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작년 2월 암 선고를 받고 교직에서 바둥대며 이래저래 일년 반이 훌쩍 지났네.
학생들과 학교 그리고 학부모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임선생으로 살다가 갑상선에 붙은 암 두개로 암선생이 되어버린 슬픈 너. 육아 휴직마치고 복직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몹쓸 암을 달고 서툰 복직러로서 헤매고 사고치는 2학기를 보내며 많이 피곤한 네게 이 기회를 빌어 위로의 글을 쓴다.
요며칠 계속 집에만 가면 뻗어 버리는 저질체력의 너에겐 가장 든든한 내가 있음을 기억하길 바라.
가벼운 암이라고는 해도, 몸 속에 그녀석을 데리고 사느라 마음 한켠은 무겁고 힘들거야. 말 잘 듣는 우리반 아이들과 좋은 동학년과 멋진 학부모님을 만나 그저 감사하지만 그래도 담임으로서 시시각각 긴장하고 사는 삶이 어찌 만만하겠니. 그래도 임선생으로 살 때는 조금은 가벼웠는데 몹쓸 악성종양이 붙어 암선생이 되고나니 10년후 아니 정년까지의 내 모습을 그리기가 너무 벅찰거야. 어떨 땐 당장 십 년뒤가 아닌 아닌 바로 내일도 뿌우연 안개 속에 가리워져 있는 것 같지? 그래도 매일 맑은 날씨 푸른 하늘만 경험하는 인생이 몇이나 되겠니 생각해라. 안개 속을 걸을 때는 속도를 낮추어 좁은 보폭으로 천천히 걷고, 다시 또 맑은 날씨같은 하루가 오면 그 땐 신나게 뛰면 되는걸.
몹쓸 점 하나로 암희은이 되버린 너. 어쩌면 이건 다른 이유없이 그저 과거의 널 사랑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해 스스로를 몰아세우던 삶의 결과일지 몰라. 지금이라도 발견했으니 다행이지. 학교 안에서 교사의 삶, 가정 안에서 엄마 아내 며느리 딸로서의 삶을 너무 의무로 받아들이지 말고, 주어진 자리를 사명으로 감사로 받아 그저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길. 그렇게 채워진 십 년은 정말 아름다운 열매로 가득한 멋진 시간이리라 믿어. 그 사이 암은 사라져 다시 임선생으로 행복해지길 바란다.
다섯살 아이도 자주 아픈 남편도, 노환으로 앓는 부모님도, 반 아이들도 모두 내려놓고
매일 아침 나 자신과 평안한 아침을 맞는 너로 그렇게 10년, 20년 너만의 색깔과 맛을 내는 삶을 살길 바라.
나라서 고마워, 사랑해, 행복해.
깊어져가는 가을, 인생의 서리를 맞아 더 한층 깊은 맛을 내는 암선생 아니 임선생으로 행복할 내게
사랑스러운 내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