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모작」은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 후 제2의 삶을 알차게 설계하고,
행복을 찾는 퇴직 회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광활한 김제 평야가 우리의 두 번째 교실입니다
김영식&권효순 회원 부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위대한 것이 교육이라고 여겼다. 훌륭하게 성장해 때마다 찾아오는 제자들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다.
퇴직 후 농촌으로 와보니 그 감동이 살아난다.
내 손을 거쳐 싹 틔우고 열매가 맺게 하면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오는 작물을 바라보며, 농사 또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아름답고 위대한 일임을 깨닫는다. 교사와 농부. 밟고 선 자리만 다를 뿐 똑같은 이름이라는 것을 김영식·권효순 회원은 고향에서 배웠다.
글 이성미 / 사진 김수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땅에서 살아있는 배움을 찾는 농사꾼 부부
“아이고, 토마토 끝이 갈라지네. 칼슘이 부족한 모양이야.” 한여름 열기에 하루 사이 몸집이 부푼 토마토를 살펴보곤 김영식 회원이 단박에 처방을 내린다.
부인 권효순 회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농작물 상태를 파악하고 바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수십 년 흙을 만지며 살아온 베테랑의 솜씨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부부는 올해로 귀농 7년 차, 창제리의 막내 농사꾼이다.
“저는 1968년 3월부터 41년 6개월간, 아내는 1971년 3월부터 28년 6개월간 교직에 몸담았어요. 저는 20대 초반 월남전에도 참전했고요. 그래서 집 앞에 ‘국가유공자의 집’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
퇴임 후에는 산행하고, 여행 다니고, 복지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배우며 부지런히 움직였어요. 그렇게 젊은 시절을 누구보다 열심히 산 덕분일까요? ‘노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2016년,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에 뛰어들었습니다. 아버님 농사를 가끔 거들었을 뿐 영농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심고 기르고 가꾸는 것을 좋아하던 터라 고향에 내려오는 데 주저함이 전혀 없었죠.”
무모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라는 믿음이었다. 그는 곧장 김제시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협의회를 찾아 귀농에 필요한 기본 교육을 받았다.
농가를 방문해 어떤 작물을 재배할지 결정하고, 구체적인 영농 계획도 세웠다. 귀농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농사에 대한 자신감이 움텄다.
푸른 김제 평야에 산들바람 지나듯 농촌 생활에 적응할 때쯤 예상외의 난관을 만났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수확한 농작물을 판매·관리하기 위해서는 현지 농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타지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 70대가 되어 그제야 농사를 짓겠다고 하는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김영식 회원은 스스로 멘토를 찾아 나섰다. 평생 공직에 있다 귀농한 선배 농부를 찾아 음식을 대접하며 배움을 청했다.
그때 배운 지식을 땅에 옮기며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기꺼이 감내했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때마다 관련 서적을 찾아가며 농사와 관련한 지식을 계속 쌓아 나갔다.
다른 사람들의 기술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혼자 부딪히며 얻는 것이 훨씬 많았다. 부부의 손길이 반복해 닿을수록 논과 밭은 때때마다 그에 맞는 색을 찾아갔다.
벼를 베고 감자를 심다 찾게 된 교사의 초심
김영식·권효순 회원 부부는 현재 감자 농사에 주력하고 있다. 그들이 정착한 전북 김제시 광활면은 비옥한 간척지 토양에서 자란 고품질 감자가 출하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김영식·권효순 회원 부부가 수확하는 감자는 팬이 생길 만큼 인기가 높다.
“키우는 사람이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 작물은 다 압니다. 우리는 좋은 씨감자를 얻기 위해 강원도 평창에 직접 다녀오기도 해요. 퇴비도 친환경 농업을 공부해 직접 발효시켜 사용하고요.
출하된 감자도 직접 서울 가락시장으로 가져가 경매에 부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우리 손으로 하는 것이죠. 덕분에 여느 집보다 품질 좋은 감자가 나오는 것 같아요.
가락시장에서 경매에 올리면 최고가를 받을 정도죠. 한 번 드신 분은 꼭 다시 찾으시고요.
해마다 감자 수확 철이 가까워져 오면 ‘감자 언제 나오느냐?’, ‘나오면 꼭 알려달라’ 하는 연락을 받느라 바쁩니다.”
