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공간의 재구성

공간을 키운 건
8할이 사랑

경남 사천 용남중학교

공간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공간은 사용하는 이가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힘을 얻는다는 것을. 사랑받는 공간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반대로 사랑받지 못한 공간은 금방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경남 사천시 용현면에 자리한 용남중학교는 전자에 속한다. 개교 7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이 학교는 여느 학교보다 청춘이다.
  • 글. 이성미
  • 사진. 김도형

  • 용남중학교 전경. 채움뜰은 버스킹 공연이 열리는 무대이자 놀이터다.
  • 교내 벽화는 모두 각 학급 학생들의 작품이다.
폐교 직전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보물창고로

용남중학교 교문을 들어서자 푸른 잔디밭 위 학생들의 작품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끈다. 그 너머로 도서관과 버스킹 무대, 휴게공간을 부지런히 오가는 학생들이 보인다. 학교 외관은 알록달록 색 띠를 둘렀고, 학교 담장을 따라 카페를 연상시키는 흔들 그네와 탁자, 의자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니 복도 벽면과 각 학급 앞에는 각기 다른 벽화가 채워져 있다. 모두 학생 작품이다. 용남중학교는 학교 전체가 학생들의 보물창고이며 갤러리다.
이 학교가 폐교 수순을 밟고 있었던 학교라고 과연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용남중학교는 전교생이 120여 명에 불과했고, 신입생 수가 매년 줄었다. 폐교를 막기 위해 전 교직원과 법인, 동창회가 힘을 합쳤고, 스쿨버스 운영, 저녁식사 제공, 보충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 운영, 방학 중 학생 활동 지원 등의 노력으로 다행히 학생 수는 점점 많아졌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제한된 공간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려니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프로그램의 수준을 일정 이상 끌어올리기에는 무리였고, 교사들의 피로도도 점점 쌓여갔다. 고민 끝에 “특화된 공간에서 학생 주도의 교육이 일어나야 한다”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공간의 변화를 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를 대대적으로 변화시키기에는 예산이 부족했다. 결국 대학에서 디자인 강의를 하는 용남중학교 출신 교수의 재능기부로 학교 디자인과 색채를 기획하고, 학교 건물에 새로운 색을 입히는 작업이 먼저 시작됐다. 다행히 2014년, 교육부가 용남중학교를 농어촌거점별 우수중학교로 선정하고 지자체들의 지원이 이어지면서, 예산이 뒷받침될 수 있었다.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꽉 막힌 공간의 벽을 없애 탁 트인 휴게공간을, 공터에는 복합문화공간을, 창고에는 목공실을, 교무실에는 카페를 만들었다. 또 학급 게시판, 천장 텍스 등의 불필요한 공간은 없애고, 전자 칠판·태블릿PC·탭북 등 수업 환경 개선을 위해 새로운 아이템들을 채웠다.

  • 카페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지혜샘 1층 도서관
  • 형형색색 책상이 눈길을 사로잡는 지혜샘 2층 아트 스페이스
  • 학교 안의 학급 문패나 장식품은 지혜샘 1층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직접 만들어낸다.
“학교의 주인은 분명 학생입니다.
그러나 학교의 공간은 교수 학습법에 맞게 조성되어야 합니다.
용남중학교 선생님들은 토론 수업과 학생들의 자율적인 연구학습을 중시합니다.
따라서 학교도 이러한 학습법에 맞게 정비되었습니다”
지혜, 상상, 예술, 행복을 만드는 공간

