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라희 / 사진 김수
글 정라희 / 사진 김수
지구에 사는 생물에게 지구는 온 세상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거대한 우주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한낱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보이저 1호가 찍어
보낸 작은 점과 같은 지구에 애정을 담아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칼 세이건은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이면서도 대중에게 사랑 받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였습니다. ‘창백한 푸른 점’은 우주에서
보이는 지구의 모습을 묘사한 표현이었는데요, 실제로 우주적
관점에서 이 세상을 보면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잖아요.
대중에게 과학적 지식뿐 아니라 인문학적 접근이나 철학적
깨달음까지 전해 주신 거죠.”
칼 세이건처럼 일찍이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과학자이면서도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는 이가 많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과학자의 꿈을 키운 꿈나무도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과학을 쉽고 흥미롭게
전달해 주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엑소’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도 어린 시절에는 과학을 무척 좋아하는 과학 꿈나무였다.
그렇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과학자의 꿈을 키우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과정까지 진학할 만큼 오랜 시간
학업과 연구에 몰두했다. 긴 시간을 쏟아부었기에 그 길이 정답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지만 전공 분야에서는 자신보다
뛰어난 연구자가 너무나 많았다. 성공에 대한 허황한 기대에서
비롯한 경제적 손실, 가족 문제, 우울증이 겹치면서 근본적
의문이 들었다. 세상이 정해 놓은 성공의 기준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찾기로 결심한 후,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찾았다. 생각보다 자신은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많았다.
스스로 돌아보니 자신은 과학에 애착을 지닌 ‘과학 덕후’이면서도
아는 것을 설명하기 좋아하는 ‘설명가’였으며, 사람들의
관심도 즐기는 ‘관종’이었다.
각각의 자질로는 그보다 뛰어난 이가
많았지만, 이 세 가지를 합한다면 자신만의 정체성이 될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세상에는 저보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설명을 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과학을 좋아하면서 설명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저는 과학자로서는 일등도 아니었고, 일등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제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물론 대중과의 소통에서도 손꼽는 분이 여럿 계시죠. 그래도 ‘과학’과 ‘소통’을 합한다면,
적어도 과학적 소통에서만큼은 제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새로운 진로를 시작한 때가
2017년. 그사이 그는 전국을 다니며 학생들과 호흡하는 유명
강사가 되었다. KBS 라디오 ‘조우종의 FM대행진’, 유튜브 채널
‘매불쇼’ 등 여러 미디어의 과학 코너를 진행하면서 일상 속
다양한 과학 지식을 흥미롭게 전달하고 있다. ‘엑소’라는 닉네임은 그가 연구했던 ‘엑소좀(exosome)’ 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닉네임은
대부분 자신이 연구했던 분야에서 차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엑소좀이라는 세포와 세포 간 신호전달물질에 관한
연구를 했기 때문에 그 물질의 앞 두 글자를 따서 ‘과학 커뮤니케이터 엑소’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편지나 택배, 메신저로 소통하듯이
우리 몸도 손끝과 발끝에 있는 세포가 엑소좀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택배’를 통해 소통한다. 일상의 다양한 물질도
조금만 살펴보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게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 자주 섭취하는 소금은 나트륨(Na)과 염소(Cl)의 화합물이거든요.
그런데 나트륨과 염소는 따로 분리하면 똑같은 원자인데도, 나트륨은 물과 만나면 폭탄으로 바뀌고
염소는 독가스가 됩니다. 어떻게 보면 독가스와 폭탄이
만나 우리가 매일 먹는 소금이 된 거예요. 알고 보면 일상의
사소한 소재도 다양한 과학적 개념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일반 과학 상식을 알려주는 그는 손꼽는 인기 강사다. 그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대부분 여섯 살에서 열 살 내외의 유·아동이다. 한창 놀기 좋아하는 이 시기 아이들도 그의 수업 시간에는
딴청을 부릴 겨를이 없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비대면 수업인데도 질문이 그치지 않을 만큼 집중도가 높다.
“저는 어릴 때 과학을 무척 좋아했지만, 사실 그 계기는 부모님과
함께했던 자연에서의 직접 체험이나 도서관에서 읽은 책 같은 간접 경험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도 주입식으로 과학
지식을 외우라고 하면 당연히 집중하기 어렵죠. 저는 아이들의
관심사를 중심에 두고, 거기에 과학이나 수학적 개념을
덧붙여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관련 내용을 스스로 찾아봅니다.”
이러한 수업을 통해 그가 아이들에게 길러주고 싶은 것은 지식이
아닌 태도다. 소소한 재미에서 출발한 호기심이 과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과학에 관한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저는 수업할 때 아이들이 무조건 질문을 많이 하도록 합니다.
질문도 답도 엉뚱하면 어때요. 그냥 손을 드는 것만으로도 친구들과
함께 박수치며 격려합니다. 요즘은 하나의 정답이 없는 시대잖아요.”
그는 “과학은 세상의 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효율적이고
논리적인 도구”라고 말한다. 책에서도 과학에 대해 배울 수
있지만, 때로는 일상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도 과학의 재미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오래전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던 일들이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어느덧 현실이 된 것처럼,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 역시 아이들의 우주적 상상력이 더 큰 미래를
열어주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