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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컬럼비아대학교 버나드칼리지 심리학과 리사 손 교수
시험 날 아침, 교실 안에는 이러한 대화가 오간다. “나 어제 공부 하나도 못 했어.” “너도? 나도 잠들어버렸는데, 어떡하지?”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노력을 숨겨야 한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 시험 결과가 좋으면 ‘공부를 안 해도 시험을 잘 보는 천재’로 보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공부를 안 해서 시험을 못 본 것’으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
이처럼 아이들은 ‘노력한 나’도, ‘노력하지 않은 나’도 가면 속에 숨긴다. 그리고 가면 속에서 어른이 된다. 이제 가면을 벗을 시간이다. 메타인지(meta認知) 전문가 리사 손 교수가 우리에게 가면 벗는 법을 알려준다.
글 이성미 / 사진 이용기
가면 속 아이들은 늘 불안하다
리사 손 교수가 가면 증후군에 대한 책 「임포스터」를 출간했다. 「메타인지 학습법」 출간 후 2년 6개월여 만이다. 2019년 그가 한국에서 방문 교수로 지내면서 쓴 「메타인지 학습법」은 속도와 결과만을 쫓는 한국 부모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음의 힘이 강한 아이, 행복한 아이로 자라게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2022년, 리사 손 교수가 이번에는 ‘임포스터(impostor)’를 이야기한다. 임포스터란, 직역하면 ‘사기꾼’, ‘남을 사칭하는 사람’으로, 심리학에서 자신의 성공을 노력이 아니라 운으로 얻은 것이라고 믿고 사람들을 속여왔다고 생각하면서 불안해하는 현상인 ‘가면 증후군’을 말한다. 가면 증후군에 빠진 사람은 자기의 노력과 성공을 낮추며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한국에서는 ‘겸손은 미덕’이라는 말로 가면 쓰기를 문제 삼지 않는다. 경쟁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도 가면 쓰기를 부추긴다. 어릴 때부터 가면을 쓴 부모는 자신과 같은 가면을 아이들에게 물려준다. 리사 손 교수가 이런 현상을 우려하면서 “가면을 벗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가면 증후군이 다양한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첫째, 고립감이다. 가면을 쓴 사람은 진짜 내 모습을 들킬 수 있다는 불안,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진짜 내가 아니라는 자기 부정 때문에 점점 고립감에 시달린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타인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조차 내지 못한다. 사람은 타인과 계속 관계를 맺고 뒤엉켜 살아야 하는 사회적 동물임에도 점점 가면 속에서 혼자가 된다.
둘째, 포기다. 가면을 쓴 사람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남 앞에 무언가 해내 보이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타인에게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실수할 상황을 완벽히 차단하는 것이다. “이것 좀 해볼까?” 하는 제안에 번번이 “아니야, 못 해”라고 거부하는 아이가 있다면, 단순히 겁이 많은 것이 아닌 가면 증후군일 수 있다. 매사에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는 아이도 안심할 수 없다. 마음이 건강한 아이는 진짜 내 생각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를 ‘과정’과 ‘노력’에 의미를 둘 줄 아는 건강한 어른으로 키워주세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모두 배울 것이 남아 있는 학생입니다.
「임포스터」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사람도 가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리사 손 교수 역시 메타인지 권위자이지만 저서 「임포스터」에 대해 ‘고백록’이라고 말할 정도로 수많은 가면을 쓰며 살아왔다.
“가면은 단 하나만 존재하지 않아요. 천재인 척하는 가면, 타고난 척하는 가면, 겸손한 척하는 가면, 완벽한 아내이자 딸, 며느리, 교수인 척하는 가면 등 저 역시 ‘척’하는 가면을 계속 쓰고 벗으며 살아왔습니다.
실제로는 완벽하지 않은 데 말이죠.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을 들킬까 봐 불안해했어요.
이 책을 쓰면서 저도 가면 벗는 연습을 했고, 불안으로부터 조금은 해방된 것 같습니다.”
리사 손 교수는 “내가 성장해온 환경은 가면 쓰기에 좋은 환경이었다”라고 회고한다.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내내 그는 ‘영어를 잘하는 척’해야 했고, ‘이해하는 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라고 스스로 다그쳐왔다. 완벽해 보이는 데 성공했고 바라던 대로 심리학과 교수가 되었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물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가면 쓰기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이었다. 그러나 메타인지를 연구하면서 리사 손 교수는 비로소 자신의 가면을 알아차렸다. 자신처럼 가면 속에서 불안하게 사는 사람들도 보였다.
가면 속에 사는 두 자녀가 보이고, 학생들이 보이고, 한국 아이와 부모들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부모특강-0.1%의 비밀 출연 모습 [출처: EBSCulture 공식유튜브]
실수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리사 손 교수는 가면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메타인지’ 를 제안한다. 메타인지란, 쉽게 말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나아가 메타인지 학습법이란, 내가 잘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내가 공부해나갈 방향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메타인지적 학습은 가면을 벗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이의 가면을 벗게 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가면 속 진짜 자신의 모습을 일부러 들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진짜 나와 마주하게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시험 전에 셀프 테스트를 하거나, 예고 없이 시험 방법을 바꾸면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실력을 들키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본모습을 들키는 것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두 번째 방법은 과정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결과만을 보고 ‘넌 타고났어’, ‘넌 천재야’라고 칭찬하기보다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겪은 실패와 성공에 대해서도 인정해주는 것이죠.
앞서 말한 셀프 테스트를 치르고 나서도 결과에 대해 엄격하게 다그칠 필요 없어요.
잘한 것에 대해서는 ‘어려운 걸 잘 해냈구나’, ‘나는 네가 열심히 했다는 걸 알아. 우리 더 노력해보자’라고 이야기하고, 틀린 것에 대해서는 ‘다시 틀리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너는 무엇을 더 배우고 싶니?’ 묻고 개선해나가는 길로 이끌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세요. ‘과정이 중요하다’,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아이들에게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다”라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 더불어 아이들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선 어른이 먼저 가면을 벗어야 한다.
자신이 임포스터인지 점검해보는 것이 먼저다. 가장 쉬운 방법은 ‘불안감’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의 모습이 자연스러운지 점검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나 역시 실수를 한다”라고 고백할 필요도 있다. 그렇게 어른이 먼저 민낯을 드러내고 “완벽해야 한다” 라는 분위기를 깰 때, 비로소 아이들도 가면을 벗을 수 있다.
“가면을 무조건 다 벗어던지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메타인지를 통해 자신이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 나의 본모습은 어떠한지를 정확히 알고, 필요할 때 가면을 벗어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힘든 것에 ‘힘들다’라고 말하세요. 동의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자신이 먼저 행복한 어른이 되고, 그다음 아이를 ‘과정’과 ‘노력’에 의미를 둘 줄 아는 건강한 어른으로 키워주세요.
당장은 완벽하지 않다고 불안해할 수도 있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모두 배울 것이 남아 있는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