학교의 변화를 가장 반기는 사람은 역시 학생들이다. 그중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지혜샘’과 ‘채움뜰’. 지혜샘은 도서관과 메이커 스페이스, 아트 스페이스로 이루어진 용남중학교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지혜샘의 도서관은 복층형 구조로 높은 천장과 전면 창을 활용해 시야를 틔우고, 원목을 활용해 누구나 여기서 책을 읽고 싶게끔 만들어졌다. 나뭇가지 모양 책꽂이와 둥근 소파, 벽면을 따라 길게 놓인 탁자 등은 이곳이 북카페인지 학교 도서관인지 헷갈리게 한다. 전자 칠판, 태블릿PC와 무선인프라, 펜 태블릿 등을 활용해 도서관에서도 수업이 가능하다.
도서관 한편에는 메이커 스페이스가 있다. 학생들은 3D 프린터, 레이저 절삭기, 레이저 각인기 등을 활용해 저마다의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HMD VR, 드론, 아두이노(다양한 센서나 부품을 연결할 수 있고 입출력, 중앙처리장치가 포함되어 있는 기판) 등 다양한 첨단기기를 접하며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한다. 교사도 메이커 스페이스의 주 고객이다. 각 학급 문패는 모두 교사들이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만들었다. 지혜를 깨우고, 상상력을 깨운 후에는 계단으로 올라가 아트 스페이스에서 예술성을 깨우면 된다. 분리된 듯 하나로 이어진 공간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상상을 마음껏 펼쳐낸다.
채움뜰은 매주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버스킹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수업 시간에는 토론장으로 활용된다. 채움뜰은 폴딩도어를 활용해 각 공간을 분리하고 있는데,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댄스 연습실, 악기 연주실, 보드게임방이 되기도 한다. 2017년 지어져 3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학생들이 드나들었지만, 모두 깨끗하게 사용하는 덕에 훼손·분실 등이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목공 동아리, 생태환경교육 동아리 등이 사용하는 동아리실을 비롯해 교내 대부분의 공간은 학교의 다양한 자율동아리 학생들의 주도로 관리된다.

전자칠판을 이용해 도서관에서도 수업을 할 수 있다(코로나 확산 이전에 촬영 된 사진, 용남중학교 제공).
  • 카페,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교내 학생 커뮤니티 공간. 대부분의 공간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관리한다.
  • 학생, 학부모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인 목공실(코로나 확산 이전에 촬영된 사진, 용남중학교 제공)
열정 가득 선생님들의 셀프 인테리어

용남중학교의 화려한 부활에는 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학교의 공간 개선이라고 하면 외부 업체를 선정해 일을 ‘통’으로 맡기는 것이 다반사.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받은 지원금이 적진 않았지만, 용남중학교의 교사들은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짓듯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로 했다.
교내 미래교육부 최연진 부장과 교사들은 설계 부분만 전문가에게 맡기고, 필요에 따라 하루 단위로 목공 기술자를 불러 원하는 일을 맡겼다. 페인트칠하고, 조명을 달고, 동아리 학생들과 벽지를 붙이는 일 등은 수업 시간 외 남는 시간을 활용해 직접 해냈다. 애써 해놓은 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하여 세상에 하나뿐인, 용남중학교만의 인테리어가 완성됐다.
교사들이 직접 인테리어를 한 이유는 세 가지. 첫째, 비용 절감을 위해, 둘째, 최대한 원하는 바와 가까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셋째, 학교는 선생님이 가장 잘 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최연진 부장은 “학교의 주인은 분명 학생입니다. 그러나 학교의 공간은 교수 학습법에 맞게 조성되어야 합니다. 용남중학교 선생님들은 토론 수업과 학생들의 자율적인 연구학습을 중시합니다. 따라서 학교도 이러한 학습법에 맞게 정비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교사들은 교실과 특별실의 창을 크게 내어 학생들과 언제든 소통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어디서나 앉아서 토론할 수 있게 의자를 놓고, 자유롭게 상상하며 연구하고 실현할 수 있는 공방과 열린 무대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수업하기에 훨씬 쉽고 즐거워졌다. 교무실도 칸막이를 없앤 뒤 벽을 새로 칠하고, 국소 조명을 달고, 나무 탁자를 두어 카페처럼 변신시켰다. 이러한 공간은 교사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교사들이 행복하니 학생들도 저절로 행복해졌다. 앞으로 무엇을 더 만들지에 대해서도 이미 계획해두었다고. 다만 바뀐 공간에 대한 평가는 학생들에게 맡긴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지 않거나 활용도가 떨어지는 공간은 언제든 다시 개선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보다 오랜 시간 공간을 연구하고, 학생을 연구하고, 수업을 연구해온 선생님들이야 더 물어 무엇하겠는가. 용남중학교를 가장 잘 알고, 가장 많이 사랑하는 교사들이 있기에 학교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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