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쓰레기 주우며 시작하는 주말 아침
‘냉소’에서 ‘미소’로. 이종호 교사가 이끌어낸 변화를 짧게 요약하면 그 정도가 될 것 같다. “나 하나 쓰레기를 줍는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라고 묻는 사람은 이제 그의 곁에 없다.
대신 “바다가 깨끗해지니 참 좋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그를 수시로 돕고 있다. 날이 좋아서, 만남이 즐거워서, 바다가 깨끗해져서….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양손 가득 주우면서도, 별것 아닌 일에 모두 진심으로 즐거워한다. 매주 토요일 아침 8시,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웃음을 만날 수 있다.
“프로젝트 이름이 ‘엄마, 아빠의 선물’이에요. 통영에서 나고 자란 저는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아 바다가 이렇게 망가져 버렸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깨끗하고 아름다운 통영을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것, 그게 우리의 소망입니다.”
2015년 12월에 시작해 오늘(11월 12일)이 벌써 239회째다. 그가 가르치는 학교의 학생들과 학부모, 통영의 자원봉사 단체인 ‘아름다운 사람들’ 회원들이 매주 그와 함께한다. 그들이 쓰레기를 줍는 곳은 통영에 있는 네 곳의 해안가다. 도남동, 무전동, 미수동, 죽림동. 한 주씩 번갈아 찾아가 딱 한 시간 동안 약 200m 거리의 해안을 청소한다. 다 줍고 나면 그날 주운 것을 바닥에 펼쳐놓고 하나씩 종류별로 분류한다. 어떤 쓰레기를 얼마나 주웠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해양쓰레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한두 개만 버려도 그것이 물속에서 잘게 부서져요.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해 바다를, 지구를, 인간을 망칩니다. 저도 좀 더 자고 싶거나 집에 그냥 있고 싶은 날이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 이 일을 하고 있어야 그 모습을 보고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 생각해요. 우리의 활동이 ‘버스’라면, 깨끗한 바다가 ‘목적지’예요. 더 많은 사람과 그 목적지로 함께 가기 위해, 그 자리를 늘 지키는 ‘정류장’이 돼주고 싶어요.”
통영 앞바다에서 해양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 중인 이종호 교사와 지역 주민들
직접 체험하고 보람으로 실천하는 환경 수업
그가 해양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건 2010년 「지구를 살리는 행동! 해양쓰레기 줄이기!」라는 제목의 창의적 체험학습 교재 개발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후 총 7권의 환경교육 교재 필진으로 함께하면서, 그의 행보도 아이들에게 환경문제 해결과 환경 실천 의식을 심어주는 쪽으로 자연스레 흘러왔다.
그는 ‘감동’과 ‘감화’를 뼈대로 환경 수업을 진행한다. ‘의무’ 나 ‘책무’ 이전에 쓰레기를 왜 버리지 말아야 하는지, 버려진 쓰레기를 왜 주워야 하는지, ‘가슴’으로 느끼고 ‘보람’으로 행하게 하는 것이다. 감동을 동력으로 삼기 위해 그는 수업 시간에 ‘조작적 체험 활동’을 많이 한다. 가령 물환경 교육이라면 서로 줄을 당기게 해 누군가가 많이 끌어가면 누군가는 못 가져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식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한정된 자원을 서로 나눠 써야 한다는 것을, 여러 체험을 통해 스스로 이해하게 한다.
“버려진 어구가 바닷속에 방치된 채 어획을 계속하는 걸 ‘유령어업’이라고 해요. 통발이나 낚싯줄을 바다에 버리면 그 안에 물고기가 갇히거나 걸려서 죽어버리거든요. 유령어업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밴드를 채워 체험하게 해요.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채 제시간에 탈출하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 거라고 설명해 주죠. 학생들이 직접 바다생물이 되어보도록 하는 겁니다. 그 잠깐의 체험만으로도 아이들은 공포감과 두려움을 제대로 느껴요.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이죠.”
