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쉬어가기
아름다운 동행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엄마

박가령 부산 금정고 교사 & 딸 최율겸 모녀의 첫 강화도 여행 딸은 엄마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엄마는 딸을 통해서 세상을 새롭게 본다. ‘모녀여행’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지만 박가령 교사와 딸 율겸 씨에게 이번 강화도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각별하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다시금 애정을 확인하며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는 엄마와 딸. 그 정답고 어여쁜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다.
  • 글. 이경희 
  • 사진. 권대홍

모녀의 첫 강화도 여행

핏줄로 연결된 가족들을 꼽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엄마, 아빠, 아들, 딸,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삼촌, 외삼촌, 사촌 형제들. 그러나 박가령 교사와 딸 율겸 씨는 이번 여행만큼은 오로지 서로에게만 집중해보기로 했다. 들끓는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의 삶을 이해하게 되어 가면서 그간 쌓아온 정을 한껏 느끼고 가겠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박가령 교사는 <The–K 매거진>에 보낸 사연을 통해 “딸에게 빚을 졌다”라는 문장으로 율겸 씨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살짝 보여주기도 했다.
무덥기로 손에 꼽혔던 8월 둘째 주, 본격적인 강화도 여행은 처음이라는 모녀가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만나 반가움에 두 손을 꼬옥 마주 잡는다. 한 사람은 서울, 한 사람은 경남 양산시에 터를 잡고 있는 만큼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이 터져 나온 것이다. 유독 파랗고 높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달리고 달려 도착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강화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화문석 체험장이다. ‘강화도’하면 화문석이라는 단어가 절로 따라올 만큼 익숙한 강화도 화문석을 직접 만들어볼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을까? 강화도령 화문석공방에 들어서자 안마당에 쫘악 펼쳐진 왕골들이 보인다. 먼저 화문석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박윤환 대표가 화문석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화도 화문석은 꽃 모양의 자리라는 뜻으로 100년이 넘는 전통방식으로 짜고 있습니다. 고려 시대 중국 사신이 쓴 <고려도경>을 보면 강화도 화문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고려인이 자리를 잘 짠다, 자리가 아름답고 부드럽고 최고로 우수하다. 이렇게 찬양하는 대목이 나올정도로 명성을 얻고 있었지요.”
박가령 교사가 눈을 반짝거리며 쉬지 않고 질문을 던진다. “자리용과 공예품용 왕골은 어떻게 구분을 하는가” “상품의 기준은 무엇인가?” 평소 엄마의 지적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정을 익히 알고 있는 율겸 씨가 미소 띤 얼굴로 열심인 엄마를 바라본다.

강화의 전통과 정취를 만나다

오늘 두 사람이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은 미니 발이다. 방문 입구에 달아놓으면 예쁘게 달랑거리는 미니 화문석 재료들을 보고 두 사람 모두 감탄사를 내지른다. “의외로 줄 맞추는 게 쉽지 않다”며 “꽉꽉 밀어가면서 짜야한다”는 조언에 따라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준다. 박가령 교사는 눈에 확 띄는 원색을, 율겸 씨는 세련된 색감의 왕골을 골라 들었다.
한 가닥 한 가닥 꼼꼼하게 밀면서 쌓다 보니 어느새 완성된 작은 화문석 발. 두 사람 모두 “너무 예쁘다”며 여기에 사진을 꽂아두자고 의기투합을 한다. 이어서 연탄을 피워 왕골을 말리는 더운 공장도 구경해 보고 긴 왕골을 도구를 이용해 3갈래로 쪼개보는 등 귀한 체험도 덤으로 해본다. 그 과정 내내 웃음과 수다가 끊이질 않는 두 사람. 세상 어느 모녀가 각별한 사이가 아니지 않겠냐마는 이들 사이의 밀도는 지금 막 직조한 화문석처럼 좀 더 촘촘하고 치밀해 보인다.
“율겸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정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율겸이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가장 많았던 할머니를 어린 율겸이가 많이 챙겼죠.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 들어간 것도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침대와 자기 방을 양보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못 알아듣는 할머니 말을 혼자 알아들어 가족들에게 전해주고 바쁜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다니며 운동을 시켜드린 것도 딸 몫이었다. 돌아가실 즈음 치매가 오신 할머니가 율겸 씨 새 옷이며 수행평가물을 내다 버렸을 때 그만 울컥해 목소리를 높인 엄마를 다독이며 “수행평가는 다시 하면 된다”고 막아선 것도 율겸 씨였다.
“엄마가 좋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사실 할머니랑 엄마랑 아옹다옹도 많이 하고 다투기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소설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할머니와의 추억은 정말 잊지 못할 것들이 많았죠.”
웃음 많고 발랄한 율겸 씨가 눈꼬리를 휘며 미소 짓는다. 자칫 감동으로 가라앉을 뻔한(?) 분위기가 율겸 씨의 웃음 덕분에 다시 훅 끌려 올라간다. 다음 코스는 강화도에 온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은 찾아가 보는 전등사이다.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지어져 고려 충렬왕 때 정화공주가 이곳에 옥등을 시주하면서 전등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서 깊은 절이다.
보통의 절이 그렇듯 이곳도 꽤나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웅보전과 그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 수령이 500년이 넘는 은행나무 등은 이곳 전등사의 상징이다. 박가령 교사가 이걸 보라며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板)’, ‘목어(木魚)’ 네 개가 한꺼번에 들어 있는 누각을 가리킨다. 작은 공간 안에 다 함께 자리 잡고 있는 건 흔한 풍경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예전에 어느 비구니가 치던, 마치 춤을 추는 듯 아름다웠다는 법고 치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음악 교사로서의 직업정신도 있지만 여행을 좋아한다는 취미의 진가도 매 순간 여지없이 드러난다.

