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기는 필자가 어린 시절에 많이 사용하던 말이다. 아마 지금은 조금 덜 쓰지 않을까 한다. 선친께서는 늘 ‘우와기(うわぎ)’를 입고 출타하셨다. 그때는 그것이 순우리말인 줄 알았다. ‘위에 입는 옷’이니까 ‘윗도리’ 같은 뜻으로 쓰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알고 보니 일본어였다. 선친께서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학교에 다니셨기 때문에 일본어로 교육을 받으셨고 그 말이 더 편하셨던 모양이다.
‘쓰메기리(손톱깎이), 소데나시(민소매)’ 등등의 언어는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 서술어만 빼고 명사는 거의 일본어를 사용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50대인 필자 세대는 생활 일본어 명사는 많이 알고 있다. ‘위에 입는 겉옷’이니 우리말로 하면 ‘윗도리’라고 해도 좋겠지만, 이 말은 ‘허리의 윗부분, 위에 입는 옷, 지위가 높은 계급’ 등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중에 ‘위에 입는 옷’을 취한다면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이기는 하다.
‘저고리’라고 해도 좋기는 하겠지만, 한복의 의미가 강한 것 같다. 국어사전에 ‘한복 윗옷의 하나. 길, 소매, 깃, 동정, 고름, 끝동, 회장 따위가 갖추어져 있다’고 되어 있으니 그냥 저고리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한 면이 있다.
그러면 상의라고 하면 어떨까? 한자로 ‘위에 입는 옷’을 말 하는 것이니 전혀 손색이 없다. 다만 한자어를 깊이 공부해 보면 ‘의(衣)’라는 글자가 이미 윗옷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랫도리는 ‘상(裳)’이라고 한다. 요즘 ‘하의(下衣)’ 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사실은 ‘하상(下裳)’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하의(下衣)라고 하면 ‘아래에 입는 윗옷’이니 뭔가 논리가 맞지 않는다. ‘우와기(うわぎ)’는 ‘윗도리’나 ‘상의’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하면 적합하다.
예전에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라는 그룹이 부른 노래 중에 ‘미싱은 돌고 도네 돌아가네’라는 구절이 있었다. 여기서 미싱은 필자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정말 많이 쓰던 말 이다. 가발 수출로 외국의 자본을 많이 가지고 온 시절이 있 었다. 그때 가발 공장에 다니던 분들이 많았는데, 사실 그 분들의 공으로 우리나라가 지금 잘살게 된 것임에도 그 공 을 모르고 지나친 것 같다. 안타까운 우리의 과거다. 그들이 공장에서 부지런히 미싱을 돌렸기에 외화를 많이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사용하던 ‘미싱’이라는 단어는 따지고 보면 국적이 없는 단어다. 원래는 ‘a sewing machine’ 이다. ‘바느질하는 기계’라고 번역하면 맞을 것이다. 우리 국어사전에는 ‘재봉틀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바느질하는 기계’에서 수식어인 ‘바느질하는’을 빼고, ‘머신’ 만을 발음한 것인데, 일본인들의 발음을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미싱’이 된 것이다. 정말로 국적 없는 말이 이런 것이 다. 영어도 아닌 영어가 우리말에 자리 잡고 앉아서 재봉틀을 대신해 왔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재봉틀이라는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양복점에 가면 옷을 만들기 전에 ‘가봉(假縫)’이라고 해서 간단히 지어놓은 옷을 먼저 입어보고, 재단사가 다시 침으로 정리하면서 몸에 맞게 조절하는 순서가 있다. 과거에는 옷을 맞추어 입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한 번쯤은 해 보았을 일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가짜 바느질’이라고 해야 할것이나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고, 여기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있으니, 바로 ‘시침질(혹은 시침바느질)’이다.
양복을 지을 때 잘 맞는지 보기 위해서 대강 시침하여 본다는 뜻으로 시침질이라고 한다. 우리말에서 ‘질’이라는 접미사는 대부분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 뒤에 붙는다. 도둑질, 염탐질, 싸움박질 등과 같이 쓰는데, 일반적인 일(행위)에도 쓸 수가 있다. 낚시질, 부채질, 곁눈질과 같은 것이다.
시침질도 그의 하나로 생각하면 된다. 이제는 가봉(假縫) 대신 ‘시침질’이라고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