그런 식의 수업을 해나갈 때마다 그때 느낀 감정이나 그때 깨달은 지혜들을 ‘사례’로 발표하게 한다. 글쓰기, 네 컷 만화 그리기, 미술 작품 만들기, 통계 그래프로 표현하기…. 아이들의 창의력이 그의 환경 수업 안에서 번번이 쑥쑥 자라난다. ‘앎’을 ‘삶’으로, ‘배움’을 ‘행동’으로, 그 과정을 참된 교육이라 믿는 그는 해양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학생과 ‘Keep Tong-yeong Beautiful(깨끗하고 아름다운 통영 만들기)’이라는 학생 동아리를 만들어 꾸준히 함께 활동해 왔다. 쓰레기를 줍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서는 미국의 환경단체 ‘Keep America Beautiful’을 본떠 학교에서 지역으로 확산하는 환경운동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름은 그가 옮겨가는 학교마다 그 학교명을 붙여 새로 만들어진다.산양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지금은 ‘Keep San-yang Beautiful’이다. 지역을 아름답게 만드는 길을 그는 오늘도 학생들과 신나게 걸어간다.
교실에서, 학교에서 마을에서 함께하는 환경지킴이들
“산양초등학교에 오기 전까지 진남초교, 통영충무초교, 산양초교 풍화분교장, 산양초교 곤리분교장에서 이 활동을 계속해 왔어요. 2018년부터 2년간 몸담았던 곤리분교장에선 전교생이 단 둘뿐이었는데, 두 아이와 재미있고 따뜻한 실천을 많이 했습니다. 곤리도에 처음 들어갔을 때 쓰레기가 너무 많아 마음이 아팠거든요. 이럴 때일수록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자 싶어, 두 아이에게 해양쓰레기가 해양생물과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줬어요. 직접 바다로 나가 틈틈이 쓰레기도 주웠고요.”
그 모습을 본 마을 주민들이 “아이들도 하니 우리도 하겠다며 참여해 줬다. 학교가 지역사회 환경교육의 거점이 돼줄 수 있음을 톡톡히 경험했다. 당시 4학년이던 창우는 해양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하는 이종호 교사의 가장 믿음직한 친구였고, 당시 1학년이던 지우는 낚시꾼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하는 최고의 홍보대사였다. 함께 공부하고 같이 실천하면서 서로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 변하는 세상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마을에 현수막을 붙이기도 했어요. 풍화분교장에 있을 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화리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세요’라는 문구로, 곤리분교장에선 ‘학생, 학부모, 마을 주민이 함께 쓰레기 줍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곤리도 만들기’라는 문장으로 현수막을 제작했죠. 지금 우리가 바다를 깨끗이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간다는 걸 열심히 알렸어요. 주민들의 인식이 바뀌는 걸지켜보면서 조금씩 희망을 품게 됐죠.”
동료 교사들을 참여시키는 데도 앞장서 왔다. 2014년부터 그는 환경교육교사연구회 ‘Keep Gyeong-nam Beautiful’ 을 조직해 해양쓰레기와 관련된 교사 연수 및 교수 학습 자료 개발을 주도해 왔다. 2018년부터는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경남 교사 모임’에 참여하며 경남은 물론 전국 단위의 환경교육 사업과 학교 환경교육에 기여하고 있고, 2019년 부터는 경상남도교육청 생태환경교육 실천 교사로 활동하며 실천가와 교육자로서 치열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교사가 된 지 올해로 만 20년이 됐어요. 초창기나 지금이나 제 교육 철학은 아이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길러내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은 돈이나 명예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에요. 타인과 지구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쓸 줄 아는, 마음 따뜻한 사람 말이에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는 ‘사소함’의 힘을 믿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이 조금씩 천천히 변화되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그가 손을 내밀어 온다. 겨우 그 손을 바라봤을 뿐인데, 훌륭한 사람이 된 듯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