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쉬어가기
지금, 여기

여름 알프스,
‘천상의 화원’을 걷다

알프스의 여름은 ‘환상’ 그 자체다.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몽환적이기도 하고,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묘한 설렘을 불러온다. 알프스 하면 금세 스위스가 떠오른다. 알프스의 다양한 모습들을 골고루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는 6~8월을 가리켜 ‘알프스 시즌’이라 부른다. 이 시기에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만날 수 있고, 한여름에 눈밭 위를 거닐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송일봉 작가는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해외여행전문지 ‘코리안 트레블러’ 편집부장과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 편집장을 지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길 위의 인문학’ 기획위원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국립공원 대표경관 100경’ 선정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문화답사 프로그램 ‘송일봉의 감성여행’을 24년째 진행하고 있으며, 매주 KBS, MBC, 교통방송 등에 출연하고 있다. 「지금, 여기」는 국외의 다양한 여행지를 소개하고자 마련된 코너입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국외 여행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간「지금, 여기」를 통해 다양한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갑갑한 현실 속에서 힐링을 하고, 잠시나마 여행 기분을 느껴볼 수 있어 좋았다는 많은 독자 의견을 반영하여 지난 7월호부터 다시 「지금, 여기」 코너를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 글_사진. 송일봉(여행작가)

(왼쪽)01. 쉬니케 플라테에서 바라본 브리엔츠 호수 (오른쪽)02. 융프라우 요흐로 향하는 등산열차가 출발하는 곳인 클라이네 샤이덱
두 개의 큰 호수가 아름다운 인터라켄

스위스에서 알프스 여행의 기점이 되는 주요 도시로는 필라투스를 끼고 있는 ‘루체른’, 마터호른을 끼고 있는 ‘체르마트’, 융프라우를 끼고 있는 ‘인터라켄’ 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베르너 오버란트 지역의 중심지인 인터라켄이 여름 알프스를 체험하기에 가장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인터라켄에서는 융프라우를 비롯해 아이거, 묀히, 쉬니케 플라테, 피르스트 등 개성 강한 알프스 명소들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인터라켄은 두 개의 큰 호수를 끼고 있는 도시다. ‘인터라켄’이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호수 사이’를 의미하는 ‘인터 라쿠스(Inter Lacus)’에서 유래됐다. 가늘고 길게 뻗어 있는 튠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사진 1)는 그 자체로도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베른에서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갈 경우 튠과 슈피츠를 경유하는데 이 두 도시가 튠 호수를 끼고 있다.
따라서 여행자들은 기차를 타고 가며 왼쪽에 펼쳐지는 그림같은 절경들을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인터라켄에는 시내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기차역이 하나씩 있다. 서쪽에 있는 인터라켄 웨스트역은 도시의 관문 역할을, 동쪽에 있는 인터라켄 오스트역은 알프스로 향하는 출발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라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기차여행 코스는 클라이네 샤이덱(사진 2)과 융프라우 요흐를 연결하는 12km 구간이다.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아이거 글래시어까지는 바깥을 볼 수 있는 산악지역을 운행하며, 그 이후에는 바위를 뚫어서 조성한 터널을 통과한다. 터널을 통과하는 구간에서는 5분씩 두 번을 정차한다. 첫 번째 정차역인 아이거반트에서는 그린델발트와 클라이네 샤이덱, 튠 호수 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두 번째 정차역인 아이스메어에서는 드넓게 펼쳐진 빙하와 암벽들을 감상할 수 있다.
융프라우 요흐에서 클라이네 샤이덱까지 내려오는 길에는 중간 정차역인 아이거 글래시어에 내려서 가벼운 트레킹을 즐길 수도 있다. ‘아이거 워크 코스’(사진 3)라 불리는 이 구간은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주인공인 현빈과 손예진이 걸었던 곳이다.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인터라켄 시내에서 융프라우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오스트역 근처에 있는 하더 쿨름(사진 4)이다. 푸니쿨라(세계에서 가장 경사가 심한 케이블 기차)를 타고 1.4km의 가파른 트랙을 오르면 멀리 융프라우와 아이거를 비롯한 알프스의 새하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 아래로는 인터라켄의 전경과 튠 호수, 브리엔츠 호수, 그리고 두 호수를 잇는 아레 강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전망대 옆에는 고풍스러운 카페가 있다. 이곳에서 따끈한 차를 마시며 잠시나마 알프스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

