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지는 10월이다. 이맘때면 늘 한 학생이 떠오른다. 나 자신에게 교사란 무엇인지 묻게 만든 학생이다. 나는 그 학생을 볼 때마다 교사의 본질을 고민했다. 선생님이란 무엇인지, 내가 그 학생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나눌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 학생의 이름은 은우였다. 눈은 대각선으로 찢어져 부리부리한 관우의 눈이었고, 덩치는 6학년 중에서도 유독 커 전교에서 손에 꼽았다. 오랫동안 무에타이 같은 운동을 하여 몸을 제대로 쓰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은우는 얼음 아이였다. 얼음 꽃을 지나 얼음 나무가 되었고, 얼음 나무로 만든 얼음 나무칼이 되었다. 근처에만 있어도 시리도록 날카롭고, 푸르게 피멍이 든 마음은 상처가 많아 보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을 때면, 얼음 나무칼을 써서 상처를 준 아이가 누구든 복수하고자 했다.
나는 너무 힘들었다. 엄하고 단호하게 잘못된 행동을 훈육할 때도 은우는 이해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오히려 복수하고자 했다. 고자질한 사람을 어떻게든 찾으려고 했고,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끝내 시시비비를 가렸다. 간절하게 길을 찾았다. 어떻게 하면 이 학생이 바뀔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은우와 함께할 수 있까. 아니, 어떻게 하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이 교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내게 가장 힘이 되었던 말은,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찾아온다는 것이다. 왜 은우가 우리 반이 되었는지 피하기만 할 일이 아니었다. 얼음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교사에서 얼음 아이도 안아줄 수 있는 교사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
한걸음 성장할 때였다. 뭐든지 다 해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결정적으로 힘이 된 것은 사랑이었다. 은우에게는 권위를 내세울 때도, 권력을 휘두를 때도, 부모님과 함께 일관성 있게 행동을 교정하려 할 때도 효과가 없었는데, 사랑은 달랐다.
내가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은우의 눈에서 머무르기였고, 은우의 입장에서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게 이끄는 것이었다. 문제 행동을 할 때만이 아니라, 수시로 은우의 존재감을 읽어주었다. 인사를 하고, 고맙다고 하고, 칭찬과 격려를 했다.
우리 반에서 은우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주고, 감사해하며, 소속감을 키워주었다. 안 그래도 영향력이 큰 아이었는데, 영향력을 더 키워주었다. 그리고 영향력의 방향만 바꾸었다. 점점 나쁜 영향력에서 선한 영향력으로 변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은우가 달라졌다고 느낀 것은 평소와 다름없이 상담할 때였다. 그때도 친구에게 힘을 휘둘러 단둘이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화, 짜증, 억울함, 속상함과 같은 겉 감정뿐만 아니라 친구와 잘 지내고 싶다, 이해받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속마음도 읽어주었다.
그러던 중 은우가 자기 이야기를 했다. 4학년 때 친구네 집 앞에서 더 얘기할 게 있다고 문을 두드릴 때, 친구가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했던 일, 아버지가 한 번만 더 학교에서 문제 일으키면 내 아들 아니라고 말했던 일, 5학년 때 의자를 집어 던지려다 내렸는데 학교 폭력에 연루된 일, 싸늘한 시선들, 또 자신을 신고한 친구와 6학년 때 같은 반이 된 이야기까지. 독백과도 같은 그 말들이 끝날 때쯤 은우가 나에게 담담히 고백했다.
“선생님, 저는 원래 나쁜 학생이 아니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른 은우를 안은 뒤, 귀에 속삭였다.
“그래 은우야, 너는 원래 착한 학생이야.”
그날부터 은우는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살짝 달라졌다. 원래 습관처럼 자리잡힌 나쁜 행동이 나오는 게 당연했는데, 스스로 착한 학생이라고 생각하며 행동에도 서서히 신경을 썼다. 내가 있을 때 더 착한 행동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진심으로 노력하는 게 보였다.
감사했다. 나는 은우를 만나고, 삶에서 어려운 문제가 찾아올 때마다 피하고 싶어 하는 나를 만났다. 나는 그런 나를 이해하고,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다. 교학상장(敎學相長), 어쩌면 내가 은우를 성장시킨 것이 아니라, 은우가 나를 성장하게 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교사의 본질은 늘 성장과 함께하는 사람이다.
은우는 지금 중학생이 되었는데 이따금 연락이 온다. 아주 잘 지내는 모습이다. 학교에서 조용히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말한다. 그저 응원하고 싶다. 한 걸음씩만 더 자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어른이 되어가는 학생처럼, 더 많은 학생을 품을 수 있게 한 뼘씩만 더 넓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