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교수들이 한마음으로 뭉친 한마음교육봉사단
KAIST 본원에 자리한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최병규 명예교수의 사무실.
명문대 공학 교수 사무실 하면 누구나 생소한 제목의 전공 서적과 논문으로 가득 찬 서재를 연상할 것이다.
KAIST 최초로 CAM 소프트웨어를 미국, 프랑스 등 해외 기업에 이전하고,
저서 『이산사건시스템의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Modeling and Simulation of Discrete Event Systems)』이
세계 유명 대학의 교재로 활용될 만큼 기계 가공 및 제조 시스템 운영의 자동화·정보화·지능화 분야에 우수한 연구 업적을 쌓아온 명예교수 사무실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무실 한쪽 서재에는 한국어 교육, 중등 수학, 고등 수학, 학력평가 기출 문제집 등 참고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중·고등학생 자녀라도 둔 걸까?’ 하는 의문은 사무실 앞 문패를 보면 어렴풋이 해소된다. ‘한마음교육봉사단’. 2015년 최병규 교수 주도로 설립한 사단법인의 이름이다.
“한마음교육봉사단은 2015년 다문화가정 및 소외계층 자녀의 성공적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해 꾸린 자발적 비영리 모임입니다.
봉사단에서는 최고의 교육 전문가들이 다문화가정 눈높이에 맞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온라인 학습관리시스템(LMS)을 구축하며,
전·현직 대학교수와 초· 중·고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권역별 사회적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직을 이끄는 동시에 지자체, 기관 관계자 등을 만나 다문화가정에 관한 관심을 끌어내고, 프로그램 개발과 정착을 위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물론 수업도 직접 합니다.”
전남장성엄마학교 1기생들과 최병규 교수 [사진 출처:대덕넷]
다문화가정 자녀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
2021년 말 기준 대한민국 다문화가정 자녀 초·중·고등학생은 16만 명에 달한다. 매년 2만여 명의 다문화가정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2020년 기준 다문화가정에서 출생하는 신생아 수는 전체 신생아 수의 6%를 차지한다.
우리 주변 아이 15명 중 1명이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다는 뜻이다. 그만큼 다문화가정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문화’란 우리 사회에서 더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지만, ‘낯섦’으로 인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가장 눈여겨볼 것이 교육 격차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심각한 교육 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말이 서툰 엄마, 교육에 무심한 아빠의 품에서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한국어 교육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
“초등교육은 교사, 부모, 아이 세 축이 서로 기대어 상호 소통했을 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다문화가정 부모가 축의 일원이 되지 못합니다.
경제활동, 의사소통의 어려움 같은 이유로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거나 교육이나 생활과 관련해 피드백을 보내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죠.
자연히 학교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학습 격차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격차를 좁히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차별받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초등학생 자녀를 둔 다문화가정 엄마를 교육하는 것으로 보고,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배움이 부족한 자녀를 직접 가르치는 편이 오히려 쉬울 수 있다.
하지만 한마음교육봉사단에서는 초등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대신 부모가 자녀교육의 주체로 바로 서고 교사, 부모, 아이라는 교육의 축에 합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부모가 아이의 스승이 되게 한다. 그것이 장기적 측면에서 훨씬 이득이라는 것까지 계산한 것이다. 최병규 교수는 다문화가정과 관련한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명확히 분석해 할 일을 한다.
덕분에 다문화엄마학교를 거친 부모들은 아이의 학습 태도와 성적을 챙기고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평범한 부모’가 된다.
제1기 다문화엄마학교 졸업식 및 제2기 입학식에 참석한 최병규 교수[사진 출처:대덕넷]
다문화가정을 돕는 일은 대한민국을 일으키는 일
“왜 다문화가정인가?”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우리 국민이기 때문”이다. 최병규 교수는 다른 문화, 다른 국적의 사람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자립을 돕는 것이 나아가 국력과 국격을 높이는 일이라고 믿는다.
“다문화가정 자녀 외에도 분명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도 다문화가정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우리나라의 인구절벽을 지탱하고, 사회인으로서 대한민국을 견인할 것입니다. 따라서 다문화가정 자녀를 바르게 키우는 일은 국력을 튼튼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더불어 많은 연구 인력이 이민을 고민할 때 ‘자녀 교육 환경’을 꼼꼼히 따집니다. 다문화가정을 포용하는 것은 우수한 국외 학생, 연구 인력을 대한민국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 다문화가정 부모의 경제활동을 돕기 위해서라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은 꼭 필요하다. 의사소통 부재는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킨다.
같은 나라, 같은 지역 사람끼리도 사소한 오해로 다투곤 한다. 다문화가정 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건설업, 생산업, 자영업 등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면서 의사소통 문제, 문화 차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이들을 교육하는 일은 결국 사회문제를 해소하고, 대한민국의 산업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밤낮없이 힘을 쏟고 있지만,
16만 명의 다문화가정 자녀와 부모를 모두 품기 위해서는 아직 손이 부족하다.
최병규 교수는 더 많은 사람, 특히 교수와 교사, 학생 등 교육이라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이들이 교육 주체이자 후원자로 나서주기를 바란다.
교육에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후원을 통해 얼마든지 한마음교육봉사단의 활동을 지지할 수 있다.
다문화가정과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미래
“일론 머스크, 카탈린 카리코, 비탈릭 부테린.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많은 이유로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저도 우연한 기회에 다문화가정 문제를 접한 후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비를 털어 단체를 꾸리고, 교육 프로그램과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죠. 모든 국민이 똑같은 국민으로서 조화를 이뤄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다문화가정에서도 세계적 인물이 나오길 바랍니다.”
‘다문화가정’이란 말은 통계와 조사를 위해 세운 기준일 뿐이다. 우리가 ‘서울가정’, ‘경기도가정’ 아이를 나눠 부르지 않듯 다문화가정 아이도 대한민국의 아이다. 우리의 아이다.
16만 명의 우리 아이가, 그리고 그들의 부모가 모두 따스한 대한민국의 품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라며 최병규 교수는 오늘도 출석부를 손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