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할머니가 된 나에게
할머니 안녕하세요? 진짜 이 편지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높임말이 조금 더 실감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무사히 할머니가 된 이후에 이 편지가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우선 축하합니다. 퇴직을 하셨네요!
더구나 없는 돈이라 생각하고 모으면서도 드문드문 생각나는 장기처축급여가 드디어 결실을 맺었고요.
고등학생 때부터 할머니가 되면 제주도로 이사를 가서 귤농사를 짓겠다고 말하고 다니다가,
대학생 때 농활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농사일의 녹록지 않음을 깨닫고는
대단한 귤농사 말고, 한 열 그루 심어서 키워야겠다,하고 수정했던 계획을 드디어 이룰 수 있게 되었네요.
이 첫 번째 나무가 맺은 귤은 부모님 것, 다음 두 번째 나무가 맺은 귤은 엄마 다음으로 좋아하는 우리 이모 것, 세 번째 나무는 내 친구 **이 것, 네 번째는 또 아무개 것.
그렇게 나무 그루마다 소중한 사람들 이름을 붙이고 겨울이면 귤박스를 보낼 생각에 매해 들뜰 그 계획!
귤나무가 망한 해에는 '네 나무에서는 이것 밖에 안 맺었어'라며 짖궃게 놀리기도 할 그 재미난 일!
사실 이 계획을 이루기는 쉽지 않아요.
우선 할머니가 될 때까지 소중한 사람들이 적어도 열댓 명 곁에 남아있어야 하고요,
가지고 있는 걸 기꺼이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러니까, 친절하고 따뜻한 할머니가 되어야겠지요.
다음으로는 내 먹고 사는 문제 이외의 것들을 기꺼이 해볼 만한 건강과 시간,
그리고 돈이 있어야 하지요. 바로 여기서 지금 제가 오랜 시간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장기저축급여가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떨지 궁금하네요. 기특하게 여기실까요?
생각만해도 두근거리는 이 귀여운 귤농부가 되는 일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지금의 저는 멋쟁이 할머니께로 뚜벅뚜벅 걸어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