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55] 인생 2모작

시간을 거스르는 열정, 나이를 뛰어넘는 의지
국내 최고령 보디빌더 서영갑

삶에 대한 순응은 어쩌면 도전보다 더 편한 것이다.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이끄는 대로 걸어가는 삶이란 얼마나 수월한 것인가. 그러나 올해로 84세가 된 보디빌더 서영갑 회원(한국교직원공제회 특별회원)은 나이에 대한 순응 대신 도전을 선택했다. 교직자로서 오래도록 정석대로 짜여진 길을 성실히 걸어온 그. 그러나 지금의 서영갑 회원은 지금껏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걸음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청년’이었다.
  • 글. 이경희 
  • 사진. 김도형

B O D Y - B U I L D E R
교육자에서 보디빌더로

얼굴에 함박웃음이 한 가득이다. 맞잡은 두 손에서는 파르라니 힘이 느껴지고 그가 뿜어내는 기분 좋은 에너지는 마주한 이에게까지 절로 힘을 실어준다. 80세가 넘은 고령에 민소매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다면 흔히 ‘주책’이라고 표현될 법한 대한민국 사회. 그러나 보디빌더 서영갑 회원에게는 파티장의 연회복처럼 더없이 잘 어울리는 옷차림이다. 그런 남편과 함께 먼 길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과일이며 몸에 좋은 매실차를 내놓는 아내의 환대도 예사롭고 느긋하기만 하다. 서영갑 회원은 대구 토박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대구에서 영어 교사로 교편을 잡고 교장으로 은퇴를 한, 말 그대로 대구 공교육의 산 역사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의 대구시의 교육열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자식을 좋은 대학을 보내야겠다는 학부모들의 열의, 선생들의 욕심이 정말 대단했지요. 경북고, 경북여고, 달성고 등을 거치면서 주요 교과과목 선생으로 당연히 새벽부터 밤까지 바쁠 수밖에 없었어요.”
1999년 8월에 교장으로 40년 교직 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그는 유독 고3 담임을 많이 맡았었다. 고3 담임 생활이 어떤 것인지 겪어본 교사들은 알 것이다. 그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아침 보충수업부터 야간자율학습까지 집에 가면 새벽 1시가 넘는 생활이 반복됐어요. 당시는 키도 크지 않고 몸도 왜소했는데 덩치가 산만 한 고3 애들을 감당하기도 역부족이었지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허리와 무릎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병원 갈 시간을 내기도 불가능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몸이 덜 아플 수 있을까 책을 보면서 연구한 끝에 그는 아령을 하나 샀다. 대화 도중에 그가 불쑥 일어나 가지고 온 3kg짜리 아령은 그야말로 수십 년 그의 손때가 묻은, 황학동시장에서나 볼 법한 유물 같은 아령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서영갑 회원은 틈만 나면 아령을 든 채 팔을 굽혔다 폈다,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운동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몸이 덜 아프기 시작했고 그는 40대 중반부터 퇴직할 때까지 아령 운동만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냈다.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고
노년의 건강에는 근육이 필수입니다.
아픈 몸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건 삶이 아니잖아요.
달라진 몸, 더 많이 달라진 삶

누구에게나 그렇듯 정년퇴직은 설렘보다는 걱정을 더 크게 안겨주는 삶의 터닝포인트다. 은퇴 세대, 실버 세대를 위한 강좌와 행사가 끊임없이 열리는 것도 고령화 시대에 따른 수요와 고민이 넘쳐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서영갑 회원은 퇴직할 때부터 자신의 꿈을 아주 명확하게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퇴직하기 몇 년 전에 우연히 미스터대구 선발대회 포스터를 봤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혼자 몰래 경기가 열리는 실내 체육관에 찾아가 구경을 했어요. 앞쪽에 앉아서 조명과 땀으로 번들거리는 선수들의 근육과 핏줄이 꿈틀대는 모습을 보며 살아있는 조각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퇴직을 하면 꼭 저걸 해봐야겠다고 결심을 했지요.”
제자들과 교사들, 가족들의 아쉬움과 응원 속에서 정년퇴임을 한 그는 곧바로 체육관에 달려갔다. 그리고 두 달 뒤에 열릴 보디빌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포즈를 배우고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교장 선생님으로 은퇴한 양반이 손바닥만 한 팬티만 입고 무대 위에 설 거냐며 질색하던 아내의 반대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대회에서 1등을 하던 날,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회에 공헌하는 일꾼으로 키워낸 보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컸지만 운동으로 확, 달라진 제2막의 삶이 주는 행복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최고령, 최다입상, 최다출전 기록을 경신하는 보디빌더를 찾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는 방송과 인터뷰, 강의를 통해 근육을 얻음으로써 달라진 삶을 이야기했고 도전하는 자의 성취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이가 들면 노화가 당연한 거라고, 무릎과 허리가 아픈 게 당연한 거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동시에 스스로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줄 때의 희열은 정말이지 컸다고. 1년에 나가는 보디빌딩 대회만 10여 차례. 국내 최고령 보디빌더로서 그가 갖는 의미는 이제 섬세하게 조각나고 부푼 근육의 사이즈 그 이상이다. 날고 기는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에 꾸준히 초대를 받는 것도 운동을 함으로써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그의 삶을 모범적 지표로 삼고자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근육은 나이가 없다

서영갑 회원의 일상은 의외로 평범하고 간소하다. 멋진 보디빌더의 우람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단백질 파우더나 영양제, 닭가슴살만을 먹고 체육관에서 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짐작을 훌쩍 뛰어넘는 삶이다.
“저는 생활 속의 운동, 운동 속의 생활을 실천합니다. 외출할 일이 있으면 차를 타는 대신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걸어요. 지하철 탈 일이 있으면 내내 서서 갑니다. 웨이트는 지하실에 마련해놓은 운동기구로 하고 있고요. 운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됐지만 운동을 하면서 부상을 입은 적도 없습니다. 제가 제 몸을 알기 때문이지요. 웨이트에서 과욕은 금물이고 욕심을 부리면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보디빌더 대회 우승이 목표가 아니라 건강이 목표예요. 대회는 제가 운동을 즐기는 과정일 뿐이에요.”
40년이 넘는 생활동안 교육자로, 다시 또 보디빌더로 살아온 그에게는 마지막 남은 꿈이 하나 있다. 바로 현역 보디빌더로서 끝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그 목표를 위해 그는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소박하고 건강한 식사를 챙기고 덤벨을 들며 모래주머니를 찬다. 그리고 신문과 책을 꼼꼼히 읽으며 뇌를 운동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그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가 우렁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근육은 나이가 없다! 서영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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