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쉬어가기
더-쉼

느리게, 여유롭게,
‘제주 한 달 살기’에서 찾는 쉼표

지난 몇 년간 제주 한 달 살기가 대유행을 한 후, 이제는 해외 한 달 살기로 눈길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편리함, 안전함, 경제성 등 모든 면을 종합적으로 따져볼 때 제주만 한 곳을 찾기도 힘들다. 필자는 도시 여행자로서 지난 7년간 제주 한 달 살기를 실천하는 분들의 시행착오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제주 한 달 살기를 계획하고 있는 분들께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실질적인 정보를 담아보았다.
  • 글_사진 이연희(㈜레이지마마 대표, 「아이랑 엄마랑 제주 한달」 저자)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장 이국적인 국내 도시, 제주

야자수와 에메랄드빛 바다, 동네 곳곳에 솟은 봉긋한 오름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진초록과 현무암이 어우러진 제주 풍경은 언제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새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고, 탁 트인 하늘을 보며 운전을 하고 걷는 행복감.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의 소중함은 빌딩 숲으로 돌아가고 난 후 가장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한 달 살기를 여러 번 거친 후 아예 살러 오는 ‘제주 이민자’들이 생긴다. 잘 나가던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 마을 구석구석 생뚱맞은 곳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를테면, 하루 20그릇만 팔고 문을 닫는 카레 가게, 골목 한구석에 보이지도 않게 작은 간판을 걸어놓고 영업하는 책방, 일주일에 4일만 문을 여는 카페를 보면 유유자적한 그들의 삶이 부러워진다. ‘덜 일하고, 덜 소비하며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사는 삶’은 우리 모두의 로망이 아니던가. 이렇듯, 다양한 방식의 삶을 목격하고 영감을 얻는 것은 짧은 여행에서는 얻기 힘든 한 달 살기의 큰 매력 중 하나이다. 또한 일단 말이 통하니 마음의 부담이 적고, 큰돈이 들지 않는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한 명만 한 달 살기를 해야 할 상황이면, 주말이나 유사시에 쉽게 가족이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 9월 제주, 한치 말리는 풍경. 반쯤 말린 한치 구이를 사서 맥주와 함께 먹어보자.
  • 4월 제주에선 직접 딴 고사리로 라면을 끓여먹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어느 계절이든 좋은 제주살이

제주는 어느 계절에 살아도 후회하지 않을 매력이 있다. 2월에는 산 하나를 몽땅 불태우는 들불 축제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관이고, 3, 4월에는 유채도 좋지만, 각종 마늘이며 양파며 이삭줍기의 재미가 쏠쏠하다. 5월에는 귤꽃 향기가 진동하고, 6월에는 수국이 만개한다. 7, 8월에 즐기는 제주 바다는 하와이 못지않게 깨끗하고 아름답다. 제주의 가을은 비리지 않은 고등어 회를 맛볼 수 있는 최적의 시기다. 흐드러진 메밀꽃밭을 지나는 올레길을 걷고, 소와 말이 풀을 뜯는 풍경을 보며 오름에 오르고, 매일 고등어 한 마리씩 구워 먹는 삶을 꿈꾼다면 가을에 제주 한 달 살기를 추천한다. 겨울은 귤 인심이 풍족하다. 동사무소에도 식당 문 앞에도 하나씩 들고 가라고 내놓은 귤이 가득하다. 동네 마트에서 신선한 전복과 방어회를 사다 먹을 수 있는 계절도 겨울이다. 눈이 한바탕 오고 나면 제주 아이들은 마방목지나 1100고지, 어리목 등등 한라산 자락 곳곳으로 천연 눈썰매를 타러 간다. 하얀 눈밭을 구르고 씽씽 썰매를 타며 놀던 겨울 한라산의 추억은 우리 아이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제주살이의 추억 중 하나다.

