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매거진(더케이매거진)
이제는 명예퇴직한 아내 이현숙 선생께
작성자 서*근 2024-05-06
방멸록 샘플
여보, 올해는 당신이 그토록 평생 직장으로 근무하던 교직에서 명예 퇴직한 지 3년째가 되는 해인가 봅니다. 남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당신이 현직에 근무할 때 당신 생일이 다가오면 근무지 학교로 내가 보냈던 선물이었습니다. 당신 생일은 음력으로 쇠기 때문에 매년 3월말 4월초였습니다.
5년 전 일로 기억합니다. 당신이 순천 금당중학교 근무할 때였습니다. 매년 해 오던 것처럼 꽃다발(당신은 난 화분이나 꽃바구니를 원했지만 내가 근무했던 학교 젊은 여선생님들께 자문을 구했더니 꽃다발을 추천했다오.), 생일 축하 케이크, 그 해 처음 나온 수박을 택배로 부치려하는데, 그 해따라 당신께 손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는 저는 제 책상 위에 편지지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오. 결혼 전 당신께 사랑을 고백하면서 손 편지 쓰고 난 후 교회 행사 때를 비롯하여 한두 번 쓰기도 했었죠.
막상 펜을 드니 예상 외로 쓸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1학년, 5학년 때 스승의 날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신이 제안했었죠. 당신은 5학년 딸아이 담임선생님께 감사편지쓰고, 저는 1학년 아들 담임선생님께 감사편지 쓰자고. 그 때는 정말 당황했었습니다. 아들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쓰려고 하니 쓸 내용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왜 이러지?하면서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들 담임선생님에 대하여 성함 외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편지지 한 면을 어렵게 채워서 우표 붙인 후 길거리에 세워진 우체통에 넣었던 그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 이후 15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신에게 편지 쓰려고 펜을 드니 쓸 내용이 엄청 많이 떠올랐습니다. 왜 일까요? 당신과 결혼 이후 30여 년을 생활하면서 당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편지지 두 장 반을 채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봉투에 넣었더니 두툼했었거든요.
당일이 당신 생일이었기 때문에 우편으로 부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미리 부탁했었죠. 꽃집 주인 아주머니께 가게 철책문 사이에 끼워 놓을 테니 꽃배달할 때 손편지를 꽃다발 속에 끼워서 전달해 달라고. 당신은 그 날 퇴근 후 집에 와서 저와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무척 행복해하더군요. 학교에서 선후배 동료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생일 축하 노래와 박수 받느라 하루 종일 학교가 온통 시끄러웠다고.
며칠 전 큰 처남이 당신 생일 날짜가 가족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뜨지 않는다고 하자 당신이 댓글 올렸죠. 그 해로 추측됩니다. 당신 생일 축하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이 너무 시끄럽게 해서 비공개로 했다고. 그 댓글을 읽고 빵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더군요. 그리고 저는 바로 또 댓글을 달았죠. 그래도 그 때가 행복했겠다고.
그렇습니다. 저도 올해 교직 마지막 해로 40년 근무했습니다. 내년 2월이면 정년퇴직입니다. 하지만 하루라도 현직에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있고 좋은 직업이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당신과 딸, 아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있죠. 아빠는 자신의 직업 교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남다르다고.
그래도 당신이 명예퇴직하고 여유있는 시간 보내면서 신앙생활, 취미활동하는 것 보니 매일 쫓기는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받느라 고생 많았겠다고 뒤늦게나마 위로를 보냅니다.
내년에 저도 퇴직하면 함께 즐겁고 행복한 생활합시다. 언젠가 스승의 날 때 거실에서 당신을 향해 두 손 내밀며 불러 주었던 스승의 노래가 오버랩됩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