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특히 엄마의 경우 이론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로 자녀를 양육하고자 하는 의지는 크지만, 엄마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이면 누구나 그러하듯 나의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며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어 감성에 휘말리게 된다. 마치 분신 같은 동질성이 형성되기도 하여, 때론 친구처럼 때론 자신과 혼연일체가 되어 자녀의 성취가 곧 나의 성취로 하나 된 희열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것이 내가 낳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며,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살붙이이기 때문이다. 열 달을 서로에게 교감하며, 같은 몸에 심장이 두 개로 뛸 때 느끼는 감각적 신호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엄마만이 느끼는 공감일 것이다. 그러니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 나의 아이는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으니…. 본인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엄마와 사뭇 다른 또래 환경에 맞는 주체적인 자아성을 갖출 때 엄마는 놀라게 된다. 이 시기가 바로 사춘기의 시작인 셈이다. 엄마는 사춘기에 돌입한 자녀를 마주할 때면 으레 긴장되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어설프며 정제되지 않은 말주변으로 자녀를 대하게 된다. 간혹 호통을 치며 고집을 부리거나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스스로 유치함에 놀라면서 자녀와 함께 사춘기를 겪게 된다. 이것 또한 엄마와 자녀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엄마가 느끼는 사춘기 훈육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저명한 학자들의 이론과 최상의 포용력을 가진 엄마의 합작품으로 버무려 ‘이정도 쯤이야’라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정작 실천하기까지는 현실적인 괴리가 존재한다.
이론서로 배운 대로만 실천되고 자녀 역시 공식적인 해답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세트가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더군다나 본인 자신이 가장 무섭다는 중2 사춘기 학생을 맡고 있는 교사라면 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글의 주제와 같이 힘든 사춘기의 최상격의 수식어인 ‘중2병’ 그것도 내 자녀와 함께 나의 반 아이들을 함께 케어한다는 것은 그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러나 이것 또한 중2 학생과 중2 자녀를 아우르는 성장하는 교사 엄마의 모습이다.
이러한 처지라면 누구든 그 상황을 똑 부러지게 해결하기는 어렵다. 중2라는 나의 자녀와 중2 학생을 교육시키는 입장에서 보면 본인은 아무리 분리하여 자신의 자녀와 학생을 교육시킨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비교 평가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는 우월한 아이와 열등한 아이가 동시에 존재하며, 그들을 위해 교육자로서 명확한 판단과 자신의 의지, 교육철학을 가지고 본인이 맡은 역량을 발휘하며 지도한다. 그러나 자녀의 경우 설령 다소 열등하다 하더라도 우월했으면 하는 기대심리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평가의 진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 가령, 교사 엄마가 지도하는 학생이 자녀에 비해 훨씬 우등하다고 생각되면 교사 엄마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자녀에 대한 배신으로 더욱 비참해지는 심리를 겪게 되며, 스스로가 자녀에 대하여 불안하다고 판단하여 자녀를 우등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압박하여 자녀에 대한 불안심리가 커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또래 아이들은 발달과정, 배우는 교과 과정, 하물며 그들이 공유하는 또래 문화의 정보까지 같기 때문에 자신이 교사 엄마가 지도하는 그룹이 아닌 청소년의 큰 틀 속에서 자녀의 위치를 명확히 보며 평가해야 한다. 자칫 본인이 지도하는 우등학생들의 일부만 보고 자신의 자녀를 상대평가 한다면 스스로는 물론 자녀에게 까지도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가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유전적 복합체이다. 자녀를 큰 틀에서 믿고, 교사 엄마의 터널시야를 벗어 던져야 한다. 우월한 학생을 지도하고 있으면 나의 자녀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것은 누구나 그러하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넘기고, 현재 중2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이라면 자녀의 문제를 더욱 쉽게 이해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자녀 역시 이러한 상황에 놓인 교사 엄마가 자신의 또래와 함께 비슷한 상황을 공유한다고 느낀다면 오히려 서로에게 동질감을 가질 수 있으며, 믿고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엄마와 함께 가는 교과 과정 그리고 그들의 걱정과 미래를 서로가 교감한다면 이 얼마나 행운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