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탄소중립으로 요동치는
에너지 시장
국제유가의 급등세가 심각하다.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bbl: barrel, 석유양 측정 단위로, 약 159L)당 130달러까지 뚫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충격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위기까지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계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는 올 상반기 한때 배럴당 139달러까지 치솟았다. 국제유가 상승은 국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4.1%를 기록했다. 5개월 연속 3%대 상승 행진이다. 가계와 기업에는 고물가· 고금리·고환율의 위험 관리가 ‘발등의 불’이 되었다. 장기적으로는 탄소중립 정책으로 화석연료 에너지를 대체할 만큼의 재생에너지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면서 에너지 위기가 심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 곳곳에서 ‘탈(脫)석탄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에너지 위기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알아본다.
글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콜로라도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서 지난 20년 동안 국내외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해왔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국토교통부, 외교부 등 여러 정부 부처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KBS, MBC, SBS, YTN 등 주요 방송사의 뉴스, 대담, 토론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와 기회에 관해 이야기하는 「제로 이코노미」라는 책을 발간했다
급작스러운 데다 예상 밖으로 길어진 전쟁의 그림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예상보다 심화하면서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전쟁은 세계 경제에 다양한 방식으로 충격을 주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기에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현실화함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곡물·광물 등 원자재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에너지와 광물 가격의 급등은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러시아는 국제 에너지와 광물 시장의 주요 공급자다. 세계 시장에서 석유 2위(11.6%), 천연가스 2위(16.6%), 알루미늄 3위(5.6%), 니켈 5위(6.1%)를 차지하는 주요 에너지 공급처, 세계 산유국 3위에 꼽히는 나라가 바로 러시아다.
파급력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러시아산 원유다.
러시아산 원유의 수출 대상 국가는 유럽 53%, 중국 32%, 일본 2%, 미국 1.4% 등으로 구성되어 유럽과 중국이 85%를 차지한다. 서방의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한 국가가 다른 특정 국가에 대해 금융 거래·투자·교역 등의 통상을 금지하는 조치)가 확산되거나 러시아가 자국 원유 수출을 스스로 제한함으로써 석유를 무기화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유가는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2분기 러시아산 원유는 상당한 공급차질이 예상되며 설령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러시아산 원유 수출 중 약 60% 내외의 공급 차질이 지속될 전망이다.
쉽지 않은 러시아산 에너지 구멍 메우기
다른 부분에서 공급을 늘려 이러한 러시아산 원유의 공급 차질을 상쇄하기 위한 움직임도 시작됐다. 상대적으로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여유 생산 능력을 갖춘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증산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국제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OPEC 국가들이 제한적 공급 확대에 그치면서 유가 안정에 미온적이라는 점이다.
OPEC 국가들은 대부분 수출과 국가 재정 수입의 대부분을 석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국제 곡물 가격 상승 등으로 자국민의 불만이 고조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고유가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경제 제재로 제대로 공급되지 않던 이란산 원유의 향방도 중요하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긍정적으로 진행 중이어서 조만간 타결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란산 원유 공급은 올해 3분기나 되어야 원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중요한 석유 공급원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셰일 오일(shale oil)
*이다. 셰일 오일은 탐사부터 시추까지 전통 원유 대비 훨씬 빨리 개발할 수 있어 과거 유가 상승기에 탄력적으로 공급을 조절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14년과 2015년 저유가로 셰일 오일 투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왔다.
문제는 최근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셰일 오일 투자 회복이 미진하다는 점이다. 탈탄소 움직임, 정부의 재정 지원 감소 등의 문제가 더해져 중장기적으로도 고유가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셰일 오일 : 퇴적암의 한 종류인 셰일층이 퇴적될 때 같이 묻힌 고대 생물들이 열과 압력을 받아 생성된 액체 탄화수소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에너지 슈퍼 스파이크
결국 석유의 공급 충격은 올해 2분기에 정점을 기록한 후 OPEC과 북미의 원유 공급 확대로 점진적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의 원유 공급 차질이 장기화되면 석유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 당장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원유 재고가 27억 2,100만 배럴로 약 58일분에 달해 극도의 수급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금수조치가 두 달 이상 이어지면 재고와 추가 생산 여력이 소진되면서 유가의 ‘슈퍼 스파이크(Super Spike)’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유럽의 천연가스 문제는 좀 더 심각하다. 유럽 에너지의 약 25%가 천연가스를 통해 공급되는데 그중 40%를 러시아가 공급한다.
독일의 경우 전체 천연가스 소비 대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65%에 달한다. 러시아 이외에도 미국, 호주, 카타르 등이 천연가스를 수출하지만 아시아가 주요 고객이다. 유럽, 특히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PNG(Piped Natural Gas, 배관 천연가스)를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받는다. 더욱이 현물시장에서 단기계약으로 공급이 이루어져 가격 급등에 취약하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로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경우 글로벌 천연가스 공급 부족 현상이 유발될 수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유럽 공급이 제한될 경우 ‘유럽발 글로벌 인플레이션 충격’이 우려되는 이유다.
속도 조절 들어간 탈탄소, 장기적으로 확대 유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 따른 공급망 충격 심화로 탈탄소 행보는 단기적으로 속도 조절이 예상된다. 주요국들이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해 폐쇄 예정이던 석탄발전소의가동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화력발전 단가 조정 등으로 석탄 사용 확대를 한시 허용했다. EU 등 선진국들의 금융 지원이 어려워지면서 개도국들의 탈탄소 이행 속도도 느려질 것이다.
니켈, 알루미늄 등의 공급 차질로 전기차, 태양광 발전기의 원가가 상승하고 경기 하강에 따른 구매력 하락으로 매출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탈탄소 이행 속도를 늦출전망이다.
장비 부품, 인프라 비용 상승으로 태양광발전 프로젝트 일부가 지연되고 있고, 배터리 원가 상승 및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전기차 공급 확대가 제약 받고 있다. 테슬라는 판매가격을 인상했고,
전기차 업체 리비안은 올해 생산 계획을 전년 대비 절반으로 축소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경제 안보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탈탄소 필요성은 더욱 증대될 전망이다. EU는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자립을 위한 탈탄소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천연가스 소비량 감소 목표를 55% 상향 조정했다.
탄소 배출이 많은 중국, 탈탄소 밸류체인 조성이 늦은 미국에 비해 경쟁 우위를 확보한 EU는 탈탄소 전환을 주도함으로써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기존 전략을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급변하는 에너지 시장의 변화에 주목한다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