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뭔가요?” 쉽게 하기도, 자주 듣기도 하는 질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데, 적잖은 사람들이 대답에 앞서 “내 취미가 뭐지?” 자문을 할 터다. 취미, 취향… 요즘은 이런 요소들이 곧 인격을 대변한다. 그러니 마음이 이끌리는 것, 삶을 티끌만큼이라도 즐겁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일단 파고들어야 한다. 이현지 교사처럼 말이다.
그는 래퍼다. ‘달지’라는 랩 네임도 있다. 심지어 유명하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차츰차츰 늘더니 최근에는 30만 명을 넘어섰다. 대학교 때 취미로 힙합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게 발단이 되어 교사가 된 이후에도 꾸준히 음악활동을 잇고 있는 것. 유명 곡의 커버 영상을 올리기도, 자신만의 앨범을 내기도, 이따금씩 홍대에 출몰해 버스킹도 한다. 물론 랩은 취미, 본업은 교사다. 교사라는 직업도, 힙합이라는 장르도 아직은 편견이 짙은 편. 처음에는 갸우뚱하는 반응들이 있었지만, 그는 영리하게 둘의 교차점을 만들어 냈다.
“교사라는 직업에 씌워진 편견을 부수는 일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아요. 하지만 교사를 교실에만 가두는, 세상과 동떨어지게 만드는 그런 좁은 시선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본인의 삶을 더 행복하게 가꿀 줄 아는 교사가 교실에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건 분명하니까요.”
그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랩에 담는 방법을 택했다. 음악의 힘은 생각보다 거대해,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토닥임이 되기도 하는 터. 문학성 짙은 가사를 읊조리다 보면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이 분명 온다. 순도 높은 진심이 닿았던 걸까.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의 제안으로 학생들과 함께 자작곡 <다시 만날 때>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다른 교사·학생들과 경기도교육청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선생님이 된 후 아이들 목소리를 담은 곡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당시 어떤 이야기를 할지 많이 고민했는데요. 신규 발령 났던 해를 떠올리며 ‘사랑할 줄 알고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그 웃음 그대로 다시 만나자’는 내용을 담았어요. 이후 음악을 듣고 울었다는 연락을 많이 주셨어요. 음악으로 타인의 감정을 움직인 황홀한 경험이었어요.”
요즘 세대들이 가장 즐겨 보는 매체 중 하나가 유튜브다.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의견이 아직 팽팽하게 맞서지만, 긍정적인 쪽으로 차츰 기우는 추세. 이현지 교사는 양질의 콘텐츠가 늘어나고 권장된다면 다양한 순기능이 가능해질 거라 이야기한다. 꼭 교육적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교사의 자기계발이나 학생들과의 공감대 형성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의견. 실제로 그의 반 아이들은 선생님이 유튜버인 걸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최근 첫 정규앨범 <Handed The Moon>을 발표해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재미있는 건 피처링부터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앨범 제작에 현직 동료 교사들의 참여가 있었다는 거다.
“유튜브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거예요. 대학 시절부터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도 있고, 여러 재능 있는 선생님들을 새로 만나기도 했죠.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비슷한 공감대와 이야기들을 예술에 함께 담아내면서 교직에 대한 이야기나 아이들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었어요. 덕분에 교사로서도 한층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느껴요.”
이쯤 되면 그 의기투합의 결과물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 곡들이 교사로서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 앨범은 자신의 내면에 집중된 느낌. 자신만의 음악을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일상의 고민을 가사에 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타이틀곡 <새벽옥상>도 그렇게 만들어졌는데요. 지친 하루를 보낸 친구들이나 저 자신에게, 시원한 밤공기를 쐰 후 한결 개운해지는 그런 감성을 전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음악을 통해 위로받거나 힘을 내는 경우를 종종 보잖아요? 저도 그런 역할을 더 잘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어요.”
알고 보면 꽤 빠듯한 교사로서의 일과, 그 와중에 음악 활동과 유튜브 채널 운영을 병행한다는 건 스스로에게도 큰 도전이다.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야, 웬만큼 좋아하지 않고서야 애당초 흐지부지 돼버렸을 테다.
“사실 저는 예체능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림을 잘 그리거나 음악적인 감각이 뛰어난 분들이 본인의 삶을 예술에 담아내고 소통하는 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마냥 부러워만 하지 않고, 조그만 도전이라도 시도한 과거의 저를 칭찬해주고 싶어요.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야만 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알게 되었거든요.”
그의 말대로 재능은 둘째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일과 취미 모두 공평하게 잘하기 위해 24시간을 한 토막도 허투루 흘리지 않아야 함은 필수다. 이현지 교사는 여가 대신 취미생활을 택함으로써 유한한 시간의 균형을 유지한다. 사실 효율로 따지자면 오히려 시간을 버는 셈. 유튜브에 랩 영상을 올리고 곡 작업을 하는 ‘래퍼 달지’의 취미활동이 ‘교사 이현지’에게도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까닭이다. 반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자기계발 하는 선생님, 좋아하는 무언가를 즐길 줄 아는 선생님의 모습은 그 자체로 특별한 교육이 된다.
“선생님들도 매년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존재라고 믿어요. 제 도전이 아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꼭 멋지게 성공하거나 대단한 결과를 위해 애써야 하는 건 아니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존중하고, 내 행복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또 보여주고 싶어요.”
그가 유년기에 만난 선생님들이 그러했듯, ‘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이현지 교사의 고민은 이토록 진지하고 심오하다. 자신의 작은 행동들이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갈지를 알기 때문이다.
“단호하고 엄하지만 항상 저희를 대하는 진심이 느껴졌던 선생님, 또 항상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로 학교생활을 채워주셨던 선생님 등 유년기에 정말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어요.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그 때의 기억들이 제 고민에 현명한 답이 되어주곤 합니다. 저도 아이들이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할 때 떠오르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사소한 듯 보여도 모든 순간은 유의미하다. 현재는 점점이 모여 내딛을 길을 잇는 터. 결국 모든 순간은 과정이자 결과다. ‘머무르지 않겠다’, 이현지 교사가 매 순간 마음을 되새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