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이과’ 고등학생이었던 이유진 교사는 책을 좋아했다. 다독가였고, 백일장에서 상도 탔지만 자신이 과학에 소질이 없음을 깨달은 뒤에는 진로를 바꿔 2001년 초등교사로 발령받았다.
“제 열정을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학생들에게 쏟아붓는 게 무척이나 재미있었다”라고 말한 그는 대학시절 내내 품었던 ‘좋은 교사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연수를 받으러 다녔고, 동료 교사들과 스터디도 열심히 했다. 「우리교육」이라는 월간지를 정기구독했던 것도 좋은 교사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서였다.
“「우리교육」에 부록처럼 연재되던 동화가 있었어요. 강승숙 선생님이 연재하셨던 건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의 동화책은 주로 교훈을 주는 내용이었는데 그것과 다른 굉장히 신선한 내용이었어요. 원래 글쓰기와 책에 관심이 있었기에 이런 동화를 학생들에게 읽어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아동문학은 큰 변화를 맞던 시기였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어린이도서연구회 등에서는 전집을 들여놓는 것이 아닌, 학생들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읽게 하고 세계명작동화 외에 우리 동화도 읽게 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이유진 교사는 이때 「마당을 나온 암탉」 등 새로운 책을 접하면서 동화책의 매력에 푹 빠졌다.
“수업이 끝나고 자투리 시간에 5분씩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줬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너무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연속극 기다리듯 눈을 빛내고 책을 덮으면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고, 동화책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분명히 재미있어서 골랐는데 학생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 그런 경험은 이유진 교사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게 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 수준에 맞는 다양한 책들을 뽑아내는 건 그에게 마치 보물찾기와 같은 즐거움이었다.
“지금은 워낙 아동문학 시장도 커져서 그런지 그림책과 동화책, 동시집과 지식정보책 등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죠. 요즘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는 ‘고양이’가 주인 공인 작품이 많더라고요.” 때로는 고양이로, 때로는 암탉으로, 때로는 나무와 꽃이 되어 풀어놓는 이유진 교사의 책 이야기는 교실 안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세상에 어찌 완벽한 옳음이 있을까.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이유진 교사는 뜻밖의 고민과 맞닥뜨리게 됐다. 과연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교사 2년 차 때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책을 소개했어요. 제가 그 책을 보면서 무척 마음이 아팠던 게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당시 저희 학교 학생들의 상황과 흡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어요. 그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런 책이 과연 학생들한테 감동이 될까, 오히려 더 아픈 얘기가 되지 않을까. 결국 그 책을 읽어 보라고 학생들에게 권하지 못했어요. 그때의 고민은 저한테 굉장히 강하게 남았습니다. 어떤 책을 학생들에게 읽어줘야 할지, 그 방향성을 어떻게 잡고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죠.”
결과적으로 이유진 교사는 답을 얻었다. 그에게 의도치 않게 힌트를 줬던 소년 덕이었다. 「소나기밥 공주」를 읽어준지 한참이 지나서 한 학생이 “이거 우리 집 얘기 같아요”라며 말을 걸어온 것이다. 소년은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를 둔 불우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공주라는 아이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위로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작품도 우리들에게,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문제는 방식이었죠. 수업시간에 다 같이 읽는 책, 개인적으로 혼자 읽는 게 더 좋은 책, 그걸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요. 다 같이 읽어도 좋은 책이 있고, 아닌 경우도 있으니까요. 상황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렸어요.”
책을 읽어주는 내내 학생들에게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성장한 뒤에도 오래도록 이유진 교사가 책을 읽어준 시간을 기억했다.
이유진 교사는 그 누구보다 어린이책을 재미있어하는 교사다. 수많은 연수와 모임, 스터디에 열정적이었고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안에서 공동저자로 「이야기 넘치는 교실 온작품읽기」(2016), 「다시, 온작품읽기」(2019) 등을 펴냈다.
쪼개진 작품이 아닌, 온전한 작품 읽기의 시작은 기존 국어교과서를 보완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어교과서에 「마당을 나온 암탉」이 실렸지만 분량은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겨우 5% 남짓, 학습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만으로는 학생들이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주면 다른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이게 이렇게 재미있었냐며 학생들이 감동하고 행복해하는 거죠.”
이유진 교사가 품은 열정은 초임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그는 모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혼자 읽어서는 길을 찾기가 어렵지만 여럿이 모이면 얘기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안의 ‘책과 노니는 교실’ 모임은 그에게 무엇보다 소중하다. 수원의 초등학교 교사 24명이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 다양한 담론을 빚어내고, 계간지를 내며 인터넷상에서 교사들에게 동시를 배달하고, 전국 교사들의 모임을 후원하는 이 작은 만남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활동으로 책 읽기의 중요성과 의미를 설파함과 동시에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진 교사는 어른들이 책 읽는 이유와 학생들이 책 읽는 이유는 같다고 말했다. “내가 누구지? 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를 탐구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책의 주인공과 동일시하거나 차별화하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해 보는 거죠. 책에는 그런 힘이 있어요.”
학생들이 듣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초등 교육이 시작 된다고 믿는 이유진 교사는 지금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하루빨리 학생들과 교실에서 눈빛을 마주하며 함께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같이 동시를 짓는 그 아름다운 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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