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좋은 생각」은 급격히 변화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제시하는
멘토 회원들에게 귀 기울이고 교육 철학과 인생의 가치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코너입니다.
노화 폭탄 없이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법 절제하고 공존하는 삶이 주는 행복을 만들어가세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나흥식 명예교수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했더니 /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고려 후기 우탁이 지은 ‘탄로가(嘆老歌)’다.
700여 년 전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 인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화를 막고 싶어 한다. 막대와 가시도 소용없다면, 노화는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새해를 앞두고 더 젊고 건강한 삶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해 뇌 의학자이자 생리학자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나흥식 명예교수에게 물었다.
글
이성미 /
사진
김수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늙는다
양(量)과 질(質). 살면서 우리는 이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인생도 양과 질, 즉 오래 사는 것과 건강하게 사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떨까? 쉽게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건강 없는 100세 시대는 재앙이며, 건강과 수명을 맞바꾸라 해도 영 아까운 마음이 든다. 생명 연장을 위한 노력으로 기대수명 100세를 바라보게 된 지금, 이제 우리는 오랜 젊음까지 손에 쥐려 한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나흥식 명예교수도 “젊음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이치, 생리학(生理學)을 연구한 그에게서 답을 구하려는 것이다.
오래도록 젊게 사는 법을 알기 위해선 노화가 일어나는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노화를 일으키는 요인은 많지만, 그중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텔로미어(Telomere)다. 우리 몸에는 100조 개가 넘는 세포가 존재하고, 이것은 인체의 각 기관을 구성한다.
세포에 따라 다르지만, 수명은 보통 한 달 정도다. 피부의 표피세포를 예로 들어보자. 표피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기저세포가 분화해 맨 위에 있는 각질세포로 변하는 데에는 28일 정도가 걸린다.
그 이후에는 피부에서 떨어져 나간다. 분열하든 커지든 세포는 끊임없이 변하고, 1년도 되기 전에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모든 성분은 새 것으로 교체된다.
나흥식 교수가 “1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영원히 새로워질 수 없다. 세포 내 염색체 양 끝에 존재하는 텔로미어 때문이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의 길이는 짧아지고, 다 마모되면 세포는 분열을 완전히 멈춘다. 그러고는 죽음이 찾아온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강연 모습 [출처:고려대학교 공식 유튜브]
세바시 강연 모습 [출처:세바시 공식 유튜브]
또 하나의 원인은 산소다. 우리는 산소 없이는 단 몇 분도 살 수 없다. 산소는 우리 몸속에 들어와 대사가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그리고 역할이 끝나면 찌꺼기인 활성산소를 남긴다.
그런데 이 활성산소는 체내의 정상 세포를 공격해 노화나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우리는 산소가 없으면 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산소 찌꺼기 때문에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결국 살아 있다면, 우리는 늙는다.
“노화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시지요. 차를 처음 사면 어떤가요? 반짝반짝하고, 도로에서도 쌩쌩 잘 달립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요? 예전 같지 않죠. 수리하고, 부품도 교체해야 합니다. 그냥 놔둬도 녹이 슬 테고요. 결국 못 쓰게 되어버립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의 노후를 막을 수 없듯, 사람도 살아 있다면 노화는 막을 수 없습니다.”
더 움직이고, 더 눈을 맞추고, 더 많이 웃으세요
잘 관리하면 차의 수명이 연장되듯, 우리도 노력을 통해 노화를 늦출 수는 있다. 제일 정확한 방법은 노화의 주범인 체내 활성산소를 없애는 것이다. 활성산소의 가장 좋은 동료는 ‘스트레스’, 가장 큰 적은 ‘행복’이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줄이고,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세로토닌·도파민·옥시토신이 잘 분비되도록 도와야 한다. 특히 건강한 자극인 운동이 필요하다.
“과학의 발달로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습니다. 청소는 로봇이 해주고, 말 한마디로 각종 시스템을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편리함에 가까워질수록 건강은 멀어지죠. 편리함만 좇지 말고 많이 움직이세요. 마라톤을 생각해 보세요.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힘든 것은 잊고 마치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듭니다. 엔도르핀 때문이에요. 매일 꾸준히 운동하면 몸뿐 아니라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오감(五感), 즉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을 충족해줘도 좋다. 원숭이는 털을 골라주며 서로에게 엔도르핀을 선물한다. 반면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털 대신 위생을 선택하면서 피부 접촉으로 얻을 수 있는 엔도르핀의 양이 줄었다. 심지어 지금은 코로나19로 거리 두기가 예의가 되었다. 따라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신체 접촉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 웃음도 엔도르핀을 보충하는 데 효과적이다.