맑은 딸, 자랑스러운 엄마

조금씩 세상이 노란빛으로 물들어가는 와중에 석모도로 들어가는 긴 다리를 빠르게 달렸다. 민머루 해수욕장에 가기 위해서다. 도착한 민머루 해수욕장은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바닷물이 빠져 꽤나 넓게 펼쳐진 갯벌이 인상적인 이곳에서 아이들은 손과 발, 얼굴에 뻘을 묻힌 채 갯벌 체험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까지 왔는데 모녀 역시 이 기회를 놓칠쏘냐. 신발을 벗어두고 성큼성큼 갯벌로 들어가는 두 여자. 사춘기 소녀로 돌아간 듯 까르르 웃고 달린다. 아기 때로 돌아간 듯 엄마 등에 덥석 업히는 율겸 씨. 엄마보다 훌쩍 큰 키를 자랑하지만 엄마를 업기는 버거워하는 딸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진다. 손을 꼭 잡은 채 일몰을 바라보는 모녀. 그 뒷모습에서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제 기억에 엄마는 늘 선생님이셨어요. 가끔은 무조건적 내 편만 들어 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선생님답게 중립적·이성적으로 상황을 봐주셨던 게 섭섭하기도 했지만 제게는 늘 한결같이 자랑스러운 엄마였죠.”
“요즘은 어쩌다 옆에서 잠든 딸을 보면 언제 이렇게 컸을까, 얘가 정말 내가 낳은 아이가 맞나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율겸이를 임신했을 때 맑고 밝은 아이를 낳고 싶다고 소원하며 태교를 했는데 출산하고 난 뒤 친구들이 찾아와 아이를 보곤 ‘어쩜 저렇게 아이가 맑으냐’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의 엄마, 지금의 딸…. 두 사람이 교환하는 시선이 아련하고 아름답다. 저녁식사는 강화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바로 젓국갈비다. <알쓸신잡>에 나와서 유명해졌지만 강화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고려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이곳만의 향토음식이다. 칼칼한 순무김치와 함께 먹는 젓국갈비 맛은 말 그대로 담백하고 깔끔한 것이 일품이다. 모두가 국물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 치웠다.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식사를 하고 나오자 광활하게 펼쳐진 파란 하늘에 모두가 감탄사를 감추지 못한다. 숙소가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던 덕분에 뜻밖에 기막힌 뷰를 선물 받은 것이다. 모두가 하늘을 흘끔대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첫 번째 방문지는 강화읍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이다. 1896년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세례자가 나온 것을 기념해 1900년에 세운 성당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으로 고즈넉하고 고아하기가 이를 데 없다.
천주교 신자인 박가령 교사의 표정이 유독 예사롭지 않다. 소박하고 단출하기 짝이 없는 사제관을 보는 애틋한 시선, 안에서 들려오는 성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깊고 짙다.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반영하고 배려한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엄마의 말에 율겸 씨 역시 “종교는 없지만 이곳에 오니 마음이 무척 편안해진다”고 속삭인다. 실제로 이곳 성당에는 타종을 해 미사 시간을 알리고 보리수나무와 회화나무를 심어 불교와 유교의 상징을 울타리 안에 두기도 한 곳이다. 미사 시간이 끝나면 다시 돌아오자고 약속을 한 뒤 이번에는 조양방직으로 향했다. 강화 최초의 인견공장으로 지금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거대한 빈티지 카페로 변신한 곳, SNS 덕분에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르는 곳이다. 줄 서서 주문하고, 다시 그 시간만큼 기다려야 음료가 나왔지만 다양한 건물들 덕분에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사방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덕분에 두 모녀도 덩달아 즐거운 촬영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다시 돌아간 성당은 미사가 끝나 문을 활짝 연 채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내부는 고풍스러운 조명과 세월이 흔적이 묻은 의자, 성당의 역사를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자연채광 덕분에 노란빛이 꽉 차 있었다.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제단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묻어난다.

