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일하는 경우가 더러 있나 보다. 가끔 실장님이 “이 주무관, 쉬면서 해”라고 등을 두드려 주곤 하시니 말이다. 발송할 파일을 여러 번 확인해도 고칠 부분이 계속 눈에 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유를 갖고 일하기가 쉽지 않다. 마감 일자가 적힌 달력을 보며, 오늘도 조급한 마음을 안고 서둘러 마무리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때 열린 창문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 학교 1층 행정실에는 큰 창문이 하나 있는데, 창문이 보이는 그 맞은편에 내 자리가 있다. 고개를 조금만 들면 모니터 너머로 운동장이 보인다. 오늘따라 유달리 푸른 하늘과 나무들을 보니, 곧 6월임을 실감했다. 그리고 나의 은사님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께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나는 종종 편지를 써서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곤 했다. 편지에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선생님의 답장 속 몇몇 구절은 아직도 머릿속 깊이 남아있다.
‘여유를 가졌으면 해. 고민을 쉽게 풀 수 있을지 몰라. 통찰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잠깐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일을 시작하고 자연스레 커피를 찾는 습관이 생겼다. 커피에 담긴 나의 피로를 보면서 문득 첫 발령 후, 방송 조회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러분들의 곁에서 든든하게 지원하는 행정실 선생님이 될게요.’
학교의 모든 구성원에게 적어도 피해는 주지 말자고, 이 자리에서 열심히 하자고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어느덧 근무한 지 2년이 된다. 업무 사이클은 이해하게 되었지만,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할 때가 있다. 그렇게 처리한 업무의 결과물은 결국 다시 수습해야 하기 일쑤다. 한 번은 여유가 없어진 나의 마음 탓일까. 전화기 너머 들리는 나의 말 한마디가 모난 돌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더 친절하게 응대해야 했는데, 왜 그랬지’ 하는 생각에 온종일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내 자리가 낯설게 느껴질 때쯤, 마스크를 쓰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고개를 쭉 위로 들었다. 창문 너머로 봤을 때보다, 하늘과 나무들은 더 푸르렀다.
화단에 심어진 꽃들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한 단어가 다시 마음속에 떠올랐다.
‘여유’
여유에는 성급하지 않고, 너그럽게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뜻이 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여유’도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아직은 미숙한 내가 업무를 처리하면서 그러한 마음을 갖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쁘다고 끼니를 거르면서, 일을 서둘러 처리해도 그렇게 하지 않을 때보다 반드시 높은 업무 성과를 얻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마음속 여유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한 전문의가 강연에서 ‘여유는 삶에 대한 자신감으로, 자아존중감에서 비롯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가졌는지’와 같은 외적인 요인이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는 너그럽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에서 생긴다고 했다. 자연스레 나는 그동안 나 자신과 스스로의 삶을 진정으로 존중하며 살아온 순간이 얼마나 있었나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그렇지 못했던 시간이 더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다시 행정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며 스스로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제는 여유가 일상에서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이자 삶의 태도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6월, 고개를 들어 여유를 되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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