03. 꽃길이 아름다운 아이거 워크 코스
  • 04. 융프라우를 감상하기 좋은 명소인 하더 쿨름
  • 05. 고즈넉한 풍경의 그린델발트
아이거 북벽 아래의 산간마을, 그린델발트

아이거 북벽 아래에는 산간마을인 그린델발트(사진 5)가 있다. 그린델발트는 아이거 북벽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유명해진 알펜리조트다. 그동안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거 북벽을 끼고 있는 마을인 그린델발트. 악명 높은 아이거 북벽과는 달리 그린델발트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산간마을이다. 만년설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마을 주변에는 알프스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던 풍경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2008년 독일에서 제작된 산악영화 「노스 페이스」는 1936년 독일의 산악인 토니 쿠르츠와 앤디 히토이서의 등정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알프스 3대 북벽’ 가운데 하나인 아이거 북벽(사진 6)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등정에 성공하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2년 후인 1938년, 마침내 아이거 북벽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연합등반대에 의해 정복되었다. 우리나라는 1979년에 처음으로 아이거 북벽 등정에 성공했다.
그린델발트를 찾아온 여행자들은 대부분 일주일 이상 이곳에 머물며 근처의 명소들을 천천히 둘러본다. 시간이 많지 않은 여행자들은 곤돌라를 타고서 서둘러 피르스트로 올라간다. 그린델발트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최고의 트레킹 명소가 바로 이곳 피르스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피르스트는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여름에는 야생화 트레킹(사진 7)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명소다.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곤돌라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린델발트에서 피르스트로 오르는 곤돌라는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행한다. 총 길이는 4,355m로 약 25분이 소요된다.

  • 06. ‘알프스 3대 북벽’ 가운데 하나인 아이거 북벽
  • 07. 피르스트에서 야생화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
알프스 지도 융프라우철도 벵게르날프 철도 베르너 오버란트 철도 피르스트 곤돌라 쉬니케 플라테 철도, 스위스 알프스 빌더스빌 벵엔 클라이네 샤이덱 쉬니케 플라테 그린델발트 피르스트 융프라우 요흐 하더쿨름 인터라켄 브리엔츠 호수 튠 호수
피르스트의 하이라이트, 바흐 알프 호수

피르스트는 융프라우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야생화 트레킹’ 명소다. 각양각색의 야생화들이 무리 지어 피어나는 알프스 시즌에는 산 전체가 온통 아름다운 꽃밭을 이룬다. 트레킹 코스 곳곳에서는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사진 8)도 볼 수 있다.
알프스 전망대(사진 9)가 있는 피르스트 산장에서 시작되는 트레킹 코스는 해발 2,265m 지점에 위치한 바흐 알프 호수(사진 10)까지 이어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길가에 핀 꽃의 종류도 조금씩 변하고, 전망이 좋은 곳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사진 11)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트레킹 코스는 알프스의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피르스트 산장~바흐 알프 호수 중간쯤에는 갑자기 비가 내릴 경우 잠시 피할 수 있는 대피소(사진 12)도 마련돼 있다.
피르스트 야생화 트레킹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바흐 알프 호수다. 깨끗한 수면에 비치는 만년설의 웅장한 자태를 보는 순간 자연의 경이로움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호수에 비치는 만년설의 최고봉은 슈렉호른(해발 4,078m)이다. 피르스트 산장에서 바흐 알프 호수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피르스트에서 야생화 트레킹을 마치고 그린델발트로 내려올 때는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냥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며 느긋하게 알프스의 산록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색다른 체험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피르스트 플라이어 체험’(사진 13)이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피르스트 플라이어 체험은 쇠줄에 몸을 의지한 채 800m 거리를 약 45초 만에 내려가는 스릴만점의 레포츠다. 한 번에 두 개의 라인을 이용해 두 명씩 내려가기 때문에 이용자가 많을 때는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출발 전에는 조금 떨리지만, 허공을 가르게 되면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듯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 11. 피르스트 곳곳에 있는 벤치
  • 12. 바흐 알프 호수 근처에 있는 대피소
  • 13. 피르스트에서 즐길 수 있는 피르스트 플라이어 체험
08. 피르스트에서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는 모습 (왼쪽)09. 피르스트의 알프스 전망대 (오른쪽)10. 해발 2,265m 지점에 있는 바흐 알프 호수
투박한 멋을 자랑하는 쉬니케 플라테

