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오동도 붉은 동백과 함께 맞이하는 이른 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2개의 해상 국립공원(한려해상국립공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품은 여수는 그 명성에 걸맞게 유난히 물빛이 아름다운 도시다. 전망이 좋아 예쁜 카페가 몰려 있는 여수시 고소동의 언덕에서 굽어보면, 해협 사이로 흘러가는 바닷물이 마치 터키석을 갈아 만든 청록색 물감이라도 풀어놓은 듯 오묘한 빛깔을 머금고 있다. 그 때문일까. 여수반도를 둘러싼 바다 빛이 어찌나 고운지 옛사람들은 이 바닷가 고장의 이름에 특별히 ‘고울 려(麗)’를 넣어 여수(麗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문헌에 처음 ‘여수’라는 명칭이 기록된 때가 고려 창건 이후인 940년이라 알려졌으니 벌써 1,0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이토록 수려한 바다를 간직하고 있던 셈이 아닌가.고소동 벽화마을, 골목길 산책하며 카페 즐기기
두 번째로 들를 곳은 요즘 예쁜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고소동 천사벽화마을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의 전망 좋은 장소마다 특색 있는 카페가 계속 들어서고 있는 고소동은 높이 117m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 펼쳐진 산동네다. 이순신대교, 하멜등대, 낭만포차거리, 장군도, 돌산대교 등 여수의 주요 명소가 모두 시야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훌륭해 조선 시대에는 수군의 포루(砲樓)나 장대(將臺)가 위치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수팔경의 하나인 고소대(姑蘇臺)의 유적이 바로 이곳 고소동에 남아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수군을 지휘하던 장소라고 전해진다. 현재는 언덕 정상에 여수기상대가 자리한다.돌산대교 전망대와 해상케이블카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최와 함께 새로이 거북선대교가 들어섰지만, 외지인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즐겨 찾는 명물은 여전히 돌산대교다. 1984년 완공된 이후 30년이 넘도록 여수 최고의 명소로 꼽히고 있는 돌산대교는 낮에도 아름답지만 경관 조명이 불을 밝히는 저녁에 방문하면 더욱 예쁘다. 해 질 무렵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는 마치 동백꽃처럼 붉게 물든다. 사진가들이 ‘매직 아워(magic hour)’라고 부르는 일몰이 끝나갈 무렵 하늘이 보랏빛으로 어두워지면 경관 조명이 점등되며 돌산대교가 오색으로 채색되기 시작한다. 대교 위를 오가는 자동차의 불빛과 어우러진 야경은 환상적인 추억을 남긴다.돌산도 드라이브 길 끝에 만나는 향일암
시간이 넉넉하다면 돌산도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다. 과거 돌산도는 향일암 외에 들를 만한 관광지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섬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세계박람회와 함께 리조트와 호텔, 펜션이 들어서며 여행 인프라가 좋아졌을 뿐 아니라 여수예술랜드 같은 복합 문화 공간이 조성되면서 지금은 많은 여행자가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서대회무침과 갈치 튀김
가자미, 넙치의 사촌쯤 되는 서대 혹은 서대기는 여수10미 중 하나로 꼽히는 생선으로,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에는 접어(鰈魚)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수 사람들은 여수와 고흥 사이의 여자만에서 주로 잡히는 서대를 무침으로 즐겨 먹는다. 막걸리로 발효시킨 식초를 초고추장과 섞어 만든 특제 양념에 얇게 썬 서대회를 넣고 무친 서대회무침은 긴긴 겨울을 나는 동안 잃었던 입맛을 되살리는 별미다. 서대회무침을 잘하기로 소문난 식당은 고소동과 자산공원 사이 옛 여수항 인근에 있는 삼학집(여수시 이순신광장로 200-3 1층)이다. 삼학집에서 서대회무침을 주문할 때는 반드시 갈치 튀김를 추가하기를 권한다. 달콤한 서대회무침과 겉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러운 갈치 튀김이 어우러져 먹는 재미가 그만이다.삼치 선어회와 싱싱한 해산물
바닷가 고장에 왔다면 응당 싱싱한 바다 먹거리를 맛봐야 하지 않을까. 제철 생선회와 함께 다양한 해물을 곁들여 먹으면 겨울 끝자락의 여정이 더욱 행복해진다. 활어회를 주로 맛보았다면 생선을 숙성시켜 먹는 선어회에 도전해보자. 선어회는 활어를 손질해 얼음과 함께 저온 숙성시킨다. 특히 삼치 선어회는 두툼하면서도 숙성된 생선 살 특유의 깊은 맛으로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다. 삼치를 구이로만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 독특한 맛에 빠져들지도 모를 일이다. 겨울철에는 대방어가 제철이므로 삼치와 대방어를 반씩 섞어도 좋다. 선어회만으로 조금 부족하다면 가리비, 전복, 멍게, 꾸죽 등으로 구성된 해물 모둠을 곁들인다. ‘꾸죽’은 뿔소라의 지역 방언이다.30년 전통의 뚝배기 매운 갈비찜
여수에는 다른 도시에서는 없는 독특한 갈비찜이 있다. 여수시 신기동 골목에 자리한 ‘원조40번’에서 맛볼 수 있다. 30년간 대를 이어온 원조40번의 갈비찜은 뚝배기에 마치 탑처럼 높이 쌓아 올린 담음새부터 눈길을 잡아끈다. 창업주가 직접 고안한 양념을 이용해 닭강정처럼 바삭한 식감은 살리고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추가한 매운 갈비찜은 식도락가들을 불러 모으는 마력의 메뉴다. 매운 음식에 약한 사람이라면 달걀찜으로 매운맛을 중화시켜보자. 양도 푸짐해 갈비 몇 점이면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게 되지만, 추가로 주문한 공깃밥을 남은 양념에 비벼 먹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과식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