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 3월에 첫 제자들을 만났다. 궁금증 가득한 2학년 아이들의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떨림을 애써 감추며 내 소개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불쑥 말했다.
“선생님, 저는 작년에 시험 거의 다 100점 맞았어요.”
아이의 우렁찬 목소리만큼이나 나는 당황했다. 그저 “도희는 공부를 잘 했나 보구나”하고 넘어갔다. 그게 화근이었던지 도희는 이후에도 수업의 흐름을 뚝 끊으며 자기 자랑을 해댔다. 왜 자꾸 잘난 척이냐며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그제야 주의를 주었다.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일이 터졌다.
“선생님, 도희가 책상 엎고 소리 지르면서 울어요!”
중간놀이 시간, 협의실에서 잠시 숨 돌리고 있던 때였다. 한 아이가 내게 달려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놀란 나는 교실로 달려갔다. 도희의 책상이 앞으로 엎어져 있었다. 도희는 자기 자리에 우뚝 서서 울부짖었다. 그런 도희를 아이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온몸으로 화를 뿜어내는 아이를 누구도 선뜻 달래지 못했다.
일단 아이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도희와 이야기를 나눴다.
“도희야, 아까 왜 그랬니?”
“애들이 막 저한테만 뭐라고 했어요.”
“그래? 아이들이 뭐라고 했는데?”라고 묻자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꽤 오래 기다리고 나서야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도희가 자기 자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다른 아이 자리로 치웠고, 그걸 본 아이들이 안 된다고 말했다. 도희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그런 데다 여러 명이 뭐라고 하니 당황한 나머지 말보다 몸이 앞선 것이다.
도희 어머니와 통화했다.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연거푸 죄송하다고 했다. 도희의 성장 과정도 들을 수 있었다. 도희는 여섯 살에야 말이 트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어머니는 도희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다 들어주셨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그동안 도희의 행동들이 이해되었다. 동시에 연민의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나는 도희에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그러려면 도희가 학급 규칙을 잘 지켜야 했다. 도희가 책상을 엎고 친구를 때리고 미운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역지사지를 가르쳤다. “도희가 이 친구였다면 마음이 어땠을까?”라고 수없이 물었다. 그러나 자기 세상에만 갇혀 지냈던 도희에게 규칙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도희는 걸핏하면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라고 물었다.
발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학생이 발표하고 싶어 손을 들어도 수업 시간상 다 시키지 못할 때가 있다. 도희는 발표하지 못하면 책상을 쿵 치거나 “왜 저만 안 시켜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시간에 발표 못한 사람 손들어 볼까? 봐, 도희야. 이렇게 많은 친구가 발표를 못했단다. 아쉬운 마음은 우리 모두 똑같아. 선생님도 더 많은 친구들을 시켜주지 못해 아쉽고. 그렇지만 우리가 앞으로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많단다. 그러니 도희야, 아쉬워도 우리 다음을 기다려보자.”
그러자 놀랍게도 도희는 변했다. 점차 도희의 눈과 마음이 다른 아이들을 향했다.
도희는 왜 자기만 혼내냐고, 왜 자기만 안 시켜주냐고 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울음이나 폭력이 아닌, 말로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다른 규칙들도 하나, 둘 지켜나갔다. 그러자 오히려 다른 아이들이 도희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도희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도희는 정말 ‘우리 반’이 되었다.
마지막 날, 도희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선명하다.
“선생님, 도희가 많이 컸어요. 선생님께서 도희가 우는 대로 다 들어주셨다면 이렇게 변하지 않았을 거예요. 도희를 이해시켜주셔서 감사해요. 마음 같아서는 내년에도 우리 도희, 선생님께 맡기고 싶네요.”
내년에도 내게 아이를 맡기고 싶다는 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스스로 하고 함께하는 행복한 학급’. 지금 우리 반 급훈이다. 도희를 가르친 후 매년 ‘함께’라는 말을 급훈에 넣었다. 함께의 힘을 믿는다. 매일 아침 출근하며 복도에 서서 급훈을 꼭꼭 가슴에 새긴다.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가 올해 만난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을 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되뇐다.
‘그래, 우리 함께.’
*아이 이름은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김누리 선생님은 ‘스스로 하고 함께하는 행복한 학급’이라는 급훈과 더불어, ‘함께의 힘’을 믿으며 아이들과 행복한 일상을 가꿔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