어오는 중정은 말 그대로 학생들을 불러 모으고, 학생들이 스스로 모여드는 곳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책도 읽고 멍도 때리고 졸기도 한다. 정원 대신 자갈이 깔려 있을 때는 이곳에서 배드민턴을 치며 놀기도 했다. 2층과 3층이 뻥 뚫려 있는 구조 덕분에 크지 않은 건물임에도 입체감과 공간감은 엄청났다. 무엇보다 막혀 있는 느낌이 없으니 아이들은 2층에서 3층에 있는 친구를 소리쳐 부르고, 3층의 아이들은 2층의 친구들이 뭘 하는지 고개를 쏙 빼서 구경을 한다. 즉석에서 약속을 잡아 중간 계단에서 만나기도 하고 삼각형 창문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수다를 떨기도 한다.
조종원 교감은 이를 두고 “이곳은 통행로이자 휴게공간, 소통공간, 재미의 공간, 놀이의 공간인 곳”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 삼각형 건물이 안팎으로 불러일으킨 변화는 꽤나 큰 것이었다. 그것은 ‘공간이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는 명제에 더없이 부합하는 변화이기도 했다. 동화고 고3 학생들의 표정은 일단 타학교 고3들과 비교해 밝았다. 특유의 공부에 찌든, 신경질적인 그림자가 거의 없어지고 친구들 간의 소통, 교사와의 소통이 이전 건물에 있을 때와 비교해 말할 수 없이 넉넉해지고 편안해졌다.
변화는 교사들에게도 찾아왔다. 모름지기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선이 있어야 하고, 금도가 있어야하고, 절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공간이 그걸 허물어 버리니 관점까지 바뀌어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중정 벤치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자세를 똑바로 하라고 주의를 많이 줬어요. 하지만 햇빛이 쏟아지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애들을 보면 피곤하니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어느 순간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저도 놀란 변화였지요.”
오랜 세월, 답습해온 교사로서 미처 깨닫지 못한 정형화된 틀, 편한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놀라움은 꽤나 큰 것이었다고 조종원 교감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놀라운 현상도 일어났다. 통상 대학을 보내는 숫자가 고등학교를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되는 현실에서 삼각형 건물로 입주한 뒤로 아이들의 명문대학 진학률이 더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 건물 덕분이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냐만은 거꾸로 삼각형 건물의 영향이 전혀 없었노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는 부분이다.
동화고교의 삼각형 건물의 위상은 이제 남양주를 넘어 경기도, 대한민국, 국외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2015 대한민국 교육부 우수시설학교상, 2014 AIA 뉴욕건축가협회상,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등을 연달아 수상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유명건물이 됐기 때문이다. 교육방송에서 건물과 아이들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어가기도 했다니 이곳을 향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아이들이 행복한 공간, 정형화된 틀을 깨는 공간, 유리창을 통해 서로를 자유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 동화고등학교의 이 삼각형 건물은 과거를 지나 현재를 통과하고 미래를 향해 가는 아주 뚜렷한 여정을 보여주는 ‘참 좋은 공간’임에 틀림 없어보였다. 삼각형이 일으킨 새바람이 대한민국 교육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모두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