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시 앙성면에 자리한 앙성초등학교. 올해로 92회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 깊은 학교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서서 학교는 지역의 크고 작은 변화를 지켜봐 왔다. 인구 감소로 주변 초등학교들이 차례로 문을 닫는 모습도 목격했다. 그리고 2019년에는 면 내 두 개 초등학교 중 하나였던 강천초등학교마저 앙성초등학교에 통폐합되면서, 앙성초등학교는 앙성면 유일의 초등학교로 남게 되었다.
학교가 사라진다는 상실감도 잠시, 강천초등학교와 앙성초등학교의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들은 새로운 숙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학교가 통폐합되면서, 앙성초등학교의 공간 개선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수용함으로써, 모두가 만족할만한 학교를 만들어야 했다.
권혁화 교장은 “역사가 오래된 학교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보수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예산은 정해져 있어 무작정 손을 댈 수 없었고, 학생들에게 빠른 시일 내에 학교를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습니다. 경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최고의 공간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 학부모통폐합추진단과 시·도 교육청 그리고 교직원들이 머리를 맞댔죠”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학교를 리모델링하며 많은 의견이 나왔으나, 결국 답은 한 가지로 좁혀졌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며, 학교 안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교실”이라는 것. 그리고 무리한 공간 확장이나 특별실 마련보다는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교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앙성초등학교의 가장 큰 자랑은 다름 아닌 교실이에요. 안방 같고, 카페 같은 교실이요.”
아름다운 공간에서 아름다운 꿈이 자란다. 앙성초 사람들은 먼저 경직되고 획일화된 교실을 바꿔보기로 했다. 안방처럼 편안하고, 카페처럼 어울려 소통하는 곳. 공부만큼 관계도 중요하기에, 교실 안에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공간을 과감히 배치했다. 대신 놀면서 배우는 것이 많은 1·2학년 교실은 학습공간과 놀이 공간을 2대 8 비율로, 3·4학년은 5대 5, 5·6학년은 8대 2 비율로 학년별 비중을 달리했다.
1·2학년 교실에는 교실 안에 미끄럼틀을 놓는 등 학년별 눈높이에 맞는 학습 공간과 휴게 공간 인테리어도 서로 다르게 뒀다. 또 학년별로 교실 전체의 색상과 조명, 구조 등 인테리어에 차별화를 두어 새 학년에 올라갈 때마다 새 교실에서 공부한다는 기쁨을 만끽하게끔 했다.
“출입문 색깔과 유리창 모양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층마다 인테리어를 다 다르게 했어요. 교실에서 쓰는 책상 색깔도 아이들이 마음에 드는 색으로 각자 골라서 쓰게 했죠. 세상에 똑같은 아이가 없듯이 공간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창의력도 쑥쑥 자랄 것이고요.”
공간의 쓰임도 더욱 효율적으로 바꿨다. 먼저 교실 안에 칠판을 앞뒤로 두어 어느 방향에서나 자유롭게 수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교실 모퉁이에는 세면대를 놓고 수납공간을 최대한으로 마련해 학생들이 교실 안에만 있어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그리고 교실마다 중문을 설치해 필요 시문을 개방하여 공간을 넓게 쓰도록 했다. 교실이 넓으면 아이들이 뛰어놀거나 참여 수업을 하기에는 좋지만, 여름과 겨울철 냉난방비 부담이 있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3층 복도와 옥상정원의 경계에도 중문을 설치하여 여름에는 중문을 열고 교실 안에서 싱그러운 바람을 맞을 수 있게 했다.
음악실 안에 개인 피아노 레슨실을 만들고, 고품격 영어 교육을 위한 글로벌실을 두는 등 특별실 개선도 놓치지 않았다. 또 복도에는 보드를 부착하고 테이블을 두어 학생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건의사항을 적거나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가 바뀌자 학생들도 바뀌었다. 학교가 통폐합되면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던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제 아무런 걱정 없이 학교로 향하게 됐다. 또 공간의 변화는 학생들이 “우리는 전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다닌다”라는 자부심을 품게 했다. 학생들은 어른들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학교를 소중히 여길 방법을 고민하고, 자발적으로 규칙을 만들어 실천한다. 도서관 내 좌식 마루에 신발을 신고 오르지 못하도록 규칙을 만들고, 공간 개선에 대한 건의사항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아름다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어느 날 학생 한 명이 제게 와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교장 선생님, 저는 이 학교에 와서 많이 자란 것 같아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제가 고마웠어요.”
마음이 하나로 모이면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학교는 몸소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더 큰 꿈을 갖게 했다. 또 스마트폰과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던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친구와 어울려 노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앙성초등학교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학교를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놀이터로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