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매거진(더케이매거진)
영원한 선생님 최고의 김위경 선생님
작성자 노*주 2024-05-05
방멸록 샘플
십 리를 걸어 다니던 중학교 시절 처음 만난 영어 선생님은 특별했습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이 맑았던 저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해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위축되어 지내던 제게 선생님은 든든한 응원자였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동기 부여로 작용했습니다.

자취방에 들러 밥 먹고 가라며 다정하게 이끌던 선생님의 한마디는 큰 에너지를 줬습니다. 선생님 연세는 일흔 여섯 이라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미루면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는 뵐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만사 제쳐두고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왜소한 몸집에 주름만 더 늘어난 선생님은 청바지가 잘 어울렸습니다. 눈물로 큰절을 올린 뒤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중학교 때 뵙고 교직 33년차에 뵈었으니 세월이 많이도 흘렀네요. 켜켜이 쌓아둔 그리움의 빗장을 풀고 만난 은사님과 하룻밤을 함께 보냈습니다. 일흔여섯의 선생님은 그윽한 눈으로 40년 전 단발머리 소녀를 떠올리며 낙후된 지역 열악한 환경에서도 눈빛이 살아 있어 좋았던 시절을 되뇌었습니다.

녹음기에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영어 회화를 들려주고 잠시 멈춘 뒤
소리 내어 말하여 보라며 입을 터 준 선생님의 수업이 좋았습니다.
원어민 발음을 흉내 내어 읽고 말하다 보니 어느새 파닉스도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큰 소리로 불규칙 동사의 3단 변화를 뇌까리며 교실에서의 영어수업을 기다리던 흑진주 소녀는 한 학교의 교감으로 성장하여 선생님의 사랑을 제자들에게 갚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언제나 몸 건강하게 지내다 부는 바람에 스치는 옷깃처럼 만나 뵙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