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해 전 7월이었다. 유난히 더운 그해 여름, 20명 남짓의 아이들은 에어컨도 이기지 못하는 더위에 연거푸 손부채질만 하고 있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각종 행사로 뒤처진 수업 진도를 나가기 바빴다. 지쳐가는 아이들과 마음만 조급해진 선생님의 온도 차는 점점 커졌다. 학기 초의 설렘과 열정은 더위와 함께 늘어지고 있었다. 우리 반은 늘 꼴찌 반이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반과 운동 시합을 하면 매번 지고, 시험을 쳐도 늘 마지막을 차지했다. 보이지 않게 서로에 대한 원망이 쌓여갔다. ‘누구 때문에 졌어’라는 마음이 아이들의 마음에 몰래 싹트고 있었나보다. 아이들이 너무 기죽어 보여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다 같이 어깨가 으쓱할 만한 일 말이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텅 빈 교실에 문자 메시지 알림 소리가 울렸다.
「우리 학교 자랑하기 UCC 대회 참가 안내」
고민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교내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보다 바깥세상에서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학교밖에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컸다. 모두 한 팀이 되어서 말이다.
그러나 뜨거운 여름날의 6학년 학생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엇인가를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지원하지 않았다. 특히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 6학년 아이들에게 표현활동은 엄청난 일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바로 상금이다.
“이 대회의 상금은 여러분들이 사회에서 처음 버는 돈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미션은 ‘우리 학교자랑 UCC’를 다 함께 만드는 일입니다.”
아이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노력으로 작품을 만들어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지쳐있던 아이들의 눈동자에 반짝 빛이 났다.
“우리가 상금을 받으면 두 번째 미션이 주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든 상금 지출 계획서 중 가장 우수한 것을 뽑아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아이들은 또다시 술렁거렸다. 게임머니를 사겠다거나, 현금으로 나눠 가져가겠다는 등 신나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우선 첫 번째 미션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겠죠? 우리 다 같이 해봅시다.”
우리 반의 열기는 결국 여름날의 무더위를 이겨냈다. ‘학교 자랑거리 10가지 찾기’라는 첫 번째 미션에 아이들은 학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학급 어린이회의는 UCC 제작협의회가 되었고, 그렇게 오랜 논의 끝에 10개의 자랑거리와 각자의 역할을 정할 수 있었다.
모든 아이들은 각자의 역할을 다했다. 촬영, 연기는 물론 소품, 효과음, 대사 작성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맡았다. 동영상 만들기에 딱히 할 것이 없었던 아이들은 자진하여 잡일을 도맡아 했다. 처음으로 20명의 아이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동기 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촬영은 순조로웠지만, 편집은 고통스러웠다. 열심히 찍은 영상이었지만 막상 편집하려고 보니 어색하거나 실수투성이였다. 5분짜리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며칠을 밤새 컴퓨터 작업을 했다. 촬영을 마치고 일주일 후 우리 반에는 큰 웃음소리가 퍼졌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동영상 편집이 끝나 시사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영상 속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하나같이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이 순간 우리는 모두 1등이었다.
결과 발표가 났는데, 무려 우수상이다. 수상 소식을 알리자 아이들의 환호성에 교실이 떠나갈 듯했다. 대상이 아니어도 아무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날 하루만큼은 모두 축제 분위기였다. 너무나 기뻐 우리가 만든 동영상을 다시 보고 또다시 봤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다. 소식을 듣고 부러워하는 다른 반 아이들에게 마음껏 우쭐거렸다.
아이들도 ‘함께’의 힘을 느꼈나 보다. 처음 발표와는 달리 상금 지출 계획서는 모두를 위한 내용으로 가득 찼다. 선생님 감사선물, 불우이웃돕기, 동생들 간식 사주기, 학급문고 구매 등 계획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졌다.
한 편의 영화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다시 2020년 7월로 돌아왔다. 코로나19로 당분간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가 계속될 것 같다. 교실의 책상은 서로 떨어져 있고, 쉬는 시간 옹기종기 모여 재잘거리는 모습을 당분간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추억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무엇보다 건강과 안전이 우선인 요즘,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 ‘함께’라는 소중함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