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을 것 같아요, 현 선생님을 만난 학생들은요!”
“사실 저도 많이 부족해요.”
“에이, 아니에요. 가끔 학생들 얘기를 할 때면 선생님은 눈빛이 정말 달라지거든요. 사랑이 넘치는 교사!”
같이 상담을 공부하는 선생님과 메시지를 통해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던 중, 주제가 ‘학생과 교사’로 바뀌었다. 그러자 갑자기 학생에 대한 나의 각별한 애정을 설명하면서 그 증거로 눈빛 이야기를 한다. 학생들과 있었던 일들을 나눌 때마다 눈빛이 반짝인다는 것이다.
교사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학생들의 눈빛 속에서 반짝거리는 그 무언가를 발견할 때다. 눈빛이 반짝거릴 때, 그 안에는 무언가 작지만 대단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다. 시선은 그렇게 우리에게 말 이상의 것을 전달한다. 눈빛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요즘은 그런 눈빛을 바라볼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뿐 아니라 학교의 모습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었다. ‘전례에 없던’이란 수식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전에는 미처 겪어보지 못했던 ‘낯선’ 풍경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1학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날은 바로 등교수업 첫날이었다. 반 친구들을 5월 말이 되어서야 보았다. 모두가 마스크를 낀 채 쥐 죽은 듯 조용히 앉아 있는 교실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말없이 소독제와 마스크만 주고받았다.」
언제나 성실하고 한결같이 침착한 자세로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해내는 우리 반 지은이가 적어 낸 학기 말 자기성찰 보고서에는, 가장 인상 깊었던 학교생활로 등교 첫날이 적혀 있었다. 1학기 내내 겉으로 보기엔 흔들림 없이 학교생활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정작 그 내면에는 코로나로 인한 강력한 인상이 상흔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온라인 수업 기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화상 조회 시간을 가지며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등교수업 기간에는 직접 얼굴을 보며 아이들을 만나지만, 개인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만나는 시간만 줄어든 게 아니라, 만남의 질 역시 아무래도 떨어지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의 눈빛이 예전 같지 않다. 눈빛 가운데 어색함과 긴장감이 미묘하게 섞여 있다. 당연히 교사로서 고민이 되었다. 사랑하는 제자들의 눈빛에 다시금 생기와 안정감을 불어넣고 싶었다. 이렇게 계속 가서는 안 되겠다 싶은 절박함이 있었고, 위기에 처했을 때 발동되는 교사로서의 본능, 그런 것들이 작동됐다.
나의 처방은 눈빛을 제대로 주고받으며 소통할 기회를 좀 더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언제나 한 가지 강력한 규칙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즉,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안전한 방역수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비대면 접촉이라는 온라인의 장점을 활용해 일대일로 마주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선택한 방법은 어찌 보면 가장 간단하고 쉬운 것이었다.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조회 시간을 마친 후,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하루에 한 사람씩 일대일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온라인에서의 상담은 나에게 학생들과 눈빛을 제대로 나눌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되고 있다.
사실 중학교 여학생들은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다. 적어도 내가 만난 학생들은 그랬다. 그래서 조회나 일대일 상담을 진행할 때 얼굴을 최대한 가리려고 한다. 그럴 때 나는 제발 화면에 눈 한쪽이라도 비춰 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한다. 그러면 대부분 수줍은 듯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온라인 화면 너머로 마음의 준비를 한 뒤 눈빛을 보내는 것이 문득문득 느껴진다.
그 눈빛을 바라보며 우리는 대화를 한다. 온라인 공간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서로의 눈빛 가운데, 침범할 수 없는 둘 사이의 특별함이 생긴다. 그 작은 특별함이 우리의 관계와 존재 속에 하나의 마법을 만들어 낸다. 어느덧, 눈빛을 마주치며 대화를 한 학생들의 모습에는 우리가 주고받았던 그때의 추억이 따스하게 스며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마스크 너머 가려진 눈빛에는 그렇게 우리들의 못다 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그 눈빛을 제대로 읽어 주며 그 안에 잠재된 에너지와 가능성을 충분히 알아주고, 공감해주면 관계의 온도가 변하고, 우리의 모습마저도 변하는 것 같다. 마치 접혀진 날개가 비상을 위해 조금씩 펼쳐지는 느낌이랄까.
나는 오늘도 말 이상의 그 진실한 눈빛 나눔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난다. 내가 교직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눈빛 대화’만큼은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인류의 미래에 코로나보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