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으로 키우는 문제 해결 능력
‘사랑방’이 따로 없다. 연천 대광중학교 3층에 자리한 창의공학실. 목공 수업 시간이 아니라도 이 공간엔 온종일 많은 사람이 드나든다.
학원에 가기 전까지 목공 작업을 하겠다는 학생, 나무로 된 펜이며 도마를 손수 만들고 싶어 하는 교사, 학부모 워크숍에 참여하려고 왔다가 목공의 매력에 빠진 학부모까지 수시로 드나들며 목재를 다듬는다.
최창민 교사는 모두에게 열린 이 공간의 호스트다.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줄 뿐, 각자 스스로 제품을 완성하며 저마다의 성취감을 누리고 간다.
“오늘이 대광중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이에요. 지난 3년간 목공을 매개로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이 공간에서 서로 따뜻이 어울렸어요. 오는 3월부터는 일산 목암중학교에서 근무합니다.
그 학교에 가서도 목재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갈 생각이에요.”
그는 학교 현장에 목공 교육이 필요한 이유로 ‘문제 해결 능력 향상’을 가장 먼저 꼽는다.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대로 제품을 만들어가다 보면 그 설계도에 오류가 있었음을 직면하게 되고, 그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발휘되는 까닭이다.
예컨대 나무 두께나 나뭇결 따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도를 그리는 것은 학생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다. 그 실수를 깨닫는 건 실제로 작업을 해나가면서다.
자신의 설계나 치수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차근차근 다시 디자인해나가는 과정. 최창민 교사는 그 과정을 모두 기록하게 한다. 제품의 완성도보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목공 교육의 ‘진수’이기 때문이다.
“목공을 하다 보면 공간지각 능력과 수학적 계산 능력이 자연스레 향상돼요.
설계한 것을 실제화하는 능력도, 끝까지 해내는 지구력도 저절로 좋아지고요. 진로 탐색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제품의 기획부터 디자인, 홍보,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해보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에 잘 맞는지 저절로 깨닫게 되니까요.”
목재의 감수성으로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다
그게 끝이 아니다. 최창민 교사는 목공 교육이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은 목재 특유의 ‘감수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무의 향기, 색깔, 나무와 목재에 대한 정서….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것이, 목재를 다루는 동안 아이들에게 치유와 긍정의 에너지를 선사하는 까닭이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겉돌거나 학업에 흥미를 갖지 못해 수행평가를 포기해버리는 학생들이 한 학급에 몇 명씩은 있어요. 그러던 친구들이 단지 목재를 자르거나 다듬는 경험만으로도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무를 만진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 수업만큼은 아무도 포기하지 않고 모두 끝까지 해내더라고요. 목공 수업이 끝났을 때 아이들이 저에게
‘새로 만들어보고 싶은 게 생겼다’라고 말하곤 해요. 그럴 때 정말 기쁩니다.”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그를 행복하게 한다. 대광중학교엔 ‘어머니 목공 동아리’가 있다. 이곳 창의공학실에서 각자 목재를 다듬다가 자연스레 아이들의 목공 수업을 참관하기도 한다. 동료 교사들이 이 공간에서 목재를 다듬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모습도 그를 흐뭇하게 한다. 목재라는 소재를 학교 안에 들였을 뿐인데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유대감이 놀랍도록 끈끈해졌다.
전국창의목공교사모임 유동규 회원 작품[출처: ‘전국창의목공교사모임’ 네이버 밴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전국창의목공교사모임
최창민 교사와 목공의 인연은 첫 부임지였던 고양시 탄현중학교에서 시작됐다. 그 학교에 목공실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하던 그였기에 전반적인 목공 기술을 즐겁게 터득해나갔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기술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전국기술교사모임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기술 수업 콘텐츠로서의 목공을 떠올리지는 못했다.
그 무렵 가르치고 있는 기술 교과의 트렌드는 ‘정보화와 미래 사회’였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제작, 전기 자동차와 같은 것을 수업 콘텐츠로 활용했지만 기술 발전이 워낙 빨라 따라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회의를 느끼는 순간 목공이 떠올랐다. 기술 교과의 한 부분으로 원래부터 존재하던 목공 교육을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다.
“두 번째 부임지였던 일산중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목공을 수업 콘텐츠로 선택할 수 있었어요. 그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목재로 그네 의자를 만들었는데, 그게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학생은 물론 선생님들도 오며 가며 그 의자에서 쉬어 가곤 했죠. SNS에서도 화제가 됐어요. 제가 만든 그네 의자 사진을 보고 자기도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댓글이 무수히 달렸습니다.
목공을 향한 교사들의 열망을 그때 처음 접했어요.”
전국창의목공교사모임의 시작은 단출했다. 전국기술교사모임에서 만나 친분을 쌓아오던 윤성복 교사(청주 대성중학교)와 2012년 단둘이 모임을 시작한 것이다.
얼마 뒤 이대석 교사(충남삼성고등학교)가 합류해 모임의 꼴을 갖추게 됐고, 2015년 11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메이커 페스티벌에 전국창의목공교사모임 체험 부스를 마련하면서 제대로 된 운영진과 각 지역의 팀장이 구성됐다.
“저와 윤성복 교사, 이대석 교사가 모임을 꾸려가던 2013년 여름 ‘노작 교육을 통한 학교폭력 예방 과정’이라는 교사 직무연수를 마련했어요.
교사 60명을 모집하는데, 사흘 만에 500여 명이 신청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후 우리가 만든 우드 스피커, 나무 도마 등이 SNS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그 사진들이 퍼지면서 회원이 빠르게 늘기 시작했어요.”
2022년 1월 현재 네이버 밴드에서 활동하는 전국창의목공교사모임 회원은 1,200명이 조금 넘는다. 2명에서 1,200명으로 늘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성장이다. 나무는 어디서 구매하는지, 예산은 어떻게 마련하는지,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목공을 시작하려면 고려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아이들의 목공 교육을 위해 심리적, 물리적 장벽을 깨고자 노력해준 1,200여 명의 교사들이 그는 정말 한없이 고맙기만 하다.
“전국창의목공교사모임 교사들은 개인의 목공 실력 향상을 위해 활동하지 않아요.
오직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쓰고 계십니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죠. 가령 목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질문을 누군가가 올려 놓는다 하더라도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댓글로 달립니다. 서로의 성장을 위해 본인의 시간과 노하우를 기꺼이 내어 주시는 분들이죠. 기술교사들의 축제를 만드는 게 오랜 꿈이었는데, 올해는 그 꿈을 실현해볼 계획이에요.”
최창민 교사는 현재 목재문화진흥회 사외이사로도 활약 중이다.
목재문화진흥회는 「목재의 지속 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 제16조」에 의거, 목재 교육 활성화 및 목재 이용 촉진 등을 위해 설립된 단체다.
목재의 탄소 저장 기능을 활용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목재 문화 발전과 목재 이용을 촉진해 국민의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올바른 목재 교육이 필수다. 그의 사명감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문득 돌이켜보니, 제가 꿈꿔온 교사로서의 이상향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더라고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목공 수업을 통해 점점 더 그쪽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재는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재예요. 그 장점을 눈 밝게 알아보고, 있는 힘껏 키워주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전국창의목공교사모임이 만들어진 지 올해로 꼭 10년이다.
10년 뒤 그와 그 주변이 어떤 모습일지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