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태백시청
탄광도시에서 여행자들의 인증사진 성지로
한반도의 척추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하는 강원도 태백산 자락에는 탄광으로 유명했던 도시, 태백이 자리 잡고 있다. 1980년대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시작되기 전까지 태백은 이웃한 삼척, 정선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동네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돈이 몰리는 곳이었다. 오죽하면 ‘동네 개들도 입에 지폐를 물고 다닌다’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였을까. 석탄산업의 위축으로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은 태백에는 요즘 고원 도시에 불어오는 신선한 변화의 바람과 함께 여행자들의 인증사진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하늘 아래 배추밭과 한강 발원지 검룡소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고랭지 배추밭이다. 카지노로 유명한 정선군 고한읍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곳에 우뚝 솟은 매봉산으로 향해보자. 야생화 천국 금대봉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에는 백두대간 너머 동해의 바람을 기다리는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바람의 언덕’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매봉산 동쪽 사면은 온통 초록빛 배추들이 점령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값비싼 배추가 재배된다는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은 이름 그대로 태백시 화전동(禾田洞)의 해발 1,300m 고지에 형성된 배추밭이다. 화전동 이라는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한국의 스위스 몽토랑 산양목장
이번에는 요즘 SNS에서 가장 핫하다고 소문난 몽토랑 산양목장(033-553-0102 www.mongtorang.co.kr)을 찾아가 본다. 태백시 중심가에서 가까운 산비탈에 펼쳐진 초원에 새하얀 산양 무리가 뛰놀고 있다. 눈부신 여름 태양 아래 펼쳐진 무려 447만 평에 달하는 몽토랑 산양목장은 본래 타조, 사슴, 흑염소 등을 사육하던 농장이었는데 지난 2006년부터 우유를 생산하기 위한 유산양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산양은 토종 염소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얼굴의 형태나 꼬리 모양이 다르고 성질도 온순해 사람을 잘 따르는 편이다.목장 입구 카페에서 입장료를 지불하면 입장권 대신 팔찌를 지급한다. 팔찌를 착용하고 입장하면 귀여운 산양들의 호기심 어린 눈과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산양들은 금세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산양 먹이(5천원)를 구매하면 된다. 사료 컵을 들고 다시 초지에 들어서면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사료 냄새를 맡은 산양들이 줄줄이 열을 지어 따라오기 때문이다. 제법 가파른 경사면을 올라 언덕 정상에 도착하면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전망대 근처에는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토끼도 곳곳에 보인다. 산양이 낯설고 무서워 뒷걸음질 치던 아이들도 토끼를 쫓느라 바쁘다.천상의 화원 만항재와 에메랄드 빛깔 미인폭포
태백은 정선·삼척·영월 등 강원도의 유명한 두메산골과 인접해 있다 보니 그 경계에 명소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만항재 역시 그러하다. 태백·정선·영월까지 3개 시군의 경계가 맞닿아 있다. 해발 1,300m 고지를 통과하는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도를 지나는 도로를 끼고 있다. 태백 시내에서 태백산국립공원 백단사, 유일사 매표소를 차례로 지나치면 곧 어평재휴게소에 다다르게 된다. 여기서 함백산 등산로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 도로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산간 드라이브 길이 시작된다. 구절양장처럼 꼬불꼬불 이어지는 아찔한 도로를 따라 10여 분 이상 오르면 천상화원이라 불리는 만항재 하늘숲공원이 나온다.연탄불에 굽는 육즙 가득한 태백 한우
과거 탄광촌 태백을 먹여 살린 효자 상품은 연탄이다. 아직 미미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태백산 연탄에 구워 먹는 소고기는 별미 중의 별미다. 당시 연탄은 지금처럼 도시가스나 전기가 보급되기 이전 한국인들의 삶을 책임지던 고마운 존재였다. 태백 시내에는 바로 이 연탄불에 한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여럿 있다. 황지동에 위치한 태백실비식당(033-553-2700)은 한우 연탄구이 전문 식당으로 모둠 갈빗살(꽃갈빗살+갈빗살)과 삼총사(꽃갈빗살+갈빗살+안창살)가 가장 인기 있는 메뉴라고 한다. 소고기는 무엇보다 강한 열원에 재빨리 구워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빨갛게 단 연탄불에 석쇠를 얹고 부위별 소고기를 굽는 손맛과 한우의 풍성한 육즙을 마음껏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쫄깃한 감자옹심이와 바삭한 감자전의 조화
강원도를 대표하는 식재료를 꼽으라면 너나없이 감자를 첫손에 꼽을 것이다. 논농사가 어려운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로 만든 감자옹심이와 감자전은 여행자들의 소울 푸드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감자를 강판에 갈아 만든 녹말가루를 뭉쳐서 수제비나 경단처럼 빚은 뒤 미리 준비한 육수에 호박, 고추, 버섯과 함께 끓이면 감자옹심이가 완성된다. 태백 시내 한복판에 위치하는 재래시장인 황지자유시장에 감자옹심이를 전문으로 하는 맛집이 있다. 상호가 부산감자옹심이(033-552-4498)라는 점이 눈길을 끄는데, 이 식당의 창업주는 석탄산업이 호황을 이루던 1960년대 고향(부산)을 떠나 태백에 식당을 차렸다고 한다. 두툼하고 바삭하게 부쳐내는 감자전도 꼭 곁들여 먹기를 권한다.심심한 순두부와 함께 맛보는 강원도 백반
담백한 순두부와 함께 맛보는 간결한 상차림의 백반은 기름지고 자극적인 먹거리를 잠시 잊게 해주는 음식의 고전이다. 구와우순두부(033-554-7223)는 벌써 10년 넘게 한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태백의 순두부 맛집으로 불과 몇 개월 전 만화 ‘식객’의 허영만 작가가 다녀간 이후 다시금 유명해졌다. 코로나19 이전에 매년 해바라기 축제가 개최되던 고원자생식물원 입구에 위치하는 이 식당은 하루에 딱 80그릇 분량의 식재료만 준비해 둔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도 식당 주인이 순두부를 직접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식당이라기보다 보통의 시골 가정집에 가까운 허름하고 소박한 건물은 어쩐지 여름방학마다 놀러 가던 시골집을 떠올리게 하는 외관이라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