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매거진(더케이매거진)
보고 싶은 옥희에게
작성자 박*철 2024-05-08
방멸록 샘플
옥희야.
지난 1991년 5월의 아득한 옛 추억이 그리워 네게 고마움의 편지를 띄운다.
1991년 2월에 내가 안동여고를 말없이 떠나 서울로 전근 가자,졸업할 때까지 함께 가자고 해놓고 왜 갔냐며 원망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던 우리반 학생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 야속해하는 것 같은 얼굴들이 눈에 밟혀 3월 토요일 하루 연가를 내고 서울서 안동까지 찾아가 너희들에게 말없이 떠나와 미안했다고 말하자, 연예인 못지 않게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나를 환영해주던 너희들의 모습, 그리고 그 해 스승의 날에 네가 보내 준 그 화려한 선물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니.
3학년에 올라가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을 일일이 찾아가 정성껏 그린 거북의 등짝에 한 마디씩 적도록 하여, 우리반 54명의 이름이 번호순으로 쭉 이어지게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든 3단 접이의 커다란 카드 위에, 물기를 흠뻑 먹은 카네이션이 신선함을 유지하라고 솜으로 정성껏 둘러싼 채 커다란 상자로 포장돼하여, 내가 근무하던 학교로 소포로 배달돼 주위의 많은 선생님들을 감동시킨 그 선물을 어찌 잊을 수있겠니?
내 평생 그와 같은 멋진 선물을 받은 선생님들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단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내가 궂이 사양하는데도 떠맡겨 하는 수 없이 네 결혼식 주례를 맡았던(내가 갓 마흔을 넘긴 젊은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주례를 서게 한) 그 쑥스런 기억을 갖게 한 것도 너 옥희 아니더냐.
이제 나도 퇴직한 지 3년이 지났고, 너도 이미 50대 초반의 중년이 됐으니 언제 한 번 만나 옛 이야기 진하게 나눠보자꾸나.
해마다 오월이 되면 너의 그 소박한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일년 동안 꾸준히 내 책상 위에 꽃을 갈아준 사람이 너라는걸 알았지만 모른 척하며 지냈던 세월 또한 고맙고 미안했다. 반에서 정부회장의 감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반장보다 더 열심히 학급을 살뜰하게 챙겼던 네 그 깊은 마음을 내 어찌 몰랐으랴.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 지금은 어찌 지내는지 정말 보고싶구나, 그리운 옥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