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인터뷰 1

다문화 아이들의
미래를 그리는 희망 노래

해밀학교 김인순 이사장 이제 한국에서 ‘다문화’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여전히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김인순 이사장은 그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다. 해밀학교는 마음 둘 곳 없는 다문화 아이들의 곁에서 묵묵히 걸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했다. 하루하루 밝아지는 아이들의 표정이 해밀학교를 운영하는 힘이 되었다. 「The–K 인터뷰 1」은 교육가족이 명사의 교육 가치관과 철학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아픔을 보듬는 멘토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 인순이’는 힘차고, 근사하다. 기성세대는 그의 히트곡 「밤이면 밤마다」를 흥얼거렸고, 젊은 세대는 그가 부른 「거위의 꿈」을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걸기도 했다. 가수로 데뷔한 지 4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인순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대중들의 기억에 또렷하게 박혀 있다.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파워풀한 목소리와 무대매너는 그를 오래도록 대체 불가능한 가수로 살게 했다.
가수로 성공하기까지의 여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가난했고, 못 배웠고, 달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다문화’라는 개념도, 표현도 없던 시절을 지나왔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나, 심심찮게 사람들의 눈길을 받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도 참아내야 했다. 그를 안쓰럽게 여긴 몇몇 어른들은 ‘공부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며 격려하기도 했다.
“그때는 혼혈인은 회사에서 채용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어른들이 좋은 취지로 하시는 말씀이니 앞에서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체념하고 있었어요. 그나마 예체능계로 진출했기에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죠.”
성공한 가수로서 평탄하게 노년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라디오에서 우연히 접한 뉴스가 그의 가슴에 꽂혔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고등학교 졸업률이 불과 28%라는 소식.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단 한 명의 아이에게라도 힘을 전하고 싶었다. 이때부터 아이들이 공부할 자리를 알아보면서 2012년에 사단법인 ‘인순이와 좋은 사람들’을 설립했고, 2013년에 강원도 홍천에 해밀학교를 열었다.

꿈의 터전에서 사랑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

해밀학교의 ‘해밀’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라는 뜻이다. 김인순 이사장은 다문화 아이들이 이 학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꿈의 터전을 만들고자 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사춘기 때 흔들리는 이유가 있어요. 어른들이야 자신들이 선택해서 결혼하고 한국으로 이주했지만, 아이들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거든요. 엄마는 엄마 나라에 가면 엄마 나라 사람이고, 아빠도 아빠 나라에 가면 아빠 나라 사람인데,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죠. 다문화가정 2세들은 부모세대가 모르는 응어리를 마음속에 갖고 있어요. 부모의 사랑에 대한 책임을 자기 혼자 지고 가는 거죠. 저는 그 문제를 평생 고민했잖아요. 그래서 적어도 그 아이들에게 저만이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일까. 김인순 이사장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이 깊다. 이름뿐만 아니라 졸업 후에 어느 학교로 진학했는지도 섬세하게 기억한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익히 안다.
외국에서 이주한 부모를 둔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한국어 어휘를 습득할 경로가 다양하지 않다.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한국인이라고 해도, 주 양육자가 외국인이라면 유창한 한국어 표현을 자주 접하기 어렵다. 한국어로만 이루어지는 한국의 정규 교육과정을 다문화 아이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다문화 아이들이 처한 이러한 속사정까지 세세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마음에 상처 입은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결국 사랑이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말대꾸를 반긴다. 오히려 눈을 내리깔고 숨어 있는 아이들을 더욱더 살핀다. 눈을 쳐다보고 의사 표현을 한다는 것은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신호다.
개교 초기에는 휴대전화 사용 문제로 학생들과 몇 달 동안 실랑이를 했지만, 매주 열리는 총회를 통해 아이들이 직접 토론하며 나름의 기준을 세우게 했다. 결국 학교에 들어올 때는 휴대전화를 제출하고, 주말에 집에 갈 때 받자는 규칙을 학생들 스스로 정했다. 그리고 그 규칙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축제를 하거나 여행을 갈 때도 아이들이 서로 토론하면서 모든 안건을 결정한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중도입국 아이들(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부모를 따라 부모 나라로 들어오거나 귀화한 아이들)’도 이곳에서는 충분히 의견을 주도하는 리더십을 경험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겁도 없이 시작할 수 있었어요.
제 역할도 크게 보지는 않았고요.
그저 아이들이 어려운 현실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을 굳건하게 해주자는 생각만 했습니다.”
‘함께’ 키워가는 학교

설립 당시 여섯 명으로 시작한 해밀학교는 어느덧 44명의 재학생이 다니는 학교로 성장했다. 2018년에는 교육부 인가 대안학교가 되었다. 이제는 따로 검정고시를 보지 않아도 정규 교육과정만 이수하면 중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해밀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주변 고등학교로 진학해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한다. 학교를 운영하면서 김인순 이사장도 많은 것을 배웠다. 몇 명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필요한 시설과 인력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작은 제도 하나를 바꾸는 데 얼마나 많은 과정이 필요한지도 경험했다.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겁도 없이 시작할 수 있었어요. 제 역할도 크게 보지는 않았고요. 그저 아이들이 어려운 현실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을 굳건하게 해주자는 생각만 했습니다.”
학교 운영에 필요한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전국 각지를 다니며 부탁해야 하는 임무도 생겼다.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화려한 가수의 삶을 살던 그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밝아지는 아이들이 있기에 힘을 낸다. 그를 아끼는 지인들도 ‘거룩한 구걸이니 기꺼이 감당하라’며 곁에서 용기를 실어준다.
“초반에는 재학생이 몇 명 되지 않아서 제가 버는 돈으로 감당할 수 있었어요. 만약 그때 학교 운영이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더라면 저도 사람이니까 이것저것 알아보고 결정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힘들어도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홀린 듯이 또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앞날이 막막해서 벽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들면 기적처럼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요.”
김인순 이사장은 해밀학교가 국민이 함께하는 민립학교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다문화는 이미 개인의 사정이 아닌 국가적 과제다. 2020년 현재 한국에 있는 학령기 다문화 아이들의 숫자만도 약 25만 명.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숫자를 고려하면 실제 국내 거주 다문화 아이들의 수는 더욱더 많다. 혼자서는 어려운 일도 함께 손을 맞대면 좀 더 수월해진다. 그 희망의 여정에 더 많은 이가 동참할 수 있도록, 김인순 이사장은 기꺼이 거룩한 구걸을 감내하고 있다.

  • 2019년 3월, 제7회 해밀학교 입학식 기념 사진
  • 2020년 1월, 제5회 해밀학교 졸업식 기념 사진(총 누적 졸업생 3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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