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하모’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경남 창원에 사는 고향 친구를 찾아갔을 때다. “니, 하모라고 들어봤나? 서울에선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자연산”이라며 하모를 사준다고 했다. “하모가 뭐냐”라고 물었더니 이빨이 날카로워 ‘이빨 장어’라고도 하는데, 표준어로는 갯장어란다. 7, 8월은 갯장어가 제철이다. 여름에 남해안에 가면 ‘하모 회, 하모 샤부샤부, 하모 죽’을 찾지 말고, ‘갯장어 회, 갯장어 샤부샤부, 갯장어 죽’을 달라고 하자.
이참에 ‘쓰키다시(つきだし)’란 말도 바로잡자. 일식집에서 회를 내놓기 전에 밑반찬으로 내놓는 가벼운 안주를 ‘쓰키다시, 스끼다시, 찌게다시, 치끼다시, 츠케다시’ 등으로 부르는데, ‘곁들이찬’이라는 우리말을 사용하자. ‘사시미(刺身)’와 ‘스시(鮨/壽司)’도 ‘생선회’와 ‘초밥’으로 바꿔 불렀으면 한다.
‘세꼬시’는 은어, 도다리, 전어처럼 뼈가 무른 생선의 머리, 내장, 지느러미를 떼어 낸 다음 뼈째 잘게 썬 회를 이르는 말이다. 뼈가 씹히는 거친 맛을 좋아하는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세고시(せごし)로 들리는데 대개 ‘가자미 세꼬시’, ‘봄도다리 세꼬시’, ‘자리돔 세꼬시’처럼 세꼬시라 말한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엔 ‘세꼬시’가 올라 있다. 군대 생활할 때 자대 동기들과 함께 방어진 횟집을 갔을 때 울산이 고향인 동기가 “아나고 세꼬시 주이소”라고 해서 뼈째회를 처음 맛보았던 기억이 난다. 국립국어원은 아나고(穴子)와 세꼬시를 ‘붕장어’와 ‘뼈째회’로 바꾸어 쓸 것을 권장한다.
‘아싸리(あっさり)’는 ‘시원스럽게, 담박하게, 산뜻하게, 간단하게, 깨끗이’라는 일본말이다. 여기에다 ‘그럴 바에는 오히려, 차라리’라는 뜻을 더해 ‘수정할 것이 많으면 아싸리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는 게 좋아’, ‘아싸리 잘됐다’처럼 쓰이고 있다. 몇몇 사전엔 ‘앗사리’는 ‘아싸리’의 비표준어이고, ‘아싸리’는 ‘차라리’의 경상 방언, ‘아싸리하다’는 ‘깨끗하다’의 제주 방언으로 올라 있어 헷갈리게 만든다.
한편, 일본말 ‘아싸리’와 닮은 ‘아사리판’도 일본에서 온 말일까? 덕이 높은 승려인 ‘아사리(阿闍梨)’에 일이 벌어진 자리를 뜻하는 ‘판’이 붙어 ‘아사리판’이 됐다는 어원설이 유력하다. 책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에 보면 ‘아사리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모여 의견을 개진한다’고 쓰여 있다. 아사리들이 다양한 의견을 펼치며 격론을 벌이다 보면 자칫 소란스럽고 무질서해 보일 수가 있는데, 이러한 점이 부각되어 ‘질서 없이 어지러운 현장’이란 비유적 의미로 아사리판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다고 나와 있다. 이제 ‘아싸리’를 ‘시원스럽게, 깨끗이, 차라리’ 같은 산뜻한 말로 바꿔 쓰는 노력을 해보자.
한여름 불볕더위엔 누구 할 것 없이 얼음처럼 차고 시원한 것을 찾는다. 몇 해 전 삼복 무렵, 어느 맥줏집에서 한 손님이 “여기 히야시 이빠이 된 걸로 주세요”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차게 함’이라는 히야시(ひやし)에 ‘분량이나 수효가 어떤 범위나 한도에 꽉 찬 모양’을 뜻하는 이빠이(一杯)까지 더한 형태다. 히야시는 ‘차게 하다, 식히다’라는 히야스(ひや-す)의 명사형이다. 영화 ‘타짜’에서 고니(조승우 분)가 곽철용(김응수 분)과의 첫 승부 장면에서 “에이, 이거 맥주가 시아시(히야시)도 안 돼 가지고…”라고 해 누리꾼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히야시를 대체할 만한 또 다른 말로는 ‘채우다’가 있다. ‘수박을 찬 계곡물에 채우다’, ‘생선을 얼음에 채워 두다’와 같이 ‘음식, 과일 따위를 차게 하거나 상하지 않게 하려고 찬물이나 얼음 속에 담그다’라는 뜻이다. ‘히야시 맥주’ 대신 ‘얼음에 채운 맥주’나 ‘시원한 맥주’로 쓰면 적당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