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는 가슴 떨리는 소비를 원해
가성비가 떠난 자리에 가심(心)비가 남았다.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보다 마음의 만족이 더 중요한 배경에는 MZ세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들이 있다.이들은 싼 물건에 눈독을 들이는 대신, 비싸더라도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거나 신념에 만족을 주는 상품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2030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소비다.
가격을 넘어 가치의 소중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의 움직임은 현재 세계적 열풍으로 번지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를 표현하는 ‘미닝아웃’이 뜨면서 기업이나 정부도 덩달아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닝아웃은 의미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벽장에서 나오다’라는 뜻의 커밍아웃(coming out)을 합친 신조어다.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신념이나 가치관·취향·성향 등을 밖으로 드러내는 행위를 말한다. 요즘 기업들이 내세우는 중요한 가치가 ESG(환경 Environment, 사회 Social, 지배구조 Governance)인데, 소비 주체인 MZ세대의 변화한 가치소비와 맥을 같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제품일지라도 그 물건이 환경이나 기후에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적으로 공동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쉽게 구매하지 않는 젊은 세대의 가치소비에 기업도 적극 동참하는 분위기다.
최근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는 가치소비자다’라고 밝힌 응답자가 79%에 이를 정도로 가치에 대한 인식이 확고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MZ세대가 바라보는 ESG 경영과 기업의 역할’에 대한 MZ세대 소비자 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64.5%가 “가격이 비싸더라도 ESG 경영 실천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겠다”라고 답했다.
친환경, 선행 등 긍정적 가치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소비
미닝아웃의 소비 종류는 다양하다. 가장 많은 가치소비가 친환경이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해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앞으로 살아갈 세대와의 공존을 모색한다. 브랜드 상품을 구매할 때 판매액의 일부를 기부로 연결하는 기부 상품 소비는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MZ세대의 공동체의식을 읽을 수 있는 미닝아웃이다. ‘혼쭐내기’를 비튼 말 ‘돈쭐내기’는 선행을 베푼 가게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가게
매출을 올려주는 그들 세대의 ‘역발상 미닝아웃’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발생한 울진과 삼척 지역 산불의 자원봉사자와 이재민에게 무료 식사와 숙박을 지원한 자영업자들의 미담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이들의 가게를 찾아 ‘돈쭐’ 을 내준 일화가 대표적이다.
롯데멤버스 리서치 플랫폼 라임(Lime)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닝아웃’ 관련 제품은 2019년 1분기와 비교해 2.7배가량 증가했다. MZ세대가 가치소비 분위기를 이끌었고 코로나19 팬데믹의 위기를 거치면서 이 같은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라임이 지난 5월 전국 20~60대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조사 ‘가치소비 활동 방식’에서 MZ세대는 ‘리사이클링(재활용)’이나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배출량 최소화)’ 등 환경에 주로 몰린 40~50대의 답변과 달리 ‘기부 상품 구매’(60.0%), ‘비건·동물보호’(54.0%), ‘돈쭐내기’(41.2%)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적극적인 관심을 내보였다.
‘미닝아웃’ 소비를 마케팅에 이용하는 기업들
이를 알아챈 기업들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인다. 가장 먼저 나선 곳은 MZ세대가 가장 많이 찾는 편의점. GS25는 미닝아웃 소비를 겨냥한 친환경 파우치 음료를 출시하고, CU는 업계 최초로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와인을 선보였다.
CU 관계자는 “편의점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세대가 MZ세대인데, 이들이 매출 구성에서 60%에 육박한다”라며 “MZ세대는 소비시장의 주축이면서 영향력도 높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 출시도 확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CJ온스타일은 친환경 포장재 도입 등 ESG 경영에서 앞서나가는 기업 중 하나다. 2017년 업계 최초로 비닐 에어캡 대신 종이 완충재, 친환경 보랭 패키지 등을 도입하고, 2019년엔 100% 종이로 된 ‘에코 테이프리스 박스’를 유통업계에 처음 선보였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저감한 비닐 및 플라스틱 사용량은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면적의 약 113배에 해당하는 104만㎡, 무게로는 61.5t에 달한다.
커피 전문점 폴 바셋이 프로모션으로 선보인 ‘허스키 컵 텀블러’는 커피 공정 중 버려진 생두 껍질인 허스크(husk)로 만들었다. 매년 170만t 이상 버려지는 허스크는 열에 강한 데다 BPA(비스페놀A)가 검출되지 않는다.
CJ제일제당이 ESG경영의 일환으로 내놓은 식물성 음료 ‘얼티브 플랜트유’는 식품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나온 것으로, 현재 MZ세대 직원 6명이 관련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얼티브 플랜트유는 우유를 대채해 마실 수 있는 식물성 고단백·고칼슘 음료로, 식물성 단백질 성분은 일반 우유의 1.5배, 칼슘 성분은 1.7배 높고 유럽 비건 인증인 ‘V라벨’도 획득했다.
사탕수수를 가공해 신발을 만드는 올버즈의 탄소중립 의지나 대나무, 사탕수수 섬유 등으로 이뤄진 친환경 재료를 새롭게 개발하는 소니의 자원 보존 노력은 지속 가능한 미닝아웃의 사회적 책임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호텔도 예외가 아니다. 롯데호텔 월드는 자회사인 그린카와 함께 ‘카 클린 서비스’ 패키지를 선보이는데, 투숙 기간 중 워터리스(waterless) 방식으로 세차한다. 1대당 500ml 미만의 물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구업체 이케아는 업사이클링 환경단체 시퀄(SeaQual)과 함께 스페인 어부들이 바다에서 플라스틱 수거하는 일을 지원했고, 이렇게 모은 폐기물과 플라스틱을 원단 직조에 활용했다. 올해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이케아의 수상은 감각 너머 미닝아웃의 가치가 발현된 결과다.
가치관과 신념을 담은, 다양한 얼굴의 소비
미닝아웃은 전통적 소비자 운동인 불매운동이나 구매운동에 비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진지한 논의보다 놀이나 축제 개념으로 활용된다. 미닝아웃의 흔한 실현 도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데, 해시태그 기능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공유하고 사회적 관심을 끌어낸다. 사건 사고 규탄 및 희생자 추모, 환경보호 지지나 투표 독려 등 사회적 환기가 필요한 모든 주제가 대상이다.
또 하나의 수단은 패션이다. 옷이나 모자, 가방 등에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담는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같은 문구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꽃무늬를 넣은 패션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이에겐 진지한 사회운동의 방식으로 여겨질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겐 가벼운 놀이로 수용될 수 있는 다양한 얼굴의 미닝아웃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가치와 고찰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신념의 소비로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