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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공감(授業共感)

한국인의 한글을 세계인의 한글로

前 충남대학교 국어교육과 정원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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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세계화가 진행 중이다. 한국 문화 콘텐츠가 인기를 끌어 한국어를 배우는 세계인이 늘고 있으며, 유엔은 고유 문자가 없는 나라에 한글을 보급해 문맹 퇴치의 가능성을 열었다. 국어학자 정원수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글을 ‘세계 통일 문자’로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 세계 각국의 언어를 한글로 읽고 쓰고 소통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정원수 교수에게 들었다.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한글로 세계의 언어를 말하고 배울 수 있다면

한글은 세계인이 인정하는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이다. 덕분에 한국어를 알지 못하더라도 몇 가지 원리만 익히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
정원수 교수는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에 주목해 한글로 세계의 언어를 표기하자고 주장한다. “한글을 세계의 통일 문자로, 한국어를 인류의 공용어로 승화하자”는 의견의 바탕에는 그가 정리한 ‘한글 운율문법’이 있다. 악보를 보고 반복해서 노래 연습을 하듯 누구든 한글 표기와 함께 음표와 쉼표 그리고 리듬과 운율 등이 표시된 운율 악보를 보고 한글을 익힐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정원수 교수는 스승인 국어학자 김차균 충남대학교 명예교수가 집대성한 ‘운율문법’의 이론을 계승하면서, 언어에 내재하는 보편적인 운율을 발견해 새로운 언어학 이론인 ‘한글운율문법’으로 정리했다.
“한국인이 영어를 10년 넘게 배워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문법과 독해 위주로 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 한문을 공부하던 선비들도 정작 중국어는 하지 못했죠. 문어(文語)로서의 한문 공부만 했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습득하려면 알아듣고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그 본질을 놓친 겁니다.”
정원수 교수는 한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글운율문법의 ‘유니코드 한글자모’를 활용해 음절식 표기를 하고 각 언어의 리듬과 운율을 오선지에 음표와 쉼표로 표시하는 방법을 개발하면서 세계 각국 언어의 한글 표기법과 운율의 리듬 분석법을 익힐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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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지에 적힌 한글을 보며 외국어를 읽고 말하다

정원수 교수는 한글운율문법을 통해 외국어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정원수리듬법칙으로 영중일어 완전정복>이라는 책을 엮었다. 유니코드 한글자모로 음절식 표기를 하는 ‘온누리 한글 표기법’을 정리하는 한편, 해당 언어의 단어와 문장의 운율을 리듬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정리해 한글을 통해 외국어의 발음과 운율 구조를 터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는 “언어의 기본 리듬 단위인 한박자 리듬과 반박자 리듬 등 30가지를 발견했다.”며, 이러한 리듬은 시를 만들거나 작곡할 때도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즉, 특정한 부분을 세게 발음해 의미를 전달하는 영어를 한글 음절로 표현하면 일정한 유형의 리듬이 생겨난다. 이에 따라 영문자 발음을 한글로 표현하고 그 리듬이 변하는 모습을 오선지에 표현하면 악보를 보듯이 언어의 리듬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I am your English teacher”의 경우 ‘주어+서술어+보어’라는 문법적 설명에서 벗어나, 운율 단위로 보면 ‘I am’과 ‘your’는 1박자 ‘강약약격’ 음보로 표현되고 ‘English’와 ‘teacher’는 5음절 변이형의 ‘강약약약약격’ 음보로 연결되는 식으로 운율법적 설명이 가능하다. 결국 문장이 음보와 합해져 리듬과 멜로디가 있는 운율, 즉 억양이 있는 선율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이론이다. 그는 “영어는 강세가 박자를 만드는 리듬언어”라는 세계적인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의 연구를 인용하며, 영어 단어와 문장을 음악의 음표와 쉼표로 표현하면 리듬이 더 명확해진다고 밝혔다.
외국어의 한글 표기와 리듬 분석은 학자의 몫이지만, 이를 실제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때에는 선별한 외국어 문장을 한글운율문법에 따라 노래하듯 따라 읽고 이해하면 된다. 한글운율문법을 활용한 외국어 학습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정원수 교수는 충남대학교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외국어 읽기와 말하기 교육을 병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글운율문법은 어려운 문법 대신 익숙한 한글을 통해 외국어 학습을 한결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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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함께 다중언어를 배우는 미래

복잡한 문장이 아닌 노래하듯 익히는 언어는 그 자체로 배움이자 놀이가 된다. 이러한 방법을 활용하면 한글을 읽으며 음표와 쉼표를 보고 소리의 높낮이와 길이까지 한 번에 익힐 수 있다. 정원수 교수는 한글운율교수법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교과 위주 외국어 학습이 아닌 다중언어 학습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한자 교육도 포함된다.
“저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다중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베트남 등 여러 나라가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데, 한자를 모른 채 공부하면 어휘력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일상생활에서는 한글만 써도 되지만 교육과 말과 글을 사용하는 생활은 별개입니다. 그리고 한글을 보조수단으로 외국어를 공부할 수 있다면 언어 학습의 경계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정원수 교수는 한글운율문법이 외국어를 한결 쉽게 익히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외국어 교육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장기적으로 생성형 AI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의 학습에 한글운율문법을 활용한다면 효율성이 더욱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 역시 ‘한글 리듬 인공지능’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8월 말 30여 년 동안 몸담았던 충남대학교에서 정년퇴직을 했지만, 정원수 교수의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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