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3월 교육 현장에 들어와 2002년 해남 마산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하기까지 43년 11개월간 교직 생활을 했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나오고 또 바로 교단에 섰으니 일생을 학교에서만 있었던 셈이지요.” 지난 교직 생활의 햇수를 셈하며 박영철 회원은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한 마디로 ‘즐거웠노라’고 평했다. 돌아보면 어렸을 때부터 바랐던 교사의 꿈을 이뤘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도 실컷 하며 살아왔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라는 공자의 말처럼 그는 단순히 배우고 좋아하는 것을 뛰어넘어 음악을 즐기며 살아왔다.
박영철 회원과 합창의 만남은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교육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그곳에서 광주 CBS 여성합창단 지휘자인 장신덕 교수를 만나 음악적 소양을 넓혔다. 합창뿐만 아니라 피아노 연주, 국악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에 심취한 그는 교사가 된 후에도 광주전남 지역 음악 동호회인 ‘소리회’, ‘전남초등교원합창단’ 등을 창단하고 모임을 이끌어나갔다. 그가 건넨 명함 뒤편에는 전(前) 전남초등음악교육연구회 회장을 시작으로 현(現) KWIC 여성합창단 단장까지 10줄이 넘는 이력이 쭉 적혀있다. 그는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오며 뿌린 음악의 씨앗에서 건강한 열매들이 탄생했다고 자부한다.
“제가 광주 중앙초등학교에 재직했을 당시인 1975년, 음악 교육 지도법과 아동 음악 등을 연구하는 모임인 소리회를 창단했습니다. 소리회 활동을 통해 유명 작곡가, 지휘자 등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광주전남 지역 음악 교육 관련 모임은 모두 소리회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지요.”
소리회 뿐만 아니라 전·현직 교사들이 모여 만든 전남초등교원합창단도 교사들의 음악적 역량을 키우고, 학교에서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이루어지는 데에 보탬이 되고 있다. 이렇게 음악과 관련된 활동을 활발히 해오다 보니 사람들은 박영철 회원을 ‘광주의 베토벤 박영철’, 줄여서 ‘박토벤’이라고도 부른다고. 박영철 회원은 “당시 머리 긴 헤어스타일도 박토벤이란 별명을 얻는 데 한몫한 것 같다”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음악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다 보니 어느덧 정년이 되었다. 교단에서 내려오면서 그는 더 많은 시간 동안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평생 쌓아온 노하우를 후배 교사들에게 전수할 기회도 생겼다. 퇴임 후 광주교육대학교 교원연수원 겸임교수로 일하게 된 것. 그렇게 선생님의 선생님으로 일하며 박영철 회원의 입지는 광주전남 지역 음악 교육의 뿌리로서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7년 후인 2009년, 한 번 더 교단을 내려오며 그는 일반 시민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는 (사)한국복지정보통신협의회(Korea Welfare Info–Communications Association, 약칭 KWIC) 소속으로 여성합창단을 창단하여 건강한 여가를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지휘봉을 들었다.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합창단을 조직하고 운영하기란 쉽지 않았다. 연습실을 비우게 되면서 급히 이사할 곳을 찾아야 했던 일, 집안 사정으로 합창단 활동을 계속하지 못하게 된 단원을 위로하며 함께 속앓이했던 일 등 고비와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은 광주YMCA 안에 있는 연습실을 얻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올 초부터 코로나19가 확산하며 모임을 자제하고 있다고.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가 깨달은 사실은 합창단 지휘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절대 음감이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합창단 지휘자의 최고 자질은 자세를 낮추고, 사람의 마음을 구하는 겸양(謙讓)이다.
“합창은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모으는 일이 아니에요.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마음을 모으는 일이죠.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일에 대한 근심을 잊고, 오롯이 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진정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지휘자의 역할입니다.”
단원들과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여행을 다니고,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이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다. 덕분에 박영철 회원과 합창단원들은 고령임에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말했다.
“음악은 인생을 위해 충분하지만, 인생은 음악을 하기에 너무나 짧다.”
그의 말처럼 음악은 우리의 인생을 풍족하게 채워준다. 동시에 평생을 해도 부족하다 느낄 만큼 음악은 사람을 몰입하게 한다. 그가 80세가 넘는 지금까지 지휘봉을 놓지 않는 이유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음악을 더 오래 하기 위해 꾸준히 건강 관리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영철 회원은 산행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무등산에 오르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그러면서 동아리 단원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무등산 봉황대 아래에 있던 6·25 참전 용사 충혼비를 새로 제작해 세우는 등 의미 있는 활동도 함께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그간의 활동이 담긴 빛바랜 사진들을 한 장씩 보여주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지금도 어디든 버선발로 뛰어나간다”라고 말한다. 인생 2막을 살아가는 다른 이들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길 바란다.
“멈추지 마세요. 퇴직은 끝이 아니니까요. 마음만 먹으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고, 여의치 않다면 새로운 일을 기획해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멈추지 마세요. 쉼 없이 도전하면 분명 성과가 있을 거예요. 매일 태양을 어깨에 지고 바람을 맞는 나무에 열매가 맺는 것처럼 말이에요.”
정성을 다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박영철 회원의 삶이, 그가 음악의 길에 뿌려놓은 씨앗이 발아해 피어난 꽃이, 쉼 없이 도전하면 반드시 성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