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2반 교실이 떠들썩하다. 학생들 모두가 한지로 만든 연필꽂이를 들고 서로 발표를 하겠다고 사방에서 손을 번쩍번쩍 들고 있는 것. 누구 하나 소외되거나 엎드려 있는 학생이 없는 교실 안은 여름날 짙은 녹음 같은 생동감이 가득하다.
교실 복판에서 고운 생활 한복을 입은 채 학생들 사이를 누비며 소심한 학생들에게 발표를 독려하는 인물은 올해로 34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정경열 교사다.
“제게는 교사의 꿈을 꾸게 만들어 주신 분이 계십니다. 한 분은 초등학교 1, 2학년 때 담임이셨던 전영애 선생님, 또 한 분은 교도관이자 시인이셨던 제 아버지입니다. 고향의 작은 학교에서 만났던 담임선생님은 아주 친절하고 예뻤던 분이셨어요. 어렸던 제게는 말 그대로 선망의 대상이었죠. 아버지는 교도관으로 근무하시면서 만났던 재소자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는데 부모나 교사의 영향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담임선생님과 아버지를 보면서 교사의 꿈을 키운 셈이에요.”
대학 원서를 쓸 때 사범대를 추천받았지만, 정경열 교사는 굳이 ‘교대’를 선택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공부는 물론 음악, 미술, 체육 등 모든 걸 다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경열 교사는 주변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천직’이라는 얘기를 내내 들어왔다. 중학교 때는 사격 선수였고, 고등학교 때는 배구 선수로 활약했다. 대학에서는 태권도를 배워 공인 3단까지 땄고, 무형문화재 이명희 선생에게 판소리도 배웠다. 말 그대로 못 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도 심리상담사 자격증 취득과 한지공예, 천연염색, 연극활동까지 쉬지 않고 배우며 익혔고, 그 무수한 배움과 경험을 학생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했다.
“제가 살아보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하더라고요.”
학생들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던 정경열 교사는 그렇게 자신의 즐거움 안으로 학생들을 끌어당겼다.
그래서일까? 정경열 교사 곁에는 유독 많은 제자들이 있다. 제자로 끝까지 남기가 어렵다는 초등 제자들이 20년,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 선생님’을 찾는다니, 꽤 놀라운 사실이다.
“교직에 있으면서 제가 다짐했던 게 하나 있었어요. 그건 바로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죠. 제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많았던 학교에 발령을 유독 많이 받았었는데 그래서 더더욱 학생들에게 신경을 쓰고 살폈습니다.”
정경열 교사가 이야기 도중에 빛바랜 두툼한 앨범과 편지뭉치를 가져온다. 첫 발령을 받고 만났던 학생들부터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까지 함께했던 학생들과의 모습과 추억이 온통 빼곡한 앨범, 삐뚤삐뚤 서툰 글씨체의 편지부터 어느새 훌쩍 어른이 되어 의젓하게 쓴 내용의 편지, 여기에 학부모들이 보내온 글까지 더해지니 교사로서의 그의 삶이 얼마나 두텁고 풍성한지 그 느낌이 한 손에 가득 잡힌다.
그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들이 참 많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단칸방으로 몰린 제자를 위해 10년 상환으로 대출 을 받아 부모에게 전세 비용을 내주고 학생의 학비까지 건넸던 일, 선택적 함구증으로 학교에서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던 학생이 조금씩 말문을 열어가면서 그 어머니가 보내온 눈물의 편지, 교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학생이 자신의 말과 심부름에 조금씩 반응을 보였을 때 느꼈던 기쁨, 처음 발령받은 학교의 제자 중 한 명이 ‘정경열 선생님 제자’라는 스티커를 붙여 학교 전체에 떡과 음료수를 돌렸던 일까지 그에게는 모두가 안타까움과 행복, 보람과 감동이 날아들었던 시간이다.
어떤 이들은 까다롭고 다루기 힘든 학생들과 그보다 더 대하기 어려운 학부모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정경열 교사를 보면서 아주 특별한 비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경열 교사가 내놓은 해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관심’, ‘관찰’ 그리고 ‘대화’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그의 반은 잔반을 남기지 않는 반으로 유명하다. 사실 요즘 분위기에서는 강요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조금은 조심스러운 상황임에도 그는 꾸준히 이를 자신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학기 초에 어머니들과 상담을 해요. 편식 없는 식사는 저의 소신인데 어머니께서 반대하면 학생은 열외로 하겠다고요. 사실 학생의 편식은 어머니들의 고민이기도 하거든요. 때문에 대개 동의해 주십니다. 그리고 나면 급식 때 학생들이 밥 먹는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해요. 많은 학생들이 특정한 음식을 안 먹는 이유가 ‘먹어보지 않아서’인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주 조금 맛을 보게 하고, 그 맛에 대해 천천히 대화를 나눈다. “느낌이 어때?” “물렁물렁해요” “맛은 어때?” “아무 맛도 안 나는데요” “그래! 그게 바로 묵 맛이야, 아무 맛도 안 나는 것!” “신기해요” “그렇지? 근데 묵이 몸에는 굉장히 좋다?”
학생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낯선 음식들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고집을 부리는 학생들에게는 대화로 자연스럽게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게 해 자발적 실천이라는 동력을 부여해 줬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든 과정입니다. 하지만 성장기 학생들이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해요. 성인이 됐을 때의 건강까지 좌지우지하는 문제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의 편식을 고치는 건 선생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렇게 급식을 잘 먹게 된 학생들은 집에서도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못 하고 있지만, 학생들과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 역시 그에게는 무척이나 의미가 크다. 천방지축인 학생들도 찻잔에 차를 마시는 동안은 차분해지고, 친구들과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화는 상대를 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동시에 습관이라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화·소통의 힘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어려운 숙제니까 말이다.
정경열 교사는 이번 달 긴 교사 생활을 마무리하는 명예 퇴직을 앞두고 있다. 이토록 사랑하는 학생들을 조금 이르게 떠나는 이유를 궁금해하자 뜻밖의 대답을 들려준다.
“그동안 제가 가보지 못한 시골 학교, 섬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해보려고 해요.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남은 5년을 그곳에서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내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너무 좋아 교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오랜세월 내내 행복했다는 그. 그가 건넸던 따뜻한 대화와 미소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온전히 얻은 수많은 제자들이 이제는 제2의 삶을 시작하는 그를 응원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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