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에세이

변화된 일상,
함께 만들어가는 기쁨

「에세이」는 교사의 마음이 느껴지는 공감 에세이로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 서영배 선생님은 교사의 전문성과 변화하는 학교의 역할에 대해 늘 고민하며 실천하는 교사입니다.
  • 글. 서영배(인천 명현초등학교 교사)

올해 초, 나는 태어난 지 6개월 된 둘째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첫째 아이도 있어 나름 많은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과 강화된 수도권 방역 지침으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두 아이와 온전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복직을 했다.
학교를 옮기면서 바로 육아휴직을 했던 터라 사실 복직한 학교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급식실의 위치도 몰랐고 학생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수업 전, 학생들의 이름표를 받았지만 모든 학생이 마스크를 착용하여 등교수업 때는 학생들의 눈과 얼굴의 윗부분만 보였다. 마스크로 인해 아이들의 얼굴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첫 등교수업 때 책상 위에 학생들의 이름표가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와중에 이름표는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두 개 학년, 모두 7개 반을 들어가는 나에게는 이름표는 감동이었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수업’과 ‘협의’였다. 선생님들에게 수업이 온라인이냐 대면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부분 온라인 수업이고, 등교수업은 주 1회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매일 1, 2교시에 ‘ZOOM’ 프로그램에서 학생들과 만나 블록수업(1교시와 2교시를 연달아 수업(80분)한 뒤 긴 휴식(20분)을 갖는 수업)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교실의 혼란기라 할 수 있는 1학기 때 현 상황과 수업에 대한 고민으로 지난 6월부터 시작한 ZOOM 수업이었고, 그만큼 학생들과 교사 모두 지금은 적응된 모습이다. 모든 수업을 창의적으로 준비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선생님들 모두가 분담하여 콘텐츠를 준비·제작하고 특히 수학처럼 풀이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하며 녹화영상도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재택근무를 할 때는 학년별 학교 출근일에 동학년 교사들과 진행하는 협의가 있었고, 재택근무 종료 후엔 학교에서 매일 협의가 있었다. 선생님들의 협의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누군가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누군가는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렇게 처음의 문제는 협의를 통해 해결되거나 더 나은 상황으로 변해있었다. 해결되는 것은 온라인 수업에 대한 것을 시작으로 대면수업에서의 다양한 활동, 프로젝트 수업 결과물의 공유, 학부모와의 소통, 학생들의 과제수행 점검 등 다양했다. 나는 다른 학년의 과목도 가르치는 전담교사라 모든 협의에 직접 참석하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이들의 협의에 참여하다 보면 덩달아 나까지 보람이 느껴지곤 했다.
협의 결과,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가능한 범위에서 안전하게 체육활동을 했다. 축구에서 변형한 게임으로 운동장 전체를 사용해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영역과 친구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큰 공과 작은 공을 가지고 반 대항으로 함께 축구를 하는 것인데, 공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영역에서 공을 차거나 막기 위해 애쓰는 학생들의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았다. 물론 선생님들도 심판과 볼보이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애쓰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학년 전체의 인성교육 프로젝트 활동인 ‘바자회’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온라인 수업에서 선생님의 기본적인 안내를 받은 후, 학생들은 필요없지만 상태가 좋은 다양한 물건을 가지고 와서 학교에서 사고팔았다. 바자회 장소는 학교 운동장이었다.
학생들은 운동장의 트랙을 전부 활용하여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채 천천히 이동하며 사고 싶은 물건을 살펴보고, 그렇게 운동장을 몇 바퀴 걸으며 인형부터 학용품, 장난감, 책, 취미용품 등 다양한 물건을 3,000원 안에서 구매하며 각자의 기준에 따라 합리적인 경제 활동을 했다. 바자회 활동으로 생긴 수익은 학생들의 동의 하에 인근 주민센터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되었다. 행여 학생들이 운동장을 돌면서 가져온 돈을 분실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시작된 별도 화폐 제작부터 기부처에 대한 고민, 무엇보다 바자회 활동 중 학생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한 고민은 모두 선생님들의 협의에서 해결되어 활동으로 녹아나왔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평범한 학교의 일상이 더는 평범하지 않은 요즘, 이러한 모습은 휴직 기간 동안 학교 밖에서 코로나를 겪은 나에게 무언가를 건넨다. ‘학교의 역할’과 ‘교육의 가치’처럼 글자부터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교사가 학생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유행처럼 논의되었던 교실 수업 형태에 대한 수많은 이론이 무색해지는 2020년. 여느 때보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이때, 다시금 학생들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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