서로에게 버팀목이자 삶의 희망이 되어

1박 2일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광선보’. 강화도 요새지의 총사령부로 영조 때 개축을 한 이곳은 과거부터 매우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 보 앞에 흐르고 있는 강화해협에 마포와 개성은 물론, 중국까지 직항할 수 있는 포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화약 냄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만이 남아있지만 험난했던 과거의 여정 없이 어찌 현세의 평화가 있을까.
“엄마와 다투기도 많이 다퉜지만 가장 고마운 점은 제게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주시고 꿈을 갖게 해주신 거예요. 제가 직장인으로서도 살지만, 연기하면서 연극배우로도 살 수 있는 건 모두 엄마가 ‘우물 안에만 있지 말라’고 격려하고 지지해주신 덕분이었죠. 엄마는 제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알려주신 분이에요. 그래서 힘이 들 때면 저는 지금도 엄마 목소리가 가장 듣고 싶어요.”
“율겸이는 저의 버팀목이자 내가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준 딸입니다. 스승의 날, 생일날이면 주변 지인들까지 동원해서 제게 축하 문자며 축하 편지를 보내게 할 정도로 사려 깊고 센스 있는 딸이기도 해요. 저는 지금도 말해요. 지금의 저를 만든 건 세 분의 은사님들, 학생들 앞에 떳떳이 설 수 있게 만들어준 내 자식 그리고 제게 인생을 가르쳐준 학생들이라고요.”
삶은 누구에게나 엇갈려 쌓이고 직조되는 희로애락의 집합체이다.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눈물을 쏟았지만 결국은 서로에게 힘이되었고, 앞으로도 서로가 있어서 행복할 모녀. 이번 강화도 여행을 통해 온전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속내를 들여다본 두 사람이 걷는 길이 가족을 넘어 가장 좋은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가 될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엄마, 다음 여행도 콜? OK~!

1박 2일
여행을 마치고
박가령 (부산 금정고 교사)

제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서 저를 돌아볼 수 있었고 몇 년 치 에너지를 받은 느낌이었어요. 딸과 둘이서 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이렇게 둘 관계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여행에서 저는 강화성당과 화문석 체험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양종교인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선교 활동을 하면서 우리 문화를 최대한 존중하고 접목시킨 게 엄숙한 마음이 들게 했고 문명에 물들지 않은 사제관을 보면서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어요. 바로 옆에 철종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작은 궁까지 아울러서 더욱더 좋았어요. 우리의 전통 화문석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 대표 부부와 함께했던 시간도 의미가 컸고요. 항상 공제회 회원들의 활력과 힐링을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시는 한국교직원공제회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율겸 (딸)

처음 엄마한테 갑작스럽게 여행 제의를 받고 당황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결국 엄마 덕분에 이렇게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쌓고 갑니다. 사실 평생 화문석에 대해서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직접 만들어보기까지 했으니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0년 뒤에 아는 것과 지금 아는 건 분명히 차이가 있잖아요. 여행하면서 늘 잘 웃고 한결같은 엄마의 면모를 다시금 볼 수 있어서 좋았고 특별한 장소에 갈 때마다 관련 배경을 설명해주시고 재미난 뒷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이어서가 아니라 엄마는 평소에도 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데 그런 엄마여서 정말 좋았어요. 서로 일부러 맞춘 것도 아닌데 빨간 가방에 비슷한 옷을 챙겨온것도 재미있었고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요? 엄마 고맙습니다~♥

모녀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 강화도령 화문석

    강화도 최초로 왕골 재배부터 제작, 판매, 교육까지 하는 곳이다. 때를 잘 맞춰 가면 왕골을 말리고 쪼개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화문석 발, 티 코스터, 테이블 매트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화문석자리와 공예품도 구입할 수 있다.

    032-934-6858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 207-3
  • 민머루 해수욕장

    석모도의 유일한 해수욕장으로 생태관광지로 지정되어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수십만 평 규모의 갯벌이 등장해 장관을 이루는데 갯벌을 체험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희귀종인 저어새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1리
  • 성공회 강화성당

    강화성당은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424호. 외관은 한옥, 내부는 서양식으로 지어진 서구기독교 토착화의 산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이다. 백두산 적송을 직접 신의주에서 뗏목으로 운반해와 지었으며 석재와 기와는 강화산을 사용했다.

    032-934-6171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정길 27번길 10
  • 젓국갈비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새우젓과 돼지고기를 함께 즐겨왔다. 강화도 향토 음식인 젓국갈비는 새우젓만으로 간을 하고 여기에 각종 채소와 돼지갈비를 넣어 끓여먹는 음식이다. 임금이 먹던 음식으로 담백한 감칠맛을 자랑하며 한번 먹어보면 자꾸 찾게 된다.

    032-933-8070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 21번길 22 용흥궁 식당
<아름다운 동행>은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아름다운 동행’은 독자 여러분이 주인공입니다.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할 참가자를 모십니다.
가족, 친구, 제자 등 사랑하는 사람과
특별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아래 메일로
성함, 연락처, 참여 인원 및 관계와 참가 이유를 보내주세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The–K 매거진>이
만들어드립니다!
<The–K 매거진> 편집실
E–mail. mkt00@hanaroad.com

services s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