여느 농사꾼이 그러하듯 김영식·권효순 부부는 아침 해보다 먼저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농번기가 지난 7월도 마찬가지였다.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부족한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서로의 손이 필요해질 때를 대비해 부부는 새로운 공부에 도전했다.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으러 가면, 교실에서 우리 부부가 제일 나이가 많아요. 하지만 우리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격을 얻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 건강한 노후 생활을 즐기기 위해, 또 ‘내가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해 우리는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걱정하는 것은 서로의 건강만이 아니다. 자신들처럼 귀농 후 막막한 현실에 부딪힐 후배 귀농인을 위해 부부는 멘토 역할을 자처한다.
김영식 회원은 귀농귀촌협의회 회원이자 광활지역장으로서 광활면을 찾은 귀농인을 위한 멘토로도 활동하고 있다.
2020년에는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귀농귀촌청년창업박람회에 김제시 대표로 참가해 청년들에게 귀농·귀촌에 관해 홍보했다.
땅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공유하기도 한다. 아는 것을 나누는 것은 오랜 교직 생활에서 얻은 버릇이다.
권효순 회원은 농사를 지으며 교사로 살면서 품어온 마음을 거듭 되살려본다.
“교사로 일하는 동안 항상 정성이라는 단어의 ‘성(誠)’ 자를 마음에 품었어요. 교사의 정성이 아이들을 변화시킨다고 믿었거든요.
농사도 마찬가지예요. 농부로서 내가 돌보는 것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작물은 농부가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 금방 알아채는 것 같아요.
또 하나, 먼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교육과 농사가 서로 닮았어요.
더불어 살아간다는 점도요. 생각할수록 저는 다시 교사로서 새 인생을 살고 있네요.”
귀농이 가져다준 보람과 행복
성공적인 농촌 정착을 위해 김영식 회원은 ‘철저한 준비’를 강조한다. 노후에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떤 지역에서 얼마큼의 규모로 어떤 작물을 키울지 정도는 미리 계획하라는 것이다.
‘영농(營農)’은 한자 그대로 단순노동이 아닌 농업 경영을 일컫는다. 덧붙여 김영식 회원은 “치밀하게 계획하되 머릿속으로만 상상하지 말고 한달살이,
일년살이부터 시작해 보라”라며 단기 농촌살이를 통한 예습을 추천한다.
귀농했다면, 마을의 일꾼이 되는 것을 자처하는 것도 좋다. 요즘 농촌에서 60대는 ‘젊은이’에 속한다. 마을 대소사를 챙기며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준다면, 새로운 보람을 찾고 마을 사람들과 서로 잘 융화할 수도 있다.
“마을 주변이 논으로 둘러싸여 밤이면 무척 캄캄해요. 그래서 보안등이 많고요. 그런데 예전에는 보안등이 몇 달째 들어오지 않아도, 마을 주민이 대부분 고령이시다 보니 행정복지센터에 고쳐 달라고 민원을 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대요.
그런데 제가 오고 나서는 크고 작은 마을 일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며 좋아하세요. 덕분에 마을 어르신들에게 신망을 얻을 수 있었어요.”
나이가 들어 교문을 나섰는데, 고향에 돌아오니 막내가 되었다. 덕분에 김영식·권효순 부부는 나이를 잊고 살 수 있다. 자신이 얼마나 건강한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지를 쉽게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그래서 권효순 회원은 농촌살이가 ‘무조건’ 좋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 있다가 농촌에 내려오니 처음에는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적응이 되고 좋은 것만 보이더군요. 지금은 아파트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요. 좋은 땅 위에서 작물이 건강하게 자라고, 우리 부부도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농촌 생활이 어떠냐?’ 묻는다면 저는 ‘무조건 좋다’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교사로 사는 동안 ‘교육천하지대본(敎育天下之大本)’이라 여겼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하고 위대한 일이 교육이라 믿었다. 그 자부심으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길렀다.
인생 2막 첫 장에 부부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새로 썼다.
이제 부부에게는 농심(農心)이 자부심이다. 그 자부심이 이제는 드넓은 김제 평야의 곡식을 바르게 자라게 할 것이다.
인생 이모작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재능을 기부하며 역동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의미 있는 인생 이모작을 실현하고 있는 회원님을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The-K 매거진」 지면에 담아 많은 회원님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전해드리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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