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인희 역사 칼럼니스트
대학교 졸업 후 줄곧 출판계에서 일하다가 월간 「샘터」 편집장을 끝으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다수의 책을 저술했고, 현재 역사 칼럼니스트, 인문 여행 작가로서 집필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사진 및 자료 제공: 한영수문화재단
*사진 및 자료 제공: 한영수문화재단
글 황인희 역사 칼럼니스트
대학교 졸업 후 줄곧 출판계에서 일하다가 월간 「샘터」 편집장을 끝으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다수의 책을 저술했고, 현재 역사 칼럼니스트, 인문 여행 작가로서 집필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사진 및 자료 제공: 한영수문화재단
*사진 및 자료 제공: 한영수문화재단
“······한영수가 남긴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들 속에는 다양한 장소에 있는, 다양한 나이와 다양한 직업의
여성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여성들은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고 심지어
세련되기까지 하다. 나는 이런 사진들을 처음 본 순간부터 항상 궁금증을 가져왔다. 이 여인들은
누구인가? 한영수가 그의 카메라를 통해 선택한 이 순간들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리고 당시의
여성들을 왜 이런 모습으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는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머리말 중
ⓒ 한영수_서울 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한영수가 남긴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들 속에는 다양한 장소에 있는, 다양한 나이와 다양한 직업의
여성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여성들은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고 심지어
세련되기까지 하다. 나는 이런 사진들을 처음 본 순간부터 항상 궁금증을 가져왔다. 이 여인들은
누구인가? 한영수가 그의 카메라를 통해 선택한 이 순간들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리고 당시의
여성들을 왜 이런 모습으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는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머리말 중
ⓒ 한영수_서울 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사진집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When the Spring Wind Blows』에 수록된 머리글에서, 한영수문화재단
한선정 대표는 아버지 한영수 작가의 작품 세계와 그 가치를 명확히 보여 줍니다. 특히 여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기획된 사진집은, 한영수 작가의 사진이 지닌 특별한 힘을 드러냅니다.
6·25전쟁 직후,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서울 거리에서 한영수 작가는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울은 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남편을 잃은 여인, 부모를 잃은 아이, 부상을 입은 상이군인, 전
재산을 잃은 피란민이 거리에 넘쳐나는 고단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거리 위에서 한영수 작가는 고통
속에서도 다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고자 했습니다. 그의 피사체는 특별한 인물이 아닌
골목에서 뛰노는 아이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일하는 여성들과 현장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의 사진에는 연출도, 장식도 없습니다. 오직 현실 그대로의 삶이 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생생한 한국
사회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연약하고 불쌍한 이미지로 기억되던 당시 여성들의 이미지와 달리,
한영수 작가의 렌즈에 잡힌 그들은 당당하고 세련되며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한영수 작가는 단순히 인물의
외형을 찍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사연, 내면의 힘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존재’를 기록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한영수_한강 서울 1958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한영수_서울 명동 1958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한영수_한강 서울 1958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한영수_서울 명동 1958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1933년 개성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한영수 작가는 어린 시절 미술 선생님에게서 화가로 키우라는 권유를 받을
만큼 그림에 소질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업인 전자제품 무역업을 물려받게 됩니다. 군복무 시절 6·25전쟁을
겪은 그는 제대 후 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리얼리즘 사진 연구 단체인 ‘신선회’에 가입하며 사진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다큐멘터리 사진이었습니다. 청계천 빈민가에 사는 맨발의
아이들, 퇴락한 서울 골목길, 분주한 종로와 명동 거리, 출근하는 여성 노동자, 철길 위를 걷는 사람들. 모두가 그의
사진 속 주인공이었습니다.
한영수 작가가 사진에 담은 전쟁 이후의 서울은 정지된 프레임 속에도 역동성과 분주함이 살아 있고, 미래로 향한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또한 그의 사진에 담긴 인물들은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가 성장하며 광고 사진에 대한 수요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한영수 작가는 1966년 광고 사진 스튜디오 ‘한영수사진연구소’를 설립하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광고 사진계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며 ‘1세대 광고 사진작가’로 입지를 다졌습니다. 그의 광고 사진은 단순한 상품 촬영을 넘어 인간적인 감성과 이야기를 품고 있었고, 상품 그 자체보다 브랜드의 감정을 강조하는 새로운 스타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또 그는 다양한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해 1985년 사진 라이브러리 ‘포토뱅크’를 설립해 운영했습니다. 그는 사진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을 통해 사진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후대에 남기고자 했던 자신의 철학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사진집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When the Spring Wind Blows』 표지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_한영수 미디어 체험전 시간, 하늘에 그리다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사진집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When the Spring Wind Blows』 표지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_한영수 미디어 체험전 시간, 하늘에 그리다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한영수문화재단 한선정 대표의 말처럼, 한영수 작가의 사진은 여성뿐 아니라 모든 피사체에 동일한 애정과 존중의
시선을 보냅니다. 그는 피사체를 방해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민한 감각으로 조용히 기다리며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아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김수진 학예연구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한영수는 단순히 전후 자유주의의 바람을 맞은
대상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 바람을 타고 전화(戰火)의 그을음을 넘어선 존재들에 매혹되었고, 그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냈다. 그 결과물은 전후 현대사를 살아낸 ‘진짜 피사체’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처럼 한영수 작가의 사진은 시대의 기록을 넘어 삶의 회복과 치유 그리고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따뜻한 시선으로, 피사체에 존엄과 생동감을 부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의 사진을 다시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