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김수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김수
행복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이국희 교수는 행복의 비밀을 ‘사이’에서 찾았다. 여기서 말하는 ‘사이’란 대단히
복잡한 개념은 아니다. “우리는 사이가 좋다”라고 표현할 때처럼 자신은 물론 부모와 친구, 이웃 등 일상에서 연결된
수많은 관계에서 비롯한 인지 과정이자 경험이다. 이국희 교수는 2024년 3월 출간한 그의 저서 『행복을 디자인하다』로 삶의 모든 관계에 주목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지 안내하고 있다.
“‘행복은 사이에 있다’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행복은 다양한 것과의 관계에 있다’라고 할 수 있어요. 그
관계를 세분화하면 일과 나의 관계, 타인 혹은 집단과의 관계 등으로 나눠볼 수 있겠죠.”
이국희 교수는 “관계의 핵심은 신뢰와 안정감에 있다”라고 전한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물론 다른 사람에 대한
신의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과 태도가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일관된 태도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이 나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기고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도 행복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신뢰의 문제는 행복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국희 교수는 “한 사람의 행복이 가진 파급력은 생각보다 크다”라고 말한다. 행복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행복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행복한 관계’를 확장하고 유지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찾아옵니다.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에서 발간하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는 세계 각국 사람들의 행복을 정량화해 지수로 표현하는데요, 평가하는 기준 가운데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항목이 있어요. 자신이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거죠.”
행복한 관계가 타인과의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 사이나 이웃 사이, 동료 사이는 물론 나 자신과의
사이도 엄연한 관계다. 그런 점에서 자기 정체성과 연결되는 학습이나 자기 계발, 습관 등도 자신과의 관계에
해당한다.
“자신과의 관계에서 역량에 대한 믿음은 자기 효능감으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효능감도 자기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객관적 근거 없이 지나치게 자신을 믿으면 자만이 될 수도 있죠. 때문에 현실에 맞지 않은
비현실적 낙관주의는 경계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성장·발전시켜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라 여기지만, 성장에 중점을 두고 나와의 관계를 조정하면 달리
볼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이국희 교수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불편을 감수하려는 마음가짐도 일종의 역량입니다.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저서 『히든 포텐셜』에서 ‘인성 역량’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인성 역량은 자기 조절, 공감, 인내, 협력 등으로 구성되며,
이는 개인이 도전에 직면했을 때의 대응 방식이나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습하고 실패를 겪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자세,
제때 출근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일, 회의 중 감정을 조절하고 의견을 차분하게 전달하는 것은 모두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과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에게 좋은 일을 지속하려는 마음가짐과 실천이
중요합니다.”
이국희 교수는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방법의 하나로 ‘읽기’와 ‘쓰기’를
제안한다. 독서에는 지식 습득과 함께 정서적 안정감을 주어 자신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드는 심리 치료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일기를 쓰면 막연하게 보내던 하루에 의미가 생기고, 보람도 찾을 수 있습니다. 불쾌한 일이
있었더라도 일기를 쓰면서 감정을 객관화하고 정서를 안정시킬 수 있고요. 조선 시대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과 정조 역시 읽고 쓰기를 좋아했던 분들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극복했던 비결이 읽기와 쓰기에 있었던 거죠. 읽기와 쓰기의 가치는 지금 시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국희 교수는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했어도 행복의 원리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한다. 즉 행복은
단기적인 쾌락이나 즉각적인 보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과 인내를 통해 얻어지는 깊은
만족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긴 글을 보고 해석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보다 짧은
영상에서 얻을 수 있는 단기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확산하는 요즘 세태에 심각성을 느낀다.
“단기적인 쾌락을 경험할 때마다 우리 뇌의 중추에서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그런데
자극적인 콘텐츠를 반복해서 보면 오히려 행복에 둔감해질 수 있어요. 단기적인 쾌락에서 결국 허무를
느끼는 이유도 행복과 불행의 균형을 추구하는 우리 뇌의 근본적인 성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운동이나
독서처럼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는 행위가 자극적이고 단기적인 쾌락보다 진정한 만족감과 행복을
지속적으로 얻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평범한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나와 나 사이, 나와 우리 사이, 나와 일 사이 다양한 관계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틈틈이 발견하는 것이다. 결국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