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55] 인생 2모작

관객 역할에 머무르지 마세요,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

시니어 모델 김선

2020년, ‘오팔 세대’가 급부상하고 있다. 「2020 트렌드 코리아」에서 정의한 오팔(OPAL)은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앞글자를 딴 조어로 5060 세대를 일컫는다. 이들은 은퇴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여가 활동을 즐기면서 자신을 가꾸는 데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는 특징이 있다. 자신을 가꾸고 당당히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오팔 세대. 그 정점에 시니어 모델이 있다.
  • 글. 이성미
  • 사진. 김도형

장소협찬 : 못골 한옥 어린이 도서관
교사 김인옥에서 모델 김선으로

한국시니어스타협회 연습실. 조명이 반짝이는 연습실 무대 위에서 모델들의 워킹 연습이 한창이다. 짧은 치마, 굽 높은 신발, 화려한 메이크업.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모와 당당한 워킹. 이들은 자랑스러운 시니어 모델들이다. 시니어 모델이라고 해서 일반 모델과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패션쇼부터 CF, 예능, 연극 무대 등 어디에나 설 수 있다. 오늘날 시니어 모델의 위상이 높아지고, 활동 영역이 활발해진 데에는 한국시니어스타협회 김선 대표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김선 대표의 전직은 바로 초등학교 교사. 김선 대표는 지난 2016년 서울 노원구 연촌초등학교를 끝으로 35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명예퇴직했다.
“은퇴를 결심하고 나서 스스로 ‘난 뭘 좋아하지?’라고 물었는데, 무대가 떠올랐어요. 어릴 때 ‘배우’, ‘모델’을 꿈꿨지만 이루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죠.”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공주 선생님’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미모의 그녀였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짙은 화장을 하고 무대 위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주변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교사’, ‘엄마’로 익숙했던 그녀가 갑자기 모델을 한다고 하니 “미쳤냐?”라고 묻는 이도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시니어 모델’에 대한 인식은 극히 빈약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무엇도 김선 대표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어릴 때부터 오래도록 간직해온 꿈이었다. 다행히 미즈코리아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그 후로 각종 매스컴에서 섭외 요청이 이어졌다. 방송 출연과 제품 광고 모델은 물론 각종 영화에 단역 배우로도 출연했다. 그렇게 교사 ‘김인옥’이 아닌, 모델 ‘김선’으로서의 인생 2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교사 중에도 재능 많은 사람이 참 많아요.
‘교사는 점잖게 행동해야지’라는 틀 속에서 인생의 반을 살아왔다면,
인생의 반은 과감히 그 틀을 깨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우리 함께 시니어의 힘을 보여줍시다.
시니어 모델의 멘토가 되다

“모델이 되어서도 시니어 모델의 활동 영역을 넓힐 방법이 없을까? 계속 고민했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니어 모델이라고 하면 한복 모델 정도로만 여겼거든요. 그러다 장기봉 예술감독을 만나 협회를 세우게 되었지요.”
한 행사에서 장기봉 감독을 만난 김선 대표는 “시니어들의 꿈을 찾아주자”라며 장 감독과 의기투합 했고, 서울 강남구에 ‘한국시니어스타협회’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시니어 모델들의 놀이터이자 아카데미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협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시니어 모델들은 워킹, 안무, 연기 등을 연습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굴하고, 더욱더 당당히 무대에 섰다.
장기봉 감독은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감출 수 없는 끼와 재능이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세대입니까?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을 피해 다니면서도 멋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고, 억압 속에서도 통기타 문화, 히피 문화 등을 만들어냈던 세대입니다. 가장, 부모의 역할에 충실 하느라 잊고 살았을 뿐, 우리 안에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 유전자가 대물림되어 오늘날 세계적인 한류 스타들이 나왔고요.” 장기봉 감독의 말처럼 시니어 모델들은 협회 안에서 공무원, 군인, 주부 등 전직의 무게를 떨쳐버리고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한다. 지난 12월 부산 해운대 빛축제에서는 힙합로드패션쇼에 참가해 청년들과 함께 호흡하기도 했다. 패션쇼 무대가 끝나고 남편에게 꽃다발을 받으며 “난생처음 ‘나도 여자구나’라는 것을 느꼈다”라고 흐느끼는 시니어 모델을 보며, 김선 대표는 이 길을 걷길 잘했다고 느낀다.

마음껏 즐겨보세요, 그리고 빛나세요.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여전히 시니어 모델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고, 그 때문에 당당히 무대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시니어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니어 모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그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 계속 힘을 쓰려 합니다.”
김선 대표는 시니어 모델이 하나의 직업으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시니어 모델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그들의 열정과 노력이 수입으로 이어지는 데에도 힘을 쓰려 한다. 물론 그만큼 모델들도 일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인생 2막은 좀 편하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힘들고 어렵더라도 인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델’ 타이틀에 걸맞은 자기관리도 필수다. 또한 퇴직 후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는 교사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교사 중에도 재능 많은 사람이 참 많아요. ‘교사는 점잖게 행동해야지’라는 틀 속에서 인생의 반을 살아왔다면, 인생의 반은 과감히 그 틀을 깨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우리 함께 시니어의 힘을 보여줍시다.”
젊은 시절 옷장에 두고도 마음껏 입지 못했던 짧은 치마, ‘엄마’라는 제약 때문에 신지 못했던 하이힐, ‘아빠’라는 제약 때문에 입지 못했던 꽃무늬 티셔츠. 인생 2막에는 마음껏 입어 보고, 신어 보면 어떨까? 이왕 입고, 신었다면 무대로 나와 마음껏 끼를 발산해보는 것은 어떨까? 시니어 모델에는 정년이 없고 우리 마음에는 청년이 있으니, 새해에는 과감히 무대 위로 올라가 보자. 그리고 마음껏 빛나보자. 혹시 내가 새로운 한류 열풍의 주역이 될 줄 또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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