“눈은 소통의 창구입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눈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알아채고 또 소통해 왔습니다. 신기한 것은 인간만이 정면에서 눈의 흰자위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죠. 스마트폰에 빠져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있는 지금의 사람들을 보면, 호모사피엔스 이전으로 역행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고개를 들어 상대와 눈을 마주치세요. 타인과 눈을 맞출 때 우리 몸에서는 옥시토신이 생성되고, 그토록 바라던 젊음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결국 노화를 막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많이 움직이세요. 서로 마주 보세요. 체온을 나누세요. 웃으세요.”
절제하고 공존하는 삶이 주는 충만한 행복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소식(小食)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너무 많은 것은 무엇이든 우리 몸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운동은 좋지만 과하면 관절에 무리를 주고, 음식은 우리에게 영양분을 공급하지만 과하면 비만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양’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건강과 행복의 ‘질’이 채워진다. 나흥식 교수가 바라는 것도 인간의 이기심으로 채운 100세 시대가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시대다. “우리 주먹만 한 크기인 쥐의 수명은 길어야 3년입니다. 개는 오래 살면 열다섯 살이고요. 얼룩말은 25년, 코끼리는 60년을 삽니다. 무슨 차이인지 눈치채셨나요? 포유류는 덩치가 클수록 수명이 길어집니다. 인간은 어떻습니까? 인간은 얼룩말 정도 크기로 스무 살가량 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1900년 무렵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은 25세 정도였고요. 하지만 그로부터 120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요? 120세를 이야기합니다. 지구라는 같은 공간에서 한정된 자원을 나눠 쓰는데, 인간만 오래 사는 것은
동물 입장에서는 반칙입니다. 게다가 인간의 수명은 점점 늘어 60~80년 후면 지구상 인구가 100억 명을 넘을 거라고 합니다. 환경오염, 먹거리 부족 등 각종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수명만 늘리면 과연 지구가 버틸 수 있을까요? 미래가 불투명한데 자국의 출산율과 자기 건강만 걱정해서 무엇 하나요? 이제는 사람의 건강뿐 아니라 지구의 건강을 생각할 때입니다.”
우리는 ‘노화’에 앞서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나흥식 교수는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라’라는 공식을 일상에 대입하고 있다. 정년퇴직했지만, 그는 현직에 있을 때와 같은 루틴으로 움직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행하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꾸준히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며 내 몸이 ‘퇴직’이라는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과 소통하는 일도 계속한다. 나흥식 교수는 요즘 초·중·고등학교 등을 찾아 재능 기부 강연을 한다. 그리고 학생들과 눈을 맞추고, 눈높이에 맞게 정보를 전달하고, 바른 인재로 자랄 수 있도록 길을 잡아준다.
오래전부터 나흥식 교수는 ‘강의왕’으로 통했다.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고려대학교 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을 무려 열아홉 번이나 받았고, 교육부가 주관하는 일반인 대상 온라인 공개강좌 케이무크(K-MOOC, Korean Massive Open Online Course)에서도 최고 평가를 받았다. 나흥식 교수가 지난 8월 발행한 책 『내 몸이 궁금해서 내 맘이 궁금해서』에서는 좋은 발표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청중과 눈으로 교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달할 내용은 적게 할수록 좋습니다, 전달할 내용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강의에 대한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강의를 이야기하듯 흥미롭게 진행하면 좋습니다, 자기의 강의를 스스로 평가해 보아야 합니다,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면 좋습니다’. 이것을 정리하면 나흥식 교수가 강의왕, 소통왕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관심’과 ‘배려’임을 알 수 있다.
“강의 전 ‘내가 학생이라면 무엇을 원할까?’ 생각합니다. 제가 찾은 정답 중 하나는 ‘스토리텔링’입니다. 우리 뇌는 결코 쉽게 정보를 받아들여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 앞에서는 저절로 문을 열죠.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오래 들어도 지루하지 않고 기억에도 남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그렇게 학생을 배려하고 또 관심을둔 덕에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도, 노화를 늦추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도 결국은 ‘배려’일지 모른다. 자기 몸을 배려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환경을 배려하는 것 말이다. 기후변화로 신종 전염병이 생겨나고, 지구촌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지금,우리가 할 일은 더욱더 명확하다. 우리는 ‘노화’에 앞서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