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38여 년간의 공직 생활을 명예퇴직으로 마감하고 만학도로 시작한 학문적 열정이 인연이 되어 2022년 1학기에 영남대학교에서 늦깎이 선생으로 ‘사회 공헌과 봉사’ 교양과목을 강의하게 되었다.
2021년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대학 행정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내가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다 2022년 객원교수 모집에 원서를 내고 학생들 앞에 서게 되었다.
명예퇴직 후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고민해왔다. 재취업, 취미 생활 등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뜻한 대로 되지는 않았다. 가끔 공무원을 대상으로 비대면 소양 교육을 강의해 온 것이 힘이 되어 대학 강단에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객원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짧은 기쁨보다는 첫 강의 시간이 다가오자 수강생이 100명 이상인 대형 강의실에서, 더군다나 1학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강의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설렘 반 걱정 반 상황을 맞았다.
금요일 1교시 수업의 서막을 BTS의 ‘Permission to Dance’ 를 들려주며 학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내가 맡은 교과목은 ‘사회 공헌과 봉사’로 신입생 대상의 교양필수 과목인 만큼, 선생이 제대로 경험해 보지도 않은 봉사를 통해 사회 공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멋쩍어 봉사 활동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봉사’를 주제로 한 강의를 학생들과 소통의 채널로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예전 장애인 시설에서 경험한 봉사 활동에 다시 참여하고자 문을 두드렸으나 코로나19 때문에 외부인의 자원봉사가 허용되지 않았다. 다행히 오래전부터 꼭 하고 싶었지만 참여하지 못했던 무료 급식소와 연이 닿아 지난 3월부터 노숙인과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주 5회 운영되는 무료 급식소에 주 1~2회 정도 참여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참여하자마자 정기적으로 나오던 봉사자 한 분이 자주 나오지 못할 상황이 되어 자연스럽게 강의가 있는 금요일 하루를 제외하고주 3~4회 봉사 활동을 하게 됐다.
하루 300명의 도시락을 준비해 노숙인과 쪽방 독거노인에게 지급하고 가끔 여분이 있으면 대구역, 경상감영공원, 달성공원으로 이동해 점심시간 전후에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어르신들을 찾는다. 그러고는 “어르신, 점심 드셨어요?”라고 조용히 묻는다. 대부분은 “안 먹었어요.”라고 답한다. 도시락은 필요한 사람에게 다 나눠주고 빈 박스만 실은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내 머릿속 생각 주머니에는 조금 전 공원의 모습이 저장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무료 급식소에서 점심을 배식했지만, 코로나19 이후부터는 사정상 도시락으로 대신하게 되면서 참여 자원봉사자도 이전에 비해 턱없이 줄어들었다. 그런 까닭에 어떤 날에는 1인 2역, 또 어떤 날에는 1인 3역을 감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무료 급식소에서 주로 하는 봉사 활동은 도시락 담을 비닐봉지 접기, 반찬 담기, 당근 썰기 같은 재료 준비, 도시락 담기, 도시락 배부, 설거지, 기부받은 옷 정리, 청소 등을 가리지 않는다. 일상에서는 허드렛일 같아
보이지만 무료 급식소의 일과로는 매우 소중한 일이다.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나의 짧은 봉사 활동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하면 내 일정에 따라 봉사 활동을 거를 수 없게 되는 매력에 빠지게 된다.
솔직히 나는 봉사 활동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시작했지만,실제로는 생각 이상으로 힘이 들어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조용히 오전 상황을 되짚어 보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한 덕에 마음속 깊이 엔도르핀이 샘솟으면서 어느새 피로가 사라지고 뿌듯함과 행복으로 가득 차올라 이 일을 그만둘 수 없게 된다.
‘사회 공헌과 봉사’ 강의에서는 봉사는 계획(plan)이 아닌 실천(action)임을 강조하면서 무료 급식소 봉사 활동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수업 시작 직전에 한 학생이 무료 급식소에서 매주 토요일 봉사 활동에 꼭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후 2주째 청소, 반찬 담기 등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내는 그 학생의 모습을 보며 대견스럽기도 하고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 냈기에 따뜻한 봄, 예쁜 꽃을 맞이할 수 있는 것처럼 봉사 활동은 우리가 진정 아름다운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긍정의 엔도르핀을 샘솟게 한다.
코로나19로 이웃 간 관계가 소원해진 지금, 우리 공동체에 봉사의 향기가 이심전심 전달되어 누구라도 나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여유 있는 삶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