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동현 푸드 칼럼니스트 | 사진 쿠켄 스튜디오
글 정동현 푸드 칼럼니스트 | 사진 쿠켄 스튜디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첫 추석을 맞았다.
생전 할아버지는 다른 집안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울에 살던 우리 식구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부산 영도로 내려갔다. 그 거리만큼이나 친가와는 더욱 멀어졌다. 그래서 명절이 되어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일제강점기에 유도 선수 생활을 했던 할아버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아침마다 냉수로 목욕을 했다. 그렇게 건강하던 할아버지는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다 뺑소니 사고를 당한 후 몇 달 뒤 세상을 떠났다. 그러고 맞은 추석은 예전과 달랐다.
일단 차례를 지내야 했다. 아버지가 홀로 가게에 나가고 어머니는 집에 남아 주방을 지켰다. 어머니는 추석을 맞아 음식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주방에서 만든 음식은 우리가 살던 부산의 명절 음식과 달랐다. 서울이 고향인 어머니는 정석대로 암탉을 찌고 소고기를 저며 산적을 부쳤다. 고기 음식이 한 김 식는 사이에 고사리, 숙주나물, 시금치 같은 나물을 무쳤다. 한쪽 솥에는 잔뜩 썬 무와 기름기가 붙은 소고기, 그리고 토란을 넣어 탕국을 끓였다.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집 명절 상 사정이 우리 집과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산 토박이들은 소금에 절인 상어 고기를 네모반듯하게 썰어 간장, 설탕 등 갖은양념에 절인 뒤 구워 냈다. 맛은 고등어와 비슷했지만 크기 때문인지 육고기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상어인지라 홍어와 같은 암모니아 향취가 옅게 배어 있었다. 탕국도 같은 음식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탕국도 지역별 차이가 있었는데, 부산식 탕국에는 바다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부산식 탕국에는 바다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소고기와 무는 기본이요 조갯살, 홍합, 미역, 다시마, 때로는 어묵까지 넣어 푹 끓인 부산식 탕국을 보면 소고기와 무가 대부분인 서울식 탕국이 단출하게 느껴졌다.
경상북도로 올라가면 사정이 또 달라진다. 같은 경상도라고 하지만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는 같은 문화권으로 묶기 어렵다. 해안을 따라 사람이 모인 경상남도와 달리 경상북도는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오지와 대구 같은 내륙분지 지형으로 이뤄졌다. 특히 안동을 중심으로 한 내륙의 제사 문화는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했다. 경상북도, 특히 안동 제사상에 꼭 올라가는 문어는 상에 오르게 된 연유가 재미있다. 바다가 없는 내륙지방에 굳이 문어가 올라간 까닭은 문어(文魚)의 ‘글월 문(文)’ 자 때문이다. 공부하는 사림에서 ‘文’ 자가 들어간 문어는 가문을 상징하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덕분에 안동국시 등 안동 음식을 파는 음식점에서는 생선전과 함께 문어숙회를 꼭 메뉴에 올린다.
전라도로 발길을 돌리면 경상도보다는 문화 정체성이 일관된다. 소백산맥 등 산으로 길이 막히고 문화가 구분된 경상도와 달리 대부분 평지로 이뤄진 전라도는 남도와 북도의 문화 차이가 크지 않다. 전라도는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했고, 덕분에 명절 음식 역시 산과 바다를 가리지 않았다. 꼬막, 홍어, 낙지 등 바다에서 난 것이 한편을 차지하면 다른 한편에는 육전으로 대표되는 육지 음식이 존재감을 알렸다. 기름기 없는 소고기를 얇게 저며 달걀물을 곱게 입힌 뒤 조심스럽게 구워내는 육전이 명절 음식이란 것은 그 지방이 대대로 얼마나 풍족했는지를 보여준다.
오래전 명절은 각 지역에서 나는 물산을 모아 상 위에 올리는 잔치였다. 고장마다 선 장에서 물건값을 치르고 그것을 조심히 다듬어 조리한 뒤 모두와 나눠 먹는 시간은 아마 1년 내내 기다려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향이 아닌 부산에서 살던 우리 가족에게 명절은 오히려 떠나온 고향이 더욱 그리워지는 때였다. 아버지는 반주를 곁들이며 당시에는 서울에서만 팔던 진로 소주의 맛과 여전히 을지로에서 영업 중인 골뱅이집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는 지금도 어린 시절 억센 부산 사투리 사이로 들리던 아버지의 서울 말투가 떠오른다. 추석날 아침 집 안 가득 퍼지던 고소한 탕국의 향도 기억난다. 이제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이번 추석에는 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을 남은 가족과 나눠 먹을 것 같다.
• 재료 | 부채살 400g, 영양부추 50g, 양파 50g, 찹쌀가루 1/2컵, 달걀 2개, 식초 3큰술, 간장 2큰술, 연겨자 2작은술, 소금·후추 약간씩 |
• 재료 | 자숙문어 300g, 꽈리고추 5개, 생강 1톨, 설탕 1/2큰술, 간장 1큰술, 맛술 1큰술, 후추·통깨 약간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