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으로 들어온 AI, 이제는 학교 교육 차례
AI 기술을 활용해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사례는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상품을 추천하는 쇼핑몰, 말을 알아듣는 챗봇, 운전을 도와주는 자율주행차 등 AI 기술을 활용한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그 활용 분야는 산업 전반, 인류의 삶 전체로 확대되고 있고, 이 모든 기술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사람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결국 학교 교육의 AI 활용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컴퓨터는 사용자가 내린 명령만 수행하는 능력만 있다면 AI가 접목된 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보다 복잡하고 빠른 연산이 가능해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것까지 찾을 수 있는 만큼 AI를 실제 학습에 적용한다면 학습 수준은 지금보다 더욱 높아질 수 있다.
AI 교육은 AI를 활용한 기반 교육과 AI 자체를 배우는 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학생들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어떤 과목과 분야를 잘하는지를 AI가 분석하고 맞춤형으로 교육하는 교사의 보조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AI 기반 교육이라면, 미래 AI 시대를 주도할 전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데이터·코딩·알고리즘 프로그램을 배우는 AI 교육이 있다.
현실 교육과정에 반영되는 ‘AI 교육’
2025년부터 초·중·고 새 교육과정에 AI 교육이 정식 도입된다. 정부는 현재 일부 학교 단위에서 시범 단계에 머물러 있는 AI 교육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학교 정규 교과목으로 공식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부산시교육청에서는 ‘수학과 인공지능’이라는 교과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개발해 올해 1학기부터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적용한다. ‘AI 기초’, ‘AI 수학’ 같은 과목이 아이들의 정규 시간표에 포함된다는 이야기다.
교육부는 유치원과 초·중·고 수업의 AI 교육 확대를 위해 관련 학습 자료를 개발했다.
유치원에서부터 놀이를 통한 AI 교육이 진행되고, 초·중·고교에는 2025년부터 적용될 2022 개정 교육과정에 AI 교육을 도입해 안착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효과적인 AI 교육을 위해 5년간 5,000여 명의 현직 교원을 대상으로 ‘AI 융합 교육 역량 강화’를 위한 재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에 교육 현장에서는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AI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공교육 현장에서 ‘놓친 아이들’이 많은 현 상황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급격하게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느라 교사들이 밤낮없이 공을 들이고 있는데, AI 교육까지 챙기려면 기술 정보 취득은 물론 실질적 교육에 반영하기 위한 다양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교사가 수업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 예상된다.
쏟아지는 관련 공문과 처리해야 할 행정 업무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또 AI 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무엇보다 사고력과 디지털 문해력,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부터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AI를 단순 기술로만 활용하지 않고 문제 해결력을 키우기 위한 ‘멀티 교육’으로 확장하려면 읽고 쓰고 이해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교육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편견과 혐오를 배운 AI의 역습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최근 몇 년간 각 교육업체의 TV 광고를 통해 심심치 않게 접했다. 유명 연예인이 ‘AI 교육’를 말하며 ‘학습 격차’를 운운하는 시대다.
당장 아이의 온라인 수업을 위해 필요한 태블릿 PC조차 없는 가정도 있을텐데 조금은 잔인한 광고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 되었든 현재 우리 아이들이 사용하는 수많은 교육 프로그램과 앱, 게임 대부분이 AI와 연결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가 ‘인공지능 윤리’에 관해 더욱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글로벌 AI 기업이 출시한 ‘AI 챗봇’이 인종차별, 장애인 혐오 발언 등을 하면서 AI 기술의 윤리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는 많은사람이 AI의 편향성, 개인정보보호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AI 챗봇이 사용자와의 대화 중 장애인, 임산부, 흑인, 성소수자와 관련한 혐오 발언, 편향적 발언 등을 한 것을 문제 삼았다.
한국인공지능윤리협회 전창배 이사장은 “AI 챗봇이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대화 능력을 보여주었고, 사용자들은 이러한 AI와 대화하면서 부지불식간에 AI를 인간으로 감정이입을 하고 의식하게 된다”며 “특히 AI의 인간 유사성 정도가 뛰어날수록 해당 AI는 사고와 말, 행동 등 모든 면이 인간보다 완벽하다고 받아들여진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완벽한 존재’가 혐오와 차별, 편향성 발언을 하면 사용자들은 그런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은 그런 영향에 더욱더 쉽게 노출된다.
인간이 AI에 편견과 혐오를 가르친다면 그렇게 학습한 AI가 다시 사람에게 편견과 혐오, 편향을 심어주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전 이사장은 “편향성 문제는 AI의 악용 문제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는 AI 윤리 문제”라며 “2015년에 구글포토 서비스에서 흑인 여성 사진을 고릴라로 인식한 사건은 유명하다.
이 사건은 AI의 안면 인식 오류율 차이 때문인데 인종별, 성별 안면 인식 오류율에서 백인 남성 1%, 백인 여성 7%, 흑인 남성 12%, 흑인 여성 35%로 큰 차이를 보인다”라고 말했다.
AI의 안면 인식 오류율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전 세계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사진 데이터의 양에서 인종과 성별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AI가 윤리적으로 편향을 갖지 않으려면 그만큼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야 하는데 성별과 빈곤의 문제, 태어난 국가와 가정 형편 등에 따라 첨단 기술을 접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 ‘AI에게 학습받을 권리’조차 없어진다는 것이다.
기술력 못지않게 중요한 철학을 담은 AI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학습이 확대되면서 원격 교육을 포함한 디지털 전환이 가속했다. 디지털 전환의 중심에는 AI 교육이 있다.
AI 프로그램을 탑재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고 다루는 능력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 기기로부터 얻은 지식과 정보를 아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고 처리할 것인지가 진정한 ‘디지털 시민성’이다.
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 정현선 교수는 “철학이 부재한 기술 편향적 AI 교육은 매우 위험하고 실효성도 없다” 라고 잘라 말했다.
초연결성, 가상 물리 시스템, 빅데이터 등이 만들어내는 지능정보사회의 핵심 의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시민성 교육’이 돼야 하는데, 이러한 인식론이 없이 기술력 자체에만 집중한 편향적 AI 교육은 아이들에게 외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AI라는 기술 자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기술의 앞뒤 맥락을 파악하면서 모든 시민사회 구성원에게 공정한 기술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까지가 진정한 AI 교육의 본질이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AI 기술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 기술을 이용해 삶을 살아가는 ‘시민성’이어야 한다는 뜻이다.이진숙 작가의 「인간다움의 순간들 : 흔들리는 삶이 그림이 될 때」라는 책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르네상스 시기에 나타난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개인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의 등장이라고 한다.
초상화를 통해 중세 종교 공동체와 자신을 온전히 분리해 ‘나’, ‘개인’, ‘독자적 존재’에 관한 인식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이 있는 하늘만 바라보던 이름조차 없는 한 인간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시하며 화폭에 담아낸 것이 바로 초상화다.
모두가 AI 기술이라는 ‘하늘’만 바라보는 이때, ‘AI 윤리’라는 인간적 성찰에 관심을 두고 눈을 떠야 하지 않을까?
미래 세대를 위한 AI 교육 자체를 직시했을 때, 우리가 그려야 하는 ‘초상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