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라희 / 사진 이용기
글 정라희 / 사진 이용기
지금은 국경이 무색한 시대다. 한국 역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비율이 2020년 기준 3.3%를 넘어섰다. 통계청은 이 비율이 2040년 4.3%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증가한 만큼 우리 사회가 국제화된 것일까? 관광객이 주로 오가는 번화가가 아닌 일상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출신 국가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외국인을 낯설게 보는 시선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인구학적 관점에서 한 사회에 외국인 출신의 이주민 비율이 5% 이상이 되면 다문화사회라고 이야기 합니다. 인구 변화 추이를 봐도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출생률이 급감했다고 말하지만, 다문화가정의 출생률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중도입국자녀*들의 비율도 늘고 있고요.”
이인재 교수의 말이다. 1996년 초임 교수로 광주교대에 재직하다 서울교대로 자리를 옮긴 때는 2005년. 그로부터 2년 후인 2007년 서울교대에 다문화 교육 전공이 개설되면서 반편견 교육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윤리학을 접하게 된 그는 인간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막스 셸러(M. Scheler)의 가치윤리학을 도덕 교육에 적용하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인격 교육’이다. 그 연장선에서 연구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연구 윤리를 집중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 정책을 입안하거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에도 함께했다. 반편견 교육을 포함한 다문화 교육 역시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다.
*중도입국자녀 : 결혼이민자가 한국인 배우자와 재혼하여 본국에서 데려온 자녀 또는 국제결혼가정의 자녀 중 외국인 부모의 본국에서 성장하다 청소년기에 재입국한 자녀를 가리킨다
이인재 교수는 “다양성 교육은 굉장히 복잡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다양성 교육 안에도 다문화 교육을 비롯해 국제이해 교육, 세계시민 교육 등 세분된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지구공동체는 예전과 달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고, 단시간에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민족, 다양한 인종과 교류하는 사회가 된 겁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욱 존중하고 인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길러주는 것이 다양성 교육이라고 할 수 있지요.”
2000년대 이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단일 문화적 배경, 인종적 동일성 속에서 우리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차이’를 ‘차별’의 구실로 삼았다. 세월이 흐르고 차별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고, 미디어나 SNS를 통해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회구성원의 활동을 접할 기회도 늘었다. 하지만 유명인이 아닌 일상의 영역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다문화 구성원이 적지 않다.
반편견 교육은 다문화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국어사전에서는 편견을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실제 경험 전에 근거 없이 갖는 호의 또는 비호의의 느낌’ 혹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 설명한다. 반편견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존엄하다’는 점을 바탕으로 문화, 인종, 민족성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편견과 차별에 이의를 제기하는 능동적 접근을 말한다. 이인재 교수는 “다문화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반편견 교육”이라고 전한다.
“반편견 교육에 대한 개념은 대표적인 다문화사회인 미국에서 1980년대 후반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단일민족 정체성이 강했던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죠.”
국내에서 반편견 교육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영역은 유아교육이다. 만 2세에서 3세가 되면 아이들은 사물의 서로 다름을 인식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갖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태도로 이어져 차별적 행동을 할 때도 있다. 반편견의 대상은 다문화 구성원만이 아니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 사회적 소수자는 물론 한부모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것도 반편견 교육을 통해 할 수 있다.
일부 학교 현장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타 문화 이해 교육이나 반편견 교육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당장 숫자로 드러나는 교과 성적과 달리 장기적으로 사회의 건강성을 높이는 다양성 교육에 우선순위를 두기 어려운 까닭이다.
“사실상 현재 우리나라에 다양성 교육이나 반편견 교육에 관한 프로그램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를 내실화하는 과정이 더디게 흘러가는 측면이 있어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10개의 범교과 학습 주제 중의 하나가 된 다문화교육은 각 교과와 창체 활동을 통해 통합적으로 가르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반편견 교육과 세계시민 교육이 포함되어 있지요.”
이인재 교수는 “교과 지도와 생활 지도를 담당하는 교사들이 반편견 교육만을 주제로 별도의 수업을 진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라고 이해하면서도, 대신 “다양한 교과의 주제와 연결해 편견을 해소하고 차별적 행동을 줄이는 수업을 설계할 수 있다”라고 전한다.
강자들이 득세하는 듯 보이는 세상에서 가끔은 존중과 배려, 공감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인재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균형 잡힌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더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교사를 양성하는 사람으로서 변함없이 강조하는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교사들이 먼저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실천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 물론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 역시 계속해서 그 곁을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