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철원군청
화산과 용암이 빚은 땅 철원평야
영겁의 세월 너머, 오래전 옛날 오리산의 화산 분출로 인해 쏟아져 나온 용암이 흐르며 형성된 한탄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비옥한 평야는 남한 최북단에 자리 잡은 철원땅을 고대 왕국의 수도로 발돋움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면적이 650㎢에 달하는 철원평야는 서울의 모든 구를 다 합친 것보다 넓어 농사에 적합하다. 뿐만 아니라 너른 땅 한복판에는 철새들의 겨울 보금자리인 ‘철원 철새 도래지’가 자리 잡고 있는데, 한겨울에도 땅속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나와 먹이활동을 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었다.두루미의 신비로운 날갯짓이 궁금하세요?
철원군 내포리에 위치하는 철새 도래지는 국내 최대의 두루미 서식지로 알려진 만큼 두루미, 재두루미를 포함해 우리나라를 찾는 모든 종류의 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지난 1973년 일찌감치 철원평야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또한 철원평야에는 쇠기러기를 비롯해 보호종으로 지정받은 다양한 종류의 수리류(독수리, 흰꼬리수리, 검독수리 등)가 겨울을 나는 월동지로 유명하다. 새를 관찰하는 일을 취미로 삼고 있는 탐조인들이나 조류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사진가들이 매서운 겨울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원평야를 찾아오는 이유다.전쟁의 상처 아문 자리에 찾아온 철새들
DMZ두루미평화타운 인근 양지리마을에 위치하는 토교저수지 역시 겨울철 철새들이 머물다가는 철새도래지다. 본래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조성된 대규모 인공저수지이지만 이 무렵 월동하는 기러기들이 새벽에 먹이활동을 위해 일제히 비상하며 군무를 추는 환상적인 광경을 선보인다. DMZ와 매우 인접해 있기 때문에 군부대와의 협의 하에 원거리에서만 관찰이 가능하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DMZ두루미평화타운 서쪽에 자리 잡은 삽슬봉 정상에도 두루미 생태탐조대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삽슬봉은 한국전쟁 기간 중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장소로 극심한 포격으로 인해 산이 마치 아이스크림 녹아내리듯 무너져 흘러내렸다 하여 철원 토박이들 사이에서는 ‘아이스크림고지’라고 불린다.한탄강 비경 만끽하며 걷는 얼음 트레킹
남한 최북단에 위치하는 철원군은 지리적 특성상 겨울 추위가 매우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이 무렵 철원의 젖줄 한탄강은 꽁꽁 얼어붙어 2월까지 얼음 위를 사람이 걸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철원군은 다른 계절에는 불가능한 이러한 특성을 십분 활용해 태봉대교에서 순담계곡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8km 구간을 한탄강 얼음 트레킹 코스로 지정하고 매년 1월 중순경 한탄강 얼음 트레킹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그리운 고향의 맛을 담은 아바이순대
아바이순대를 맛볼 수 있는 철원군 서면 평남면옥(033-458-2044)은 평안남도 개천 사람이었던 창업주가 전쟁통에 남쪽으로 피난 내려왔다가 구호주택 한켠에 차린 식당으로부터 시작됐다. 묘향산 자락에서 음식점을 했던 창업주 부모의 어깨너머로 보았던 요리 중 하나가 아바이순대였는데 당시 세상이 흉흉했던 난리통이었던지라 가게도 여러 차례 옮겨다녀야 했다고. 아바이순대를 듬뿍 넣은 순대국과 꿩냉면도 이 집을 찾는 단골들이 즐겨 먹는 메뉴로 창업주의 손맛을 물려받은 아들은 지금도 꿩고기를 다듬고 뼈를 우려 육수를 내면서 옛 생각에 빠져들고는 한다. 철원김화의 맑은 햇살 아래 자란 쌀과 식재료를 듬뿍 넣은 순대와 꿩냉면은 그야말로 잊혀져 가는 우리의 맛이 아닐까.한탄강에서 잡아올린 활력의 맛 매운탕
수질이 좋기로 유명한 한탄강 상류에서 잡은 잡어와 메기를 넣어 끓인 매운탕은 미식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먹거리로 정평이 나 있다. 한탄강매운탕(033-452-8878)은 잡어매운탕, 메기매운탕을 시그니처 메뉴로 내세우는 매운탕 전문점으로 험준한 자락의 물 맑은 계곡을 끼고 있는 산간지방에서 흔하게 맛볼 수 있는 도리뱅뱅과 어탕국수도 취급한다. 한탄강매운탕은 향어, 메기, 모래무지 등을 이용해 매운탕을 조리하는데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없을 뿐 아니라 국물에서도 정성가득 담은 깊은 맛이 우러나와 외지인들도 즐겨 찾는 철원의 대표 맛집이다. 특히 여럿이서 둘러앉아 매운탕을 먹으며 곁가지 음식으로 도리뱅뱅을 주문해 먹는다면 대화가 끊길 정도로 훌륭한 맛의 조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겨울바람 물리치는 뜨끈한 만두전골
뜨끈한 국물과 함께 맛보는 만두전골은 철원의 겨울 추위를 잠시 잊게 해줄 만큼 고마운 음식이다.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의 너른 논밭을 마주하고 있는 민속정(033-456-1676)은 주문이 들어오면 그제서야 만두를 빚기 시작한다. 당연히 모든 재료가 준비되어 있는 다른 식당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리게 마련이지만 금방 빚은 만두와 지역에서 나는 싱싱한 부재료들을 이용해 조리한 만두전골은 무엇과 바꿔도 아깝지 않을 오묘한 맛을 선사한다. 예약도 가능하므로 미리 전화를 통해 메뉴를 주문한다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전골 외에도 찐만두, 능이백숙, 오리고기 월남쌈 등도 손님들이 자주찾는 인기 메뉴이다. 고석정과 DMZ두루미평화타운 중간에 위치하여 두 곳을 오가는 동선을 계획했을 때 들리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