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범죄’라고 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흉악범이나 폭력배의 이미지를 연상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범죄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가족이나 이웃 혹은 연인처럼 ‘가깝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가해자인 사건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박미랑 교수가 이창무 교수와 함께 쓴 책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의 표지에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꼬집듯 “범죄는 흉악한 얼굴로 오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데이트 폭력 관련 논문을 발표한 박미랑 교수 역시 이러한 범죄의 일상성에 주목했다.
“이전에도 데이트 폭력의 개념은 있었는데 이를 범죄와 연결해서 연구한 사례는 드물었어요. 1997년에 한국에서도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되었는데, 유명무실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가해자가 이상한 사람이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여기면서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범죄의 발생 원인은 생각보다 무척 복잡하고 다양해요.”
이제까지 미디어에서 범죄를 다루는 방식은 주로 범죄자의 이상성에 집중된 경향이 컸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 외에도 사회 구조 문제 역시 범죄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 ‘범죄심리학’과 ‘범죄학’이 구분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범죄심리학은 범죄 현상을 바라볼 때 범행을 한 개인의 이상성을 병리적으로 해석해 개개인의 범죄 동기나 상황을 세세하게 심리적으로 분석합니다. 반면 범죄학은 가해자를 둘러싼 사회 환경과 구조를 거시적으로 살펴봅니다.”
일반적으로 범죄학에서는 ‘동기화된 범죄자, 취약한 피해자, 보호자의 부재’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범죄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누가 범죄를 일으킬지 알아볼 수 없고, 범죄자 역시 범죄 기회가 있어야 비로소 범죄를 저지른다. 피해자들이 아무리 조심해도 범죄를 사전에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보호자의 부재’는 보호자의 역할을 하지 않는 사회 문제와도 이어진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가해자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남의 일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회 구조를 바꾸는 일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해자를 엄벌하면 범죄가 사라질까. 하지만 조두순 같은 성범죄자를 구속해도 성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경찰의 수를 늘린다고 해도 그 수가 몇 배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경찰 활동에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CCTV가 범인 검거에 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수많은 시민이 과도한 감시와 사생활 침해 같은 부작용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박미랑 교수가 제안하는 범죄 예방법은 ‘집합 효율성’이다. 집합 효율성은 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구성원들이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리킨다.
“집합 효율성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며 응집력을 갖고, 사회 문제에 개입하려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문제를 발견하면 기관에 바로 신고하고,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나 유사 행위에 즉시 제재를 가하는 움직임이 범죄를 억제합니다.”
어떤 동네에서는 범죄가 발생하면 주민들이 지역을 떠나 슬럼화된다. 그런데 다른 동네에서는 범죄가 일어나면 주민들이 힘을 모아 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못하게 예방한다. 이 같은 차이는 지역에 지닌 주민들의 애착과 문제해결 능력에서 비롯한다. 박미랑 교수는 “집합 효율성을 높이면 범죄자가 두려워하는 동네가 된다”라고 강조한다.
“누가 우리 집 마당에 쓰레기를 버린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우리 동네’라는 애착이 크면 동네에 생기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게 됩니다. 집합 효율성을 실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본 중 한 가지는 ‘신고’입니다.”
사회에 큰 사건이 터지면 온라인에서는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수많은 범죄자들을 면담해온 박미랑 교수는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는 형량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잡히느냐, 잡히지 않느냐’가 범죄자들에게는 더 큰 관심사라는 것. 신고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로 취약한 피해자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문제를 발견했을 때 구성원들이 적극적인 신고 등으로 사건에 즉각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범죄학은 경찰학과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을 위한 교육적 가치도 크다. 박미랑 교수는 「범죄학으로 진실 보기」라는 교양강의를 통해 비전공자들에게도 범죄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는 곧 범죄에 대한 시민의식을 높이는 바탕이 된다.
“지식은 머릿속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녹아들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과제를 낼 때도 일상생활에서 집합 효율성의 중요성을 고민할 수 있는 주제들로 접근합니다. 대중가요 중에서 집합 효율성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노래 가사를 찾아보라고 하기도 하고요. 그에 대한 해석은 당연히 덧붙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짜 공부가 되니까요.”
범죄학을 연구하고 현장에서 범죄자들을 만나면서 그가 깨달은 범죄의 속성은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점차 커지면서 새롭게 관심을 둔 영역은 동물 보호다.
“인간 폭력의 근원을 공부하다 보면 동물의 폭력성에 대해서도 같이 살펴보게 됩니다. 동물들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사회라면 인간들에게도 안전하지 않을까요.”
범죄를 박멸하기는 어려워도 범죄를 제대로 알면 범죄로부터 파생되는 두려움과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더불어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 따뜻하고 살기 좋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범죄자들이 혹독한 교도소가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의 삶을 그리워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