쉬니케 플라테 역시 알프스를 찾은 여행자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트레킹 명소다. ‘알프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쉬니케 플라테로 향하는 출발지는 빌더스빌이다. 빌더스빌 기차역에서는 쉬니케 플라테로 향하는 등산열차(사진 14)가 오전 7시 25분부터 오후 4시 45분까지 약 4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가파른 산길을 힘겹게 오르는 기차 안에서는 인터라켄 시내와 두 개의 호수(튠, 브리엔츠)가 한눈에 들어온다. 빌더스빌에서 쉬니케 플라테까지는 약 50분이 소요된다.
쉬니케 플라테는 아름다운 알프스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멋을 보여주는 명소다. 투박하지만 깊은 맛을 간직한 알프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쉬니케 플라테의 트레킹은 기차역에서 2~3분 거리에 있는 산장에서 시작된다. 트레킹 코스는 쉬니케 플라테에서 피르스트로 넘어가는 6시간 코스를 비롯해 모두 6개의 코스가 있어 시간이나 체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쉬니케 플라테의 트레킹 코스는 푹 파인 분지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로 이어져 있다. 알프스의 평원이나 구릉지대에서 보는 야생화들과는 달리 키가 조금 큰 것이 특징이다. 종류도 다양해서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이다.
트레킹이 아닌 관광의 목적으로 쉬니케 플라테를 찾은 사람들은 40분 정도 소요되는 ‘알펜 가르텐’ 코스(사진 15)를 돌아보는 것으로 일정을 마친다. 하지만 쉬니케 플라테의 진정한 멋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산장을 출발해 다우베, 오베르버그 호른을 거쳐 산장으로 돌아오는 2시간 30분짜리 코스를 돌아봐야 한다. 중급자 코스라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 트레킹을 마쳤을 때의 그 성취감을 기대하며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전망대 역할을 하는 오베르버그호른(사진 16)을 지나 산장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야생화 꽃길(사진 17)로 이뤄져 있다.
밟고 지나가기 미안할 정도로 지천에 널린 앙증맞은 야생화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꽃길.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천상의 화원’이다.

  • 14. 빌더스빌과 쉬니케 플라테를 오가는 등산열차
  • 15. 쉬니케 플라테의 알펜 가르텐
(왼쪽)16. 쉬니케 플라테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오베르버그호른 (오른쪽)17. 쉬니케 플라테의 야생화 꽃길에서 내려다본 튠 호수
TIP
알프스 여행 정보

・ 융프라우 철도 운행 안내 : 코로나19로 인해 운행을 중단했던 융프라우 철도는 지난 6월 6일부터 운행을 재개했다. 단 쉬니케 플라테는 10월 25일까지, 하더 쿨름은 11월 29일까지만 운행을 할 계획이다.

・ 융프라우 3일 VIP 패스 : 인터라켄을 포함한 융프라우 지역을 기차로 여행하려는 여행자들에게 편리한 패스다. 이 패스로는 융프라우 왕복 1회를 포함해 인터라켄, 클라이네 샤이덱, 그린델발트 지역의 기차를 3일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패스는 동신항운(전화 : 02-756-7560)에서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패스 가격은 220 스위스프랑(약 284,000원)이다.

・ 리벨라(rivella) : 리벨라는 우유를 만들고 남은 유청(Ractoserum)으로 만든 스위스의 대표 음료수다. 빨간색 라벨(과일즙), 파란색 라벨(저칼로리), 초록색 라벨(녹차추출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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