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쨍한 햇살이 좋은 가을이다. 교실 창문을 열고 창밖을 내다본다.
한결 서늘해진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등교하는 아이들로 조용했던 학교가 활기차다. 친구들과 재잘대며 걸어오는 아이들이 정겹다. 수많은 무리 속에 우리 반 개구쟁이들이 반짝인다.
하나, 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온다. 고요하던 교실이 아이들의 목소리로 이내 가득 찬다. 뭐가 그리 급한지 벌써 교실 한구석에서 가져온 돗자리를 펼쳐보기도 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을 열어 챙겨온 간식부터 서로 챙긴다.
“난 고구마 싸 왔어. 넌?”
“난 사과. 애들이랑 나눠 먹으려고 젤리도 싸 왔어.”
“얼른 나가고 싶어요.”
매월 하는 학급 행사지만 아이들의 목소리에 기대와 흥분이 잔뜩 배어있다.
오늘은 ‘우리 반의 날, 학교 소풍’을 하는 날이다. 한 달에 한 번 교실 자리를 바꾸며 학급행사를 한다. 우리 반의 날에는 한 달 동안 같은 모둠이었던 친구들과 간식을 나누며 서로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한다. 또, 다른 교과나 창의적 체험 활동을 더해서 체육활동을 하거나 공동체 놀이, 미술치료, 집단상담, 학급평화회의 등을 하기도 한다. 이달에는 가을을 맞아 ‘우리 반 소풍’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국어과 독서 단원과 연계해 야외에서 책 읽기도 할 계획을 세웠다.
보통 우리 반의 날은 교실에서 한다. 가장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반의 날이 교실소풍으로 정해지면 교실에 돗자리를 펴기도 한다. 그러면 그 순간 교실은 딱딱한 의자와 책상이 아닌 편안한 나눔과 소통의 공간이 된다. 교실이 아이들에게 더욱 편안하고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어 나름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학교 소풍으로 바깥에서 활동할 때다.
10월, 하늘이 맑고 공기가 서늘한 가을이 왔다. 야외 활동하기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날이 너무 덥거나 추운 날, 미세먼지가 나쁘거나 비가 오는 날 등을 제외하면 일 년에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런 좋은 계절,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실내에서만 머무르기가 너무 아쉬웠다. 며칠 전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요즘 날씨가 정말 좋은데, 우리 반의 날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
“소풍 가고 싶어요.”
“공원에 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우리 반의 날은 근처 공원에서 하는 학교 소풍이 되었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했다. 돗자리와 간식, 읽을 책을 한 권씩 들고 교실을 나와서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함께 공원을 돌았다. 초록빛 짙던 나뭇잎이 슬슬 가을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노랗고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벌써 가을이 다 온 것 같네.”
“지난주 까지만 해도 낮에 더웠는데 이제 시원해졌어요.”
“요즘은 창문 열어 놓으면 에어컨 바람이 밖에서 불어오는 것 같아요.”
저마다 느끼는 계절의 변화를 각자의 이야기로 풀어놓는다.
나무 그늘 아래 넓은 평지에 돗자리를 폈다. 아이들은 스스로 준비해온 간식을 예쁘게 차리고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편안한 자세로 가지고 온 책을 함께 읽었다.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서로 읽어주는 시간도 가졌다. 제법 진지하게 자기가 고른 글귀를 들려주기도 하고 다른 친구가 읽어주는 글을 듣기도 했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아주 잠깐 책을 읽었다. 고개를 돌려 찬찬히 주변 풍경을 살펴보았다. 강아지와 산책 나온 사람들, 유모차 끌고 지나가는 아이 엄마, 친구들과 운동하러 나오신 동네 아주머니들. 자연스럽고 평화스러운 일상이었다. 사실 늘 보던 풍경이었다. 스치듯 지나치다 천천히 머물러 바라보니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 바람에 흔들리는 풀, 가을로 변해가는 풍경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는 모습들은 저마다 다르다. 집중하며 눈을 반짝이는 아이, 심각한 장면인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아이, 슬며시 미소를 짓는 아이 등 표정도 제각각이었다. 책 읽기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공원에서 자연을 느끼며 친구들과 함께하는 읽기 경험이 아이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안 돼요. 선생님. 한 시간만 더 있어요!!”
아쉽지만 가야 할 시간이었다. 주변 정리를 하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하늘색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시리도록 파랬다. 돌아가기 아쉬워하는 아이들과 잠시 함께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준비해간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도 틀어주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살랑거리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싱긋이 웃으며 편안한 모습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을 소풍이 된 우리 반의 날. 급하게 달려가는 일상을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 그 순간을 함께 음미할 수 있다면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구소희 교사는 관계와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상이 일상이 되는 즐거운 상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선생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