숙소는 함께할
친구가 있는 곳으로

한 달간 편안한 생활을 위해 숙소를 잘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에 100% 부합하는 완벽한 숙소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예를 들어, ‘아이가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서 뛰어놀았으면 좋겠지만 벌레가 있으면 곤란하다’, ‘바닷가 돌집에 살아보고 싶다. 단, 보안은 철저해야 한다’라는 식의 기대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우선순위를 정해 가장 중요한 것만 충족되면 나머지는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게 좋다.
두 아들을 키우는 필자의 경우 한 달 살기를 할 때 가장 고려했던 점은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가였다. 아이들과 함께 낯선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는 것은, 곧 아이가 학교도 유치원도 가지 않고 내 옆에 24시간 붙어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따라서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마당과 이웃에 또래 아이들이 몇 명이라도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아줘야 엄마가 커피 한잔이라도 마실 여유가 생기고, 제주도까지 와서 밤낮 핸드폰만 붙들고 있는 아이들과 씨름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교직원공제회 회원이라면 ‘The-K 휴스테이’ 중 ‘제주 롱스테이’를 눈여겨 보자. 제주시와 서귀포시 등지에 마련된 5개의 숙박시설은 리조트형과 펜션형으로 다양함을 선사한다. 한 달 살기 숙소 할인은 물론, 맞춤 렌터카 할인 및 레저 체험시설 할인까지 제공되니 꼼꼼히 살펴보고 혜택을 누려보자.

  • 이런 풍경이라면 운전도 지루하지 않다.
  • 오름 산책 중인 엄마와 아들
  • 부두식당 방어회
렌터카보다는 탁송 서비스

제주도 생활에 자동차는 필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많이 걸으며 느릿느릿 사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아이와 함께 뚜벅이 생활은 너무 힘들다. 시내 한복판이 아니라면 쓰레기조차 자가용을 타고 나가서 버려야 하고, 버스가 하루에 네다섯 번만 운행되는 지역도 많기 때문이다. 한달 간 렌터카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타던 차를 배에 실어 보내는 탁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익숙한 내 차로 다닌다는 심리적 안정감도 있지만, 한 달 생활에 필요한 많은 짐을 차에 실어 보내고 아이들과 캐리어 하나만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기 때문이다. 비용도 렌터카와 비슷하거나 저렴한 편이다.

짐은 최소한으로,
하지만 꼭 필요한 건!

한 달 동안 집을 떠나 있으려니 이것저것 다 필요할 것만 같은 불안함에 거의 이사 수준으로 짐을 꾸리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우리가 호텔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집처럼 물건이 많이 쌓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달 만이라도 미니멀리스트처럼 단출하고 쾌적하게 살아보자. 굳이 감자 깎는 칼이 없어도, 에어프라이어가 없어도 다 살게 마련이다. 짐을 줄이고 줄이는 와중에도 꼭 챙겨야 한다고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무 데나 착 펴고 앉을 수 있는 돗자리와 도시락통. 노키즈 존에 분노하고 눈치 보며, 굳이 전망 좋은 맛집을 찾아다닐 필요 없다. 제주도는 돗자리 펴고 앉는 곳이 다 전망 좋은 맛집이기 때문이다.

  • 올레21코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보말캐기
  • 한라산의 설경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손님 초대

제주에 한 달간 숙소를 구하고 나면 주변의 많은 지인들이 갑자기 상냥하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어머 부럽다. 우리 주말에 가면 재워줄거지?” 설마 진짜 오겠냐는 생각에 빈말이라도 “그래. 놀러 와!” 하면 진짜로 오는 확률이 매우 높은 곳이 제주도다. 항공편이 워낙 자주 있고, 푯값이 싸서 웬만한 지방 도시보다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인들이 오면 숙소만 나눠 써야 하는 게 아니다. 차도 함께 타야 하고, 밥도 함께 먹어야 한다. 나는 한달 살기 중이지만, 여행 온 친구들은 단기 여행자라서 온 김에 가봐야 할 핫 플레이스가 너무나 많다. 별생각 없이 지인들을 초대했다가, 매주 찾아오는 친척, 아이 친구 엄마, 직장동료 가족들의 가이드 노릇을 하느라 한 달이란 시간을 집에 있는 것보다 더 피곤하게 보냈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한 달 살기의 목적이 고마운 분들과 함께 시간 보내기라면 모를까, 제주의 여유로운 삶을 경험할 계획으로 왔다면, 배우자나 부모님 외에 지인 초대는 매우 신중하게 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의 경험을 해보고 싶은 욕구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 하루에 여덟시간 자기. 아이와 밀도 있는 시간 보내기, 인스턴트 음식 끊어보기, 100km 걷기, 오름 10개 오르기, 책 다섯 권 읽기, 매일 요가와 명상하기 등등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딱 그거 하나면 됐다’하는 마음으로 한 달을 살면 나중에 후회나 아쉬움이 없다.

  • 시골 학교 운동회는 동네 사람들의 잔치
  • 개구쟁이 동